“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 13:24-30, 36-43)
1
옛날에 두 어부가 있었습니다. 두 어부 모두가 부지런한 사람들이라 열심히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한 어부의 물고기는 항상 싱싱해서 높은 가격으로 팔렸지만, 다른 어부의 물고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죽어 가는 물고기같이 시들시들해서 사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들시들한 물고기의 어부가 싱싱한 물고기의 어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싱싱한 물고기만 잡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싱싱한 물고기의 어부가 대답합니다.
“나도 당신과 똑 같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당신의 물고기보다 특별히 싱싱한 물고기를 잡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당신의 물고기는 싱싱하고 나의 물고기는 육지에 도착하면 시들시들해지는 것일까요? 비법이라도 있으면 가르쳐 주시지요.”
싱싱한 물고기의 어부가 대답합니다.
“나는 물고기를 잡으면 물고기가 있는 어항에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큰 물고기를 넣어 놓습니다. 그러면 그 물고기들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요. 그래서 나의 물고기들이 싱싱한 것입니다.”
어부의 마음이야 한 마리의 물고기라도 살리려 애쓰는 것이 당연합니다. 싱싱한 물고기의 어부도 시들시들한 물고기의 어부도 이런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싱싱한 물고기의 어부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역설적인 말입니다만, 우
리 믿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주위에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 우리로 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게 하고 역경이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더욱 하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에게 있는 핍박이나 역경은 오히려 우리를 알곡 되게 하는 요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좋은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좋은 일만 일어난다면,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라 그에게 항상 좋은 말만 해준다면 얼마 안 있어 그 사람은 별로 기도할 것이 없게 될 것이요 신앙이 시들시들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험한 일을 당하기도 하므로 더욱 깨어있게 되고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기도하다보면 싱싱한 물고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24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천국에 관한 여러 비유들 중에 하나인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좋은 씨가 잘 자라서 곡식이 되어 추수 때에 천국 곡간에 들어감을 말씀하심입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렸다고 했는데, 이 어떤 사람은 37절의 해석에서 보듯이 인자(人子) 곧 농부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좋은 씨란 “천국의 아들들”(38절)로 들이기로 예정하시고 부르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밭은 “세상”이라고 말씀하시는데(38절), 이 세상이라는 밭은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를 포함합니다.
25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사람들이 잘 때에”라고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또는 ‘깨어 있지 않은 때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는데, 여기서 원수는 마귀 곧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가라지는 영어성경에서는 weeds, tares 또는 darnel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독보리’라고도 하며,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곧, 천국 곡간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교회를 다니고 믿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성도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린 까닭은 하인들이 이 가라지를 뽑으려 하다가 곡식도 함께 뽑아서 성도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고자 하는 의도였습니다.
26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밭에 밀의 싹이 나고 이삭이 패기 시작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밀과 가라지는 이삭이 패기 전까지는 거의 구분이 안 된다고 합니다.
교회를 출석하는 믿는 사람들과 교회와 동떨어져 사는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구분이 쉽지만, 문제는 교회를 출석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믿는 사람들은 거의 구분이 안 됩니다.
교회 속의 가라지 신자는 알곡 신자처럼 주님을 찾고, 성경에 대하여 말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그 열매가 확연히 보이기 전까지는 구별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전문가에 의하면, 독보리라고도 하는 가라지에 세 가지 특성이 있는데, 그 첫째는 위장성(僞裝性)입니다. 가라지는 이삭을 패기 전까지는 곡식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곡식 신자와 가라지 신자는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라지 신자가 더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가라지의 두 번째 특성은 잠복성(潛伏性)이라고 합니다. 이삭이 나오기까지 평상시 곡식과 마찬가지의 외형과 생장과정을 보이는데 일단 이삭이 패면서부터 곡식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가라지 교인은 평소에는 곡식 교인과 다름없이 잠복하여 있다가, 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에 본색을 드러내고 교회를 위태롭게 하는 일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해독성(害毒性)입니다. 가라지는 곡식이 자라는데 방해만 되는 것이 아니요 그 이삭은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만약 사람이 먹으면 구토와 설사 등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게도 합니다. 가라지 교인은 곡식 교인을 괴롭힐 뿐 아니라 때로는 그 믿음을 죽이기도 하는 독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27절: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집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 “집주인의 종들”은 세상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하는 밭을 돌보는 목회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주인인 농부 되신 예수님은 분명히 교회라고 하는 밭에 좋은 씨--곡식의 씨만 뿌리신 줄 아는데, 때로 교회를 보면 곡식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도 눈에 띠기 시작합니다.
해서, 종들이 주인에게 “왜 주인님의 밭에 가라지가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28절: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가라지를 덧뿌린 것이 원수 곧 마귀의 짓인 줄 알고 계십니다. 또한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알고 계시고, 그 뿐 아니라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면서도 사실은 방임하셨습니다.
원수의 의도를 모를 때에는 집주인이나 그 하인들이 당황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를 것이고, 해서 원수의 의도대로 따라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원수의 의도를 모를 때에도 집주인은 원수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마귀의 의도는 하인들이 가라지를 뽑을 때에 곡식도 함께 뽑아 하나님의 성도들 구원사역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가 원수에게 있음을 아시면서도 그 원수가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는 것을 모르시는 척 방임하신 것은 하나님께 다른 계획이 있으신 까닭이었습니다.
29-30절: 주인이 가로되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원수의 의도를 모르는 하인들은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을까요?”라고 물어보는데, 원수의 의도를 아는 주인은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고 대답합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게 하는 것’이 바로 원수의 의도입니다.
가라지를 뽑지 말라고 말하는 주인은 추수 때에는 곡식과 가라지를 열매로 확연히 구분될 것을 알고 있으며, 해서 미리 가라지를 뽑으려고 하다가 곡식이 다치는 경우가 없게 하고자 함입니다.
가라지의 이삭은 검은 색으로 사람들에게 독을 주는 반면에, 밀 이삭은 누런 색으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믿는 사람의 예로 말하자면, 가라지 신자가 주위에 있으므로 알곡 신자로 더욱 경계하고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며, 가라지 신자도 “주여 주여” 부르짖지만 그들의 종국이 어떠함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유사하고 잠복하고 때로 해를 가하는 가라지 신자로 인하여 곡식 신자가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깨어있어서 더욱 알차고 싱그러운 열매를 맺게 함이 또한 주님의 의도이십니다.
또한, 곡식과 가라지의 경우에서는 가라지가 곡식이 되는 경우가 없지만, 사람의 예에서는 가라지 신자가 후에 회개하고 알곡 신자가 되는 경우가 있기에 주님은 가라지 신자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추수 때까지 뽑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39-40절에 보는 바대로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들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사(敎會史)에 있어서 교회를 규정함에 있어서 알곡 신자만의 무리라고 한 적도 있었고 알곡 신자와 가라지 신자가 섞여 있는 것이 교회라고 있었습니다. 교
회를 알곡 신자만의 무리라고 규정한 사람들이 가라지 신자를 골라내어 교회를 정화한다고 자기 나름의 규정으로 가라지 신자들을
색출하고 처단하기도 했지만 이를 통하여서 많은 알곡 신자들이 다치기도 하고 그렇게 처벌하는 사람들이 가라지 신자들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알곡 신자와 가라지 신자를 가려내는 것은 추수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서 하실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열매 맺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3
교회 밖에는 가라지들이 많이 있지만, 현재의 가라지들인 그들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곡식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가라지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믿기를 원하고 믿음에 바로 서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곡식 신자가 되기 위하여 항상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예로서는, 곡식이 가라지가 되고 가라지가 곡식이 되는 경우가 혹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곡식(알곡) 신자입니까?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 맺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혹 가라지 신자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습니까?
41-42절에 예수님은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단에게 미혹 받아서 가라지 신자가 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며 늘 알곡 신자가 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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