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0, 2012

"약할 때 강함이라" (고후 12:10)

"약할 때 강함이라" (고후 12:10)


성경구절: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노자(老子)는 그의 제자들에게 “연약한 것이 강한 것보다 낫다.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게 얌체같이 똑똑한 것보다 낫다.”고 말하였습니다. 한 제자가 질문합니다. “사람들은 연약한 것보다 강한 것이 낫다고 하는데요?” 노자가 대답합니다. “강하면 쉽게 부러지나 연약하면 부러지지 않는다. 세찬 바람이 불면 큰 나무는 뿌리째 뽑히지만, 연약한 갈대는 휘어질 뿐 부러지지 않는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나쁘다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자가 다시 대답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남의 미움을 받기 쉬우나, 어리석은 듯이 슬기로운 사람은 남들이 모두 좋아하느니라.” 그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합니다. “그렇군요.”

공자(孔子) 일행이 위(衛)나라에 들렸을 때, 위영공(衛靈公)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전쟁을 잘 하는 법--에 대하여 묻습니다. 공자는 자신은 인의 도덕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쟁하는 법은 배운 것이 없노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영공의 푸대접이 시작되고 그의 무도(無道)함에 실망하여 급히 위나라를 떠나 진(陣)나라로 갔는데, 그곳에서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 양식이 떨어지고 따르는 자들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는 곤경을 당합니다.
그 당시의 제후(諸侯)들은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학문과 정보를 얻는 댓가로 이들의 여비를 보조했고, 다른 유지들도 평소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면 여비를 보조하는 것으로 예(禮)를 표시하는 것이 상례(常例)였는데, 공자의 일행은 그들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공자의 제자 중 자로(子路)는 누구보다도 최고의 학문과 인품을 지닌 군자임을 자부하는 스승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토록 곤경에 빠지게 한 세태에 분개하여 공자에게 질문합니다. “군자 역시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 이에 공자가 대답합니다. “군자는 본디 곤궁하다. 그러나 소인은 곤궁하면 그릇된 일을 범하느니라.” 군자는 늘 곤궁하기 마련이지만, 소인과 다른 것은, 곤궁함에 처해서도 의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논어(論語)」 ≪위영공(衛靈公)≫편)

위대한 문학가나 예술가의 삶을 보더라도, 그들의 생전에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고통의 약함 속에 살다가 간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봅니다.
바울도 신약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주위에는 늘 많은 반대자가 있었고, 그의 복음은 동족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의 주님을 위한 삶은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핍박과 가난과 약함의 연속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세계 복음화의 큰 일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을 자고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혹은 더욱 연단시키시기 위하여 사단을 통하여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을 주십니다. 사단의 시험으로(욥 1:6-12) 욥이 당한 고난이 그러하고, 다윗이 사단의 격동으로 인구조사함(대상 21:1)과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그의 낮아짐이 그러하고,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과정 중에,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상에서의 사단의 시험이 또한 그렇습니다.

바울이 “사단의 사자”라고까지 표현한 이 “육체의 가시”는 분명히 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어 떤 사람들은 이를 바울이 갖고 있던 육체의 병이라고 말합니다. 안질, 말라리아, 언어의 장애, 간질 등 다양하게 추정합니다. 또 다른 성경학자들은 그의 육체의 가시를 그의 동족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함, 그가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끌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유대인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방인의 사도가 된 후에도 계속 유대인 형제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지만 거절당하고 결국 로마인들에게 넘겨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바울의 가시가 무엇이냐?’ ‘그로써 그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나?’를 설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바울이 이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는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크리스천들은 가난하고, 육신이 약하고, 받은 바 은사와 능력이 적은 반면, 어떤 크리스천들은 부하고, 건강하고, 받은 은사와 능력이 많습니다.
또 믿 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가는데, 정작 믿음이 좋은 크리스천은 일이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이고 궁핍하게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로써 그의 고통을 참을 수 있으며 그의 약함 가운데 하나님을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2-4절에서, “또한 그(=하나님)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도 인내할 수 있음은,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가 벼리어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양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 가운데 온전하여집니다. 우기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어 달리는 때는,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때이기보다는 나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어부와 세리, 그밖에 세상의 눈으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로 12제자를 선택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미련함과 약함이 세상의 지혜와 능력보다 지혜롭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기도에 "No"로 응답해 주시며,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당케 하시는데 이는 바로 우리가 연약할 때에 곧 그리스도를 통하여 강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자신이 부족함이 없다고, 온전하다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그렇게 절실하게 찾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이러한 사람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는 자기의 능력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전을 바라보기보다는 자기의 온전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약함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안에 머물고 나타납니다.

사람이 평안할 때 모든 일이 잘 되어나갈 때 하나님을 더 잘 믿고 더욱 감사하는 삶을 살 것 같은데, 성경 속의 예들에서와 실제 주변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살펴보더라도 그렇지 않음을 봅니다.
어려운 환경과 고통과 궁핍과 약함 가운데는 하나님을 열심히 찾고, 기도생활을 잘 하던 사람이 그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형편이 좋아지면 쉽게 간구함과 감사의 생활에서 떠남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우리 연약한 인간의 간교함이요 약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하심이 우리의 약함 가운데 나타나시니까 우리가 일부러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자청해야 할까요?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조건과 형편과 위치에 놓여 있더라도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강하심을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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