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4, 2026

복음 전도의 경제란 무엇인가?

복음 전도의 경제란 무엇인가?

 

오이코노미아의 또 다른 의미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 또는 위탁받은 직분을 설명하면서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 oikonomia), 곧 ‘경제’라는 말을 사용한다(고전 9:17; 엡 3:2; 골 1:25).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이 더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의 경제, 곧 사명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7–18절에서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복음 전도를 자신에게 위탁된 사명, 곧 반드시 수행해야 할 위탁받은 직분으로 이해한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3장 2절에서 에베소 사람들을 포함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을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경륜’으로 번역된 말이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 oikonomia)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명 또는 청지기직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이며 선물로 이해하였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도적 직분에 관하여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사도직은 자신의 지위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위탁하신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직분이었다.

복음 전도

복음 전도(evangelism)는 복음, 곧 좋은 소식(good news)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행위이다. “복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은 “좋은(good)”이라는 뜻의 ‘유’(εὖ, eu)와 “소식 또는 소식에 대한 보상”과 관련된 ‘앙겔리온’(ἀγγέλιον, angelion)에서 유래한 말로, 기본적으로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Thayer’s Greek Lexicon』은 ‘유앙겔리온’을 첫째, “좋은 소식을 전한 데 대한 보상(reward for good tidings),” 둘째, “좋은 소식(good tidings)”이라는 의미로 설명한다(삼하 18:20, 22). 신약성경에서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은 모두 76회 사용된다.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 euangelion)과 관련된 동사형은 ‘유앙겔리조’(εὐαγγελίζω, euangelizō)로, “좋은 소식을 알리다(announce good news),” “좋은 소식을 전하다(bring good news),” 또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다(preach good tidings)”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앙겔리조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61회 사용되며, 특히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빈번하게 사용된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복음, 곧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관한 것이다.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신 최초의 분으로서, 공생애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고 선포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복음서에 나타난 복음 전도의 경제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그의 복음서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막 1:1). 네 복음서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좋은 소식이 있다. 마태복음 4장 23절은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복음, 곧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마태복음 9장 35절은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3년이 넘는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 중간 무렵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동안 일관되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다.

바로 이 문맥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할 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37–38절에서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 가운데 하나도 그들을 사람을 얻는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눅 5:10; 참조 마 4:19; 막 1:17).

세례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4–6절에서 자신의 복음 사역에 대하여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 전도가 단순히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이러한 사역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역사가 이미 사람들 가운데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징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나사렛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복음에 관하여 예언한 이사야의 말씀을 읽으셨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참조 사 61:1–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읽으신 후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다(눅 4:21).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예언한 복음의 선포가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성취되고 있음을 밝히셨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눈먼 자를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사역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복음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셨다(참조 막 13:1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복음이 계속 전파되어 온 세상으로 확장될 것을 미리 내다보셨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 후에 마지막 때, 곧 종말(eschaton)이 올 것이다.

바울도 로마서 11장 25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복음 전도는 그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도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되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로 전파되었으며, 마침내 땅끝을 향하여 계속 확장되어 갔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5장 7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라고 말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 민족이나 한 지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통하여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에게로,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으로 계속 전파되고 확장되어 갔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명령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여 그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맡기신 것이다.

마가복음 16장 15–18절은 예수님의 명령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전한다. 여기에서도 복음은 특정 지역이나 민족에 한정되지 않고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의 명령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모든 민족과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도행전 1장 8절은 마태가 전하는 대위임령과 같은 복음 전도의 사명을 누가가 다른 형태로 전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 1장 8절은 복음이 지리적으로 어떻게 확장되어 갈 것인지를 보여 준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했다.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복음 전도의 사역은 이제 그의 제자들에게 맡겨졌으며,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온 세상으로 확장되어 가게 되었다.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복음 전도의 경제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사도행전 5장 42절은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고, 사도들을 제외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행 8:1).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의 교회가 박해를 받도록 허락하셨을까? 예루살렘 교회에 일어난 박해는 복음이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유대와 사마리아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당한 박해까지도 사용하셔서 복음이 더 넓은 지역으로 전파되도록 하셨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제자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자신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와 그로 인한 그리스도인들의 흩어짐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복음의 지리적 확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행 12장). 요한의 형제이며 예수님의 세 핵심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는 헤롯 왕에 의하여 칼로 죽임을 당하였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베드로는 후에 하나님의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구출되었다.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계속된 박해로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지역으로 더욱 널리 흩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박해는 하나님의 교회에 고통과 희생을 가져온 나쁜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소식, 곧 복음을 더 넓은 지역으로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복음도 그들과 함께 전파되었으며, 결국 복음이 땅끝까지 확장되어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을 때 그 편지를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성경은 로마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그들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인 교사들이나 복음 전도자들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복음의 확장이 유명한 사도들만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이름 없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졌음을 보여 준다.

바울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선택한 일이 아니라 주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었으며, 그는 자신의 생명보다도 그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 하나님의 복음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밝힌다(롬 1:2–4). 따라서 바울에게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선언한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명까지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이 단순한 가르침이나 소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사야 52장 7절을 인용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사명을 높이 평가한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5절에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이며,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얼마나 귀중한 사명인지를 보여 준다.

또한 바울은 로마서 16장 25절에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하는 메시지를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며,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나의 복음”은 바울 자신이 만들어 낸 복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셔서 전하도록 하신 복음을 가리킨다.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으며, 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 전도의 사명을 통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바울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웠으며, 고린도 교회도 바울이 세운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서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통하여 고린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복음 전도의 경제는 하나님의 경제, 곧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 전도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가계에 들어오며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따라서 복음 전도의 목적은 단순히 복음을 더 넓은 지역에 전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가계,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하는 데 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 세계로 확장됨에 따라 하나님의 가계도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계속 확장되어 갔다.

 


Wednesday, September 23, 2026

복음 전도에서의 교회의 역할

복음 전도에서의 교회의 역할

 

교회의 어원

영어 처치(church, 교회)라는 말은 “주님”을 뜻하는 헬라어 ‘키리오스’(κύριος, kyrios)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에서 파생된 ‘키리아콘’(κυριακόν, kyriakon)은 “주님께 속한 것” 또는 “주님의 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이 말이 게르만어 계열로 전해져 독일어 ‘키르헤’(Kirche)와 고대 영어 ‘치리체’(cirice)등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교회라는 말에는 본래 “주님께 속한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편 신약성경에서 “교회”로 번역되는 말은 헬라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ekklēsia)이다. 에클레시아는 ‘에크’(ἐκ, ek, “~로부터, 밖으로”)와 ‘칼레오’(καλέω, kaleō, “부르다”)와 어원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에클레시아는 기본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모인 “모임(assembly)” 또는 “회중(congregation)”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114회 사용된다.

『Thayer’s Greek Lexicon』에 따르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ekklēsia)는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첫째, 예배를 위하여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회중을 의미하며,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구원을 소망하면서 함께 종교적 의식을 행하고 모임을 가지며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 규정에 따라 자신들의 일을 관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함께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1]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교회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자(마 16:16),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며,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트로스(Πέτρος, Petros)는 “돌” 또는 “바위”를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의 이름과 “반석”을 뜻하는 페트라(πέτρα, petra)를 연결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17절에서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교회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던 당시, 이 말씀에서 말하는 “교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앞으로 세워질 자신의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를 미리 말씀하셨을 것이다. 특히 마태복음 18장의 문맥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다루고 권면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이미 하나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비록 당시 그들이 자신들의 모임을 공식적으로 “교회”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중심으로 부름을 받아 함께 모이고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그들의 공동체는 장차 형성될 교회의 모습을 이미 보여 주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처음으로 형성된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여 있던 약 120명의 제자들의 공동체였다(행 1:12–17). 그들이 모였던 다락방의 소유자가 누구였는지는 사도행전 1장에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있던 다락방으로 여겨져 왔다. 사도행전 12장 12절에 따르면, 후에 베드로가 감옥에서 구출된 후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을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약 120명의 제자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사람으로 맛디아를 제비뽑아 선택하였다(행 1:23–26).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직 그들과 함께 계실 때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행 1:14).

오순절이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셨다. 사도행전 2장 1–4절은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으며, 그들이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베드로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으며(행 2:14–40), 그날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세례를 받음으로 약 3천 명이 제자들의 수에 더해졌다(행 2:41).

이렇게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따르면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으며, 집에서도 함께 교제하였다. 그 후 사도들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자 말씀을 들은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믿은 남자의 수가 약 5천 명이나 되었다(행 4:4). 이처럼 성령의 임하심과 사도들의 복음 증거를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짧은 기간에 매우 큰 공동체로 성장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회의 활동은 주로 예루살렘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썼고, 교회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매일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였다(행 6:1–4).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러한 일들을 감당하기 위하여 열두 사도 외에도 새로운 일꾼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교회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선택하였다(행 6:3). 그들은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그리고 안디옥 사람 니골라였으며, 사도들은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행 6:5–6). 그들에게 처음 맡겨진 주된 책임은 매일 음식을 나누어 주는 구제의 일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가운데 스데반과 빌립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면서 말씀을 증언하였고(행 6:8–10),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그리스도를 전하고 후에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행 8:5–40).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에서 선택된 일꾼들의 역할은 교회 안에서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왕성하여졌으며,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사도행전 6장 7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말한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는 말씀의 전파와 섬김을 통하여 계속해서 빠르게 성장하였다.

그러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 또는 역할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과 우리에게 그 사명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까지, 지역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죽임을 당한 최초의 순교자였으며,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μάρτυς, martys)이었다(행 6:8–7:60). 헬라어 ‘마르튀스’(μάρτυς, martys)는 본래 “증인”(witness)을 의미하지만, 그리스도를 증언하다가 생명까지 바친 사람들을 가리키게 되면서 영어의 “martyr”(순교자)라는 말로 발전하였다. 스데반의 순교는 예루살렘 교회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사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섰다. 사도행전 8장 3절은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가 행하시는 일을 인간의 생각만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사울과 다른 박해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였으며,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교회를 파괴하려는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도들을 제외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행 8:1–3).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는 참으로 놀랍다. 만일 교회가 계속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예루살렘 밖에서는 더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박해자 사울까지 사용하셔서 그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지게 하셨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와 사마리아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으며,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도 함께 전파되었다. 사도행전 8장 4절은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말한다.

결국 예루살렘 교회를 파괴하려는 인간의 계획은 오히려 복음을 예루살렘 밖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당한 박해와 그리스도인들의 흩어짐까지도 사용하셔서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그리고 마침내 땅끝까지 전파되도록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경제, 곧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더욱 넓은 지역과 민족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선택된 일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였다(행 8:5–13). 그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고 표적을 행하며 병든 사람들을 고쳤고, 그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빌립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마술을 행하던 시몬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도행전 8장 13절은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고 말한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의 복음 전도에 머물지 않고 더 먼 지역의 사람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고위 관리인 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었다(행 8:26–39). 그 내시는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빌립은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 53장 7–8절의 말씀을 설명해 주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주었다. 사도행전 8장 35절은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라고 말한다.

빌립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내시는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세례를 받기를 원하였고, 빌립은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행 8:36–38). 그리하여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후대의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그는 에디오피아로 돌아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의 회심과 귀환은 아프리카 복음 전도의 시작과 연결되어 전해져 왔다.

빌립의 복음 전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도행전 8장 40절은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고 말한다. 이처럼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을 사마리아 사람에게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에디오피아 사람에게까지 전하였으며, 그 후에도 아소도와 여러 성을 거쳐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였다. 빌립의 복음 전도는 복음이 지역과 민족의 경계를 넘어 점차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어 가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로운 계획은 사도행전 9장에서 박해자 사울이 오히려 박해를 받는 바울로 변화되는 사건을 통하여 나타났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행 9:2). 그런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그는 자신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행 9:3–19; 22:6–16; 26:9–23).

예수님께서는 사울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셨다. 주님께서는 사도행전 9장 15절에서 아나니아에게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으러 다메섹으로 갔던 사울은 이제 오히려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9장 20절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라고 말한다. 그를 듣는 사람들은 놀랐으며, 사울은 더욱 힘을 얻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였다(행 9:21–2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을 변화시키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사람이 오히려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더 넓은 세계로 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교회에 가장 큰 위협이었던 사울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복음이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이방 세계로 확장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자신의 계획에 따라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보내셔서 그 가족과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행 10장). 빌립을 통하여 복음이 사마리아와 에디오피아 사람에게 전해지고, 베드로를 통하여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전해졌으며, 이제 바울을 통하여 복음은 이방 세계로 더욱 널리 확장되어 가게 되었다.

사도행전 8장의 박해로 인하여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였지만,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행 11:19). 그러나 그 가운데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몇 사람은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행 11:20–21). 이처럼 안디옥에서는 복음이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을 찾아가 그를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안디옥 교회에 함께 모여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사도행전 11장 26절은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말한다. 바울의 안디옥 사역은 다메섹에서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부르심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앞으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여러 도시에서 수행하게 될 선교 여행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말씀을 가르치고 공동체를 섬기면서 이방인 선교를 위한 실제적인 경험을 쌓아 갔다.

특히 안디옥 교회는 바울의 선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최초로 선교사로 파송한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박해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안디옥까지 전해졌고, 이제 안디옥 교회는 그 복음을 다시 더 먼 이방 세계로 전하기 위하여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다. 따라서 안디옥 교회의 형성은 복음이 예루살렘 중심의 단계에서 세계 선교의 단계로 확장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한곳에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머물러 있도록 두지 않으셨다. 교회는 다시 한번 더 큰 시련과 박해를 겪게 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초대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는 헤롯 왕에 의하여 칼로 죽임을 당하였다(행 12:1–2).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의 교회가 이러한 박해를 받도록 허락하셨을까? 박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먼 지역으로 흩어졌고, 그들이 흩어지는 곳마다 복음도 함께 전파되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가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처럼 박해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어 갔다.

이러한 복음의 확장은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새로운 단계로 들어갔다. 사도행전 13장 1–3절은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말한다.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여 소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특정한 사람들을 선교사로 세워 다른 지역으로 파송하는 본격적인 선교 사역의 시작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신 목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전하기 위한 “택한 나의 그릇”으로 부르셨으며(행 9:15), 이제 안디옥 교회와 성령의 파송을 통하여 그 부르심이 실제적인 이방인 선교로 이어지게 되었다.

바울서신에 나타난 교회

바울은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ekklēsia)라는 말을 특정한 장소에서 예배와 신앙 교육을 위하여 모이는 모임, 지역의 그리스도인 공동체, 또는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바울은 아마도 에클레시아의 기존 의미인 ‘회중’(congregation)을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를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한 지체들’이라고 표현한다(롬 12장; 고전 12장). 또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표현한다. 이와 같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그 몸의 지체들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바울서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적인 표현들이다.

1.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 곧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ekklēsia)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롬 6장). 다시 말하면,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것처럼, 바울서신에서 교회는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다..

2.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 사이의 친밀하고 연합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22–23절에서 하나님께서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고 말한다(골 1:18 참조). 이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또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의 연합은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다. 이처럼 교회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긴밀하게 연합된 공동체이다.

3.    지역 교회로서의 교회

1세기의 초기 기독교 교회들은 대부분 규모가 작았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독립된 교회 건물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비교적 넉넉한 신자들의 집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을 나누었다. 이러한 교회를 가정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의 의미는 특정한 장소나 건물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루는 공동체에 있었다. 따라서 교회의 중요성은 그 규모나 힘을 과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해 나가는 데 있었다.

바울에게 교회는 복음 전도를 시작하고 확산시키는 기반이자 공동체였으며, 동시에 경제적으로 더 넉넉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가난한 그리스도인들과 나누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나눔을 통하여 교회는 앞에서 살펴본 ‘평균의 경제’를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지역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는 역할과 함께,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필요를 돌보고 나눔을 실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늘날 교회의 역할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교회 자체의 규모를 키우거나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는 데 있다. 초대교회는 많은 건물과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더 넓은 세계로 복음을 전하였다. 박해를 받아 흩어졌을 때에도 그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였으며,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여 복음이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파되도록 하였다.

오늘날의 교회도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교회 건물과 토지와 재정은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교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가계가 확장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진정한 성장은 건물의 크기나 재산의 규모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돕느냐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복음을 말로만 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 복음의 가치를 삶으로 보여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필요를 돌보고 서로의 소유를 나누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자신에게 맡겨진 재정과 자원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이웃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복음 전도와 나눔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제를 실천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현대 교회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자체를 확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가계를 확장하고 있는가?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은 자신을 위하여 더 많은 것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계에 들어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우리에게 보여 준 교회의 모습이며, 오늘날의 교회가 계속해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 또는 역할이다.



[1] Thayer’s Greek Lexicon, “1577. ekklēsia,” 『BibleH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