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란 무엇인가?
실제 비지니스 세계의 윤리적 문제
경제학에서 발생하는 여러 윤리적 문제 가운데에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있다. 역선택은 정보의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상황에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정보를 정직하게 공개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문제와 관련될 수 있다. 반면 도덕적 해이는 자신의 행동으로 발생하는 위험이나 비용의 전부를 자신이 부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기관이 그 일부를 부담하게 될 때 지나치게 위험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을 하게 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는 경우에 따라 자기 절제의 부족이나 지나친 사적 이익의 추구와 결합되어 경제윤리의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2007–2009년의 미국의 금융위기는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과도한 위험 추구와 잘못된 동기 구조, 그리고 금융시장에서 나타난 여러 비윤리적 행위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상업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대출과 관련된 주택저당증건(mortgage-backed securities, MBS), 부채담보부증건(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CDOs), 주택저당채권담보부증권(collateralized mortgage obligations, CMOs) 등의 복잡한 금융상품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였다.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투자에서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금융기관의 경영진과 직원들은 높은 보너스와 주식 관련 보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투자에 따른 위험의 상당 부분은 금융기관의 고객, 투자자, 주주 그리고 궁극적으로 금융시스템 전체에 전가될 수 있었다.
2007년을 전후하여 미국의 주택시장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2008년 금융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일부 금융기관들은 파산하였고, 다른 금융기관들도 파산의 위험에 직면하였다. 금융시스템의 붕괴와 심각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하여 미국 정부는 금융기관들에 대규모 구제 및 자본지원 조치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정부 지원에는 납세자의 자금이 투입되었으며,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신용의 흐름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일부 금융기관에서 경영진과 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가 지급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어났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을 받으면서도 경영진과 직원들이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자신들이 취한 위험으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비용의 일부를 정부와 납세자에게 부담시키면서, 성공했을 때의 이익은 자신들의 높은 보상으로 가져가는 행태는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잘 보여 준다. 이것은 경제활동이 단순히 이익과 손실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정직, 절제,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직과 같은 경제윤리의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의 특징
성경, 특히 예수님과 바울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모든 규제와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므로 자신의 삶이 비윤리적이라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방종(self-indulgence)과는 전혀 다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윤리적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책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이다.
경제윤리 또는 기업윤리의 관점에서 무엇이 윤리적인 행동이며 무엇이 비윤리적인 행동인가? 가난하거나 부유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 사람이 윤리적인지 비윤리적인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여전히 가난할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서도 종업원들을 착취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게으르고 일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가난해질 수도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한 결과 부유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가난 그 자체가 반드시 선한 것도 아니며, 부유함 그 자체가 반드시 악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어떠한 방법으로 소득과 부를 얻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O. C. 페럴(O. C. Ferrell), J. 프레드리치(J. Fraedrich), L. 페럴(L. Ferrell)은 윤리적 문제를 판단하기 위한 기본적인 가치로 성실성(integrity), 정직성(honesty), 그리고 공정성(fairness)을 제시한다.[1] 이러한 가치들은 경제활동과 기업 활동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의 가치와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돈을 벌고, 재산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하고, 물건을 사고팔며, 다른 사람들과 경제적 관계를 맺을 때 어떠한 성경적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가?
1. 정직(Honesty)
믿음의 사람들은 경제활동이나 사업을 할 때 고객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고 공정하게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36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정직과 공정은 단순한 개인적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경제활동의 중요한 윤리적 원칙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신명기 25장 13–16절에서도 경제활동에서의 정직과 공정을 강조하셨다.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서로 다른 저울추와 되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거래의 기준을 조작하여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을 금하셨다.
잠언 13장 11절도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라고 말한다. 부정직한 방법으로 쉽게 얻은 재물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을 통하여 조금씩 축적한 재물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Honesty is the best policy)”라는 오래된 격언도 이러한 경제윤리의 중요성을 잘 표현한다. 사업에서 정직은 단지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산이 된다. 고객들이 어떤 사업가가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그 사람과 계속 거래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에게도 그를 소개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직과 공정은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인 동시에 지속적인 경제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2. 성실성(Integrity)
경제윤리는 또한 굽은 마음이나 부정직함이 아니라 성실성(integrity)을 요구한다. 잠언 11장 3절은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성실성은 정직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인도하는 도덕적 기준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마음과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의 패역과 부정직은 결국 그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잠언 19장 1절도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사실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부정직하고 그릇된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실성은 정직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패역함이나 굽은 행동은 부정직과 연결된다.
경제윤리에서 성실성이란 단순히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다른 사람이 보고 있든 보지 않든 동일한 도덕적 기준을 지키며,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자신의 원칙을 쉽게 바꾸지 않는 올곧은 태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경제활동에서도 이러한 성실성을 유지해야 하며, 눈앞의 이익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3. 공정성 또는 공평성(Fairness or Impartiality)
공정성(fairness) 또는 공평성(impartiality)은 정직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모세는 신명기 10장 17절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적인 조건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시며 뇌물에 의하여 자신의 판단을 바꾸지 않으신다. 따라서 공정성과 공평성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윤리적 원칙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공정하고 공평하게 행동한다면 뇌물을 받거나 주지 않으며, 특정한 사람에게 부당한 특혜를 베풀지도 않는다. 개인적인 친분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거래 상대방이나 종업원을 차별해서도 안 된다. 경제활동에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이해관계자들을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경제윤리의 중요한 요소이다.
바울도 로마서 2장 11절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공평하게 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도 일상생활과 경제활동에서 다른 사람들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공정성과 공평성은 단순히 사업상의 좋은 정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경제윤리의 원칙이다..
4. 겸손(Humility)
건전한 기업윤리와 경제윤리를 위해서는 교만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이 필요하다. 사업주나 기업가는 자신의 지위와 권한을 내세우기보다 종업원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겸손한 자세로 대해야 한다. 고용주가 종업원들을 존중하고 겸손하게 대할 때 종업원들도 고용주를 신뢰하고 존중하게 되며, 자신의 일을 더욱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겸손은 개인의 신앙적 덕목일 뿐만 아니라 기업 안에서 상호 존중과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경제윤리의 원칙이기도 하다.
성경은 이러한 겸손을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삶의 자세로 가르친다. 야고보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권면하며(약 4:10), 베드로도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한다(벧전 5:5). 예수님도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4:11). 이 말씀들은 자신의 지위나 능력을 내세워 스스로를 높이려는 교만과는 달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겸손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삶의 자세임을 보여 준다.
예수님 자신은 이러한 겸손의 가장 좋은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는 하늘의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인간의 몸을 입어 이 땅에 오셨으며,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셨다.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겸손을 설명하면서, 그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한다(빌 2:7–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빌 2:9).
예수님의 삶은 참된 겸손이 단순히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앞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도 경제활동과 기업 활동에서 이러한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한다. 사업주와 기업가는 자신의 지위와 재산과 성공을 자랑하기보다 종업원과 고객, 거래 상대방을 존중하고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종업원 역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동료들을 존중해야 한다. 이처럼 겸손은 기업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게 하며, 그리스도인이 경제활동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게 하는 중요한 경제윤리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5. 검소함(Modesty)
경제윤리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삶이 아니라 검소한 삶을 요구한다. 잠언 15장 16절은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다. 많은 재산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사치스럽게 살려는 욕망이 삶을 지배한다면 여러 가지 경제적·윤리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기업이나 경제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 가운데 일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호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의 소득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사치스러운 생활을 계속하면 빚을 지게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얻으려다가 부정직하거나 불법적인 방법의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의 소득과 형편에 맞게 생활하고 지나친 소비욕을 절제하는 것은 개인의 재정관리뿐만 아니라 경제윤리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권면한다. 여기에서 육체의 욕망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한 욕망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검소하고 절제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검소함은 단순히 돈을 적게 쓰거나 가난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하고,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망에 지배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신의 만족과 과시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검소함과 절제는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6. 탐욕의 절제(Not Too Much Greed)
어느 정도 더 나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이며, 때로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동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욕구가 지나쳐 탐욕(greed)이 되면 사람을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 잠언 28장 25절은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라고 말한다. 탐욕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게 만든다.
전도서 5장 10절도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탐욕은 쉽게 만족되지 않는다. 더 많은 돈과 재산을 얻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면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 일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다. 돈을 버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관계와 삶의 더 중요한 가치를 소홀히 할 수도 있다.
탐욕은 또한 사람을 뇌물이나 부당한 이익의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잠언 15장 27절은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망이 정직과 공정성보다 앞서게 되면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거나 뇌물을 주고받는 것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기 쉽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2장 15절에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재물의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인간의 삶과 가치를 판단하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려는 건전한 욕구 자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돈과 재물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탐욕은 경계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재물을 소유하되 재물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7. 근면(Diligence)
경제윤리는 게으름이 아니라 근면을 요구한다. 잠언 12장 24절은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라고 말한다. 또한 잠언 13장 4절은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라고 말한다. 이 말씀들은 단순히 부지런한 사람이 반드시 부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근면한 태도가 경제생활에서 중요한 덕목임을 보여 준다.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권면한다. 여기에서 “더욱 힘써”라는 표현은 신앙생활에서도 적극적인 노력과 부지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근면은 경제생활에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도 필요한 중요한 자세이다.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가난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도 여러 가지 경제적·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일할 능력과 기회가 있음에도 게으름 때문에 가난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태도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수행해야 한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이러한 원리를 찾아볼 수 있다. 한 달란트를 위탁받은 종은 주인이 맡긴 재산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다. 주인은 돌아와서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면서, 적어도 자신의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맡겨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었어야 했다고 말한다(마 25:26–27). 이 비유의 일차적인 의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에 대한 충성과 책임에 있지만, 경제윤리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원리를 보여 준다. 자신에게 위탁된 재산이나 자원을 아무런 노력 없이 방치하는 것은 책임 있는 청지기의 태도가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위탁하신 시간, 재능, 재산과 기회를 게으르게 방치하지 않고 근면하고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
8. 신뢰성 또는 신실함(Trustworthiness or Faithfulness)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신뢰할 수 없고 신실하지 못한 태도가 아니라 신뢰성과 신실함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 10절에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신실함이 재산이나 책임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작은 일과 적은 재산을 맡았을 때 신실한 사람은 더 큰 일과 많은 재산을 맡았을 때에도 신실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생활에서의 신뢰성과 신실함은 일상적인 작은 거래와 작은 책임에서부터 나타나야 한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4장 2절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맡은 자”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위탁받아 관리하는 청지기를 의미한다. 청지기에게 가장 중요한 자격 가운데 하나는 자신에게 위탁된 것을 주인의 뜻에 따라 신실하게 관리하여 주인의 신뢰를 받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재산과 자원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능력과 기회도 하나님께 위탁받은 청지기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것을 위탁받은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자신의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뢰할 수 있고 신실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뢰성과 신실함은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기업윤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청지기의 책임이며,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9. 너그러움(Generosity)
마지못해 베푸는 태도가 아니라 기꺼이 나누고 베푸는 너그러움(generosity)도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에 필요한 중요한 성품이다. 너그러운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재물과 자원을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필요도 생각한다. 이러한 너그러운 마음은 기업 활동에서도 종업원과 고객, 거래 상대방과 이웃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고 그들의 형편과 유익을 함께 고려하도록 한다. 따라서 너그러움은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과 기업 활동에서 나타나야 할 중요한 윤리적 태도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9장 6–7절에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누는 행위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또는 마지못해 베푸는 것보다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나누는 것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너그러움은 단순히 많은 돈을 주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위탁된 재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꺼이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마음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많은 것 가운데서 나눌 수 있고, 가진 것이 적은 사람도 자신의 형편에 따라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위탁하신 재물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자발적인 너그러움은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한계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으며(요 8:32), 또한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말씀하셨다(요 8:36).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더 이상 율법의 정죄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아무런 윤리적 한계도 없는 무제한적인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거나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울은 로마서 6장 1–2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계속해서 지을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자유에는 분명한 윤리적 한계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유를 누리지만, 그 자유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에는 일정한 윤리적 한계가 있다. 우리의 행동이 그 한계 안에 있을 때에는 윤리적이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면 비윤리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단순히 “내가 이것을 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질문만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윤리적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둘째, 내가 어떤 것의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은가를 생각해야 한다. 돈, 재산, 소비, 쾌락이나 다른 욕망이 나를 지배한다면, 비록 어떤 행동 자체가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더 이상 그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유익한 것을 선택하고 어떤 것에도 지배받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3절에서 이 원리를 다시 강조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는 고린도전서 6장 12절의 “유익함”이라는 기준에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라는 기준이 더해진다.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결정이 다른 사람과 공동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도 함께 추구할 때 온전해진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JOY(조이)라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JOY는 Jesus, Others, You의 첫 글자를 딴 이름으로,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잘 보여 준다. 첫째는 예수님(Jesus), 둘째는 다른 사람들(Others), 그리고 마지막은 자신(You)이다. 이러한 순서는 그리스도인의 경제생활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생각하고, 그다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생각하며, 자신의 이익을 그 뒤에 두어야 한다. 바울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가르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중심적인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책임 있는 자유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행사할 때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는 고린도전서 8장 9절에서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한다. 이어서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는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말한다. 바울에게는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할 자유가 있는가 하는 것보다 그 자유의 행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13절에서도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에게 허용된 자유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믿음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자유를 스스로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 제한은 자유의 상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의 자유를 책임 있게 사용하는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권면은 그리스도인의 행동 전반에 관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경제생활은 우리가 매일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사고팔 것인지, 어떻게 돈을 벌고 사용할 것인지, 종업원과 고객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자신의 경제적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행사할 것인지와 같은 결정에서도 자신의 이익과 권리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경제적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경제적 자유의 한계는 단순히 “이것이 합법적인가?” 또는 “내게 이것을 할 권리가 있는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가?”,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에 의해서도 결정되어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단순히 법을 지키거나 경제적 이익을 얻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경제적 의사결정을 하는 삶의 원칙이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적인 경제생활과 기업 활동에서 성실하고 정직하며 공정하고 겸손해야 하고, 지나친 사치와 탐욕을 절제하며, 자신에게 위탁된 일과 재산을 근면하고 신실하게 관리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기꺼이 나누는 너그러움도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기업인은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기업 활동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종업원과 고객, 거래 상대방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웃으로 존중하며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경제적 자유 역시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지,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지,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경제윤리는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4)는 말씀을 경제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경제활동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1] O. C. Ferrell, J. Fraedrich, L. Ferrell, 『Business Ethics: Ethical Decision Making and Cases』, 12th ed. (Cengage Learning, 2019), 58–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