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ugust 27, 2016

“믿는 사람의 시민권” (빌립보서 3:17-4:1)


                   믿는 사람의 시민권” (빌립보서 3:17-4:1)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
       들을 보이라.
     18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자들아
            이와같이 주 안에 서라.


1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유럽에 것은 많지만, 살기 편한 것으로 따지면 미국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미국에 투자이민(投資移民) 오고자 하는 사람들은 50만불, 100만불을 투자하여 공장을 짓거나 사업장을 마련하여 동안 사업을 경영하여 이윤을 남기고 종업원 고용의 수가 늘어나야 영주권을 받을 있습니다.
당장에 미국시민권을 얻기 위하여 십만불을 내라고 하면 이를 흔쾌히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시민권이  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에 연고를 사람이라도 미국시민권자가 ,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북한을 방문할 있습니다. 북한의 형제, 친척들을 만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천국(天國)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여전히 인종의 문제가 있고, 빈부의 격차, 마약과 총기의 문제, () 다른 질병의 문제,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이 널려있습니다.
미국이 세상에서는 초강대국이요 가장 살기 좋은 나라중에 하나인 것이 분명한데, 이러한 미국도우리가 소망하는 천국(天國)” 아닙니다.

바울의 시대에는 현재의 미국시민권의 위력보다 대단한 로마시민권의 위력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정치적 지배권이  로마 본토뿐아니라 그리- 반도와 소아시아 전역에 미쳤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자가 누리는 특권은 대단했습니다.

그리-스와 소아시아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로마시민이 아닌 자중에 권력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비싼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로마시민권을 사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함으로 지배국의 시민이 되고, 그들에게 허락된 특권을 누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로, 로마시민이 아닌 사람은 현지에서 적당히 재판하여 재판관 임의로 처형할 수도 있지만, 로마시민권자의 재판에서는 이렇게 수가 없습니다. , 로마시민권자인 피고인이 재판의 결과에 만족할 없을 때에는 로마황제 앞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 가릴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자신이 나면서부터 로마시민(22:28; cf. 16:37, 22:25) 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소아시아 닷소(Tarsus)에서 났는데, 태어날 로마시민으로 태어났다고 함은 아마도 아버지 () 아니면 이전에 로마시민권을 샀을 것이고 로마시민권을 집안이라면 분명히 지방권력의 주변에 있었거나 로마정부에 어떤 연결줄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로써 사람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전도지를 돌아다닐 있었을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을 때에도 사사로이 처리되지 않고 황제의 재판을 청함으로서 로마로 이송되게 되었고, 그곳에서 빌립보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3장 4-6절에서 말한 대로 유대인으로 명문가문 출신이요, 학문으로도 당대의 석학 가말리엘의 제자요, 정치적·사회적으로도 로마시민이 누릴 있는 특권을 누린 사람인데도, 그것이 천국 시민권에 비교할 바가 못됨을 알고 있습니다.

2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나를 본받으라” (Imitate me!) 함이 얼마나 어려운 말입니까?
그런데, 바울은 자신있게나를 본받아 살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사는 것같이 너희도 나의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내가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the marks of Jesus) 가졌노라 했습니다.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함은 바울을 본받는 삶을 살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삶을 살려고 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많이 있게 하라는 뜻입니다.

18절: 내가 여러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2세기 교회의 문제는 아직 정경(canon) 없는 상태이라, 여러 가지 다른 주장들이 교회 내에 많았습니다. 3장 1절이하에서 보았지만 유대주의적 할례주의자가 있어서 믿음 이외에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이외에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온전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헬라 에피큐로스 철학의 영향으로 도덕폐기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 행위는 선악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이단주의적 혹은 거짓교사의 영향은 빌립보 교회라고해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해서, 바울은 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그들에게 이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라고 함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함은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 무효(無效) 만드는 행위(行爲)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효력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해주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능력(能力)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15절에서 예수님께서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가 돌아가신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는 영혼의 죽을 병이 나음을 얻고 영생을 얻으리라는 약속입니다.  할례도, 율법도, 행위도 어떠한 것도 효력에 더할 것이 없습니다.
해서,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증거할 ,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노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19절: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십자가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반면에, 십자가의 원수의 종국이 멸망임은 당연한 결론일 것입니다. 멸망은 무너져내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스러운 파멸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상에서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란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3절에서  바울은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배만-욕망만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터인데, 자신의 세상에 썩어질 , 마땅히 부끄러워야 죄를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의 삶입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했습니다.
땅의 일은 명예, 재물, 권세와 지위, 쾌락 등입니다. 이러한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나, 기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원수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는 땅에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위에 , 구원과 영생을 사모하며 바라보아야 것입니다.

20-21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市民權)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形體)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
미국의 시민권이 지상에서는 가치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하늘의 시민권과는 비교조차 없습니다.
여기에는 여전히 차별이 있고, 고통이 있고, 눈물과 슬픔이 있고, 재난이 있고, 이별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하늘에는 차별이 없고, 고통이 없고, 슬픔이 없고, 재난이 없고, 이별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웃음과 기쁨이 있고, 복락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3-26절 ( 하늘의)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오겠고했습니다.

거기로서 구원하는 ,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했습니다.
하늘의 시민된 우리 성도들은 하늘로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기 위해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중에 기다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로서 우리를 그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3절에서 바울은 변화에 대해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4절에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낮은 몸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키실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우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4 1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같이 안에 서라.

바울의 애절한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요, “나의 기쁨이라 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기쁨인 것은 바울의 전도와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에게 구원의 열매를 맺게 까닭입니다.

그들이바울의 면류관 것은 바울이 그들에게 전도하고 가르치고 그들이 구원에 이름으로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바울에게 보장된 까닭입니다.
바울은 그의 기쁨이요, 면류관이요, 자랑인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자가 되기를 권면합니다.  해서, 끝까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친구가 되며, 하늘나라의 시민권의 귀중함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입니까? 아니면 친구입니까?
그리스도 십자가의 친구가 되는 삶은 시민의 삶에 연연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됨을 사모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친구가 되는 삶은 배를 위하는-욕망을 위하는 삶이 아니요 하나님을 위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친구가 되는 삶은 죄된 세상 일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요 주님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삶이요, 땅에 것을 생각하는 삶이 아니요 위에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십자가의 친구가 되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자가 되기를 사모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