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1, 2012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시편 50:1-15)

"감사로 제사를 드리며" (시편 50:1-15)


이 시는 기도나 찬미의 시가 아니라 교훈의 시로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순종이 동반되지 않은 율법주의적 신앙의 폐단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제물을 바칠 때 예물 속에 담겨야 할 자신의 마음을 드리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행위를 책망하시면서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1-6절은 심판장으로서의 하나님의 호출명령, 7-15절은 형식적인 예배에 대한 책망입니다.

1절: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불셨도다.”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엘 엘로힘 야훼”라고 하나님에 관한 명칭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지극히 높고 엄위하신 하나님을 강조합니다(수 22:22 참고).

2절: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
“하 나님이 빛을 발하셨도다”...빛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epiphany)임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빛의 근원이십니다(창 1:3; 시편 27:1; 요한 1:4-9). 그는 세상의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인간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사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3절: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현의 모습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실 때 그 앞에 불이 삼키고 사방으로부터 광풍을 수반합니다(왕상 19:11-12 참고).

4-5절: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윗하늘과 아래 땅”...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심판하심은 전 우주적 구속력을 갖습니다.
“나의 성도”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이스라엘(신약에서는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제 사로 언약한 자”라고 함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참 15:7-21 참고). 그러나 사람이 어떠한 제사를 드리더라도 하나님 앞에 완전한 제사는 되지 못하였습니다(히 10:1-10 참조).

6절: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셀라).”
하나님의 심판은 온 세계에 미칠 것인데,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심판장이십니다.

7-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1인칭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은 물질적인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7절: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하 나님이 그 백성에게 수없이 말씀하셨지만 백성들은 귀로 듣되 마음으로는 듣지 않았습니다(사 1:2).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성도들은 지금도 성경과 환경과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8절: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이스라엘은 표면적 예배행위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아 모스 4장 4-5절에도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광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의 기뻐하는 바니라.”고 했습니다.
매일 제사와 예배드림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드림이 없을 때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아닙니다.

9-11절: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천 지간에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기르는 가축에서 시작하여, 산과 들 자연에 뛰노는 짐승들,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 바다 물속의 물고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지으시지 않은 것이 없고, 소유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12절: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하나님께서 배고파 주리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나의 제물 드림이 없으면 하나님이 무엇을 드실까?’고 생각하며 자기의 것을 가지고 선심을 쓰듯이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 제물을 드리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서 ‘주려도 달라 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그 이유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까닭입니다.

13절: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고대 원시종교에서는 인간이 짐승으로 제사드릴 때 신이 그 제물을 먹는 줄 알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림은 하나님께서 그 고기를 드시고 싶어서 바치라고 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통하여 원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을 드림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신령과 진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14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하 나님께 제사를 드리되 감사하는 마음의 중심으로 하여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하는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우리의 거룩한 삶으로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씀합니다.

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 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겪는 고통과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할 때 그를 도우사 환난에서 건지시며, 이를 통하여 그가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발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 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와 예배자의 삶이 무엇입니까? 예배드림이 없는 것보다는 물론 예배드림이 좋습니다. 그러나 예배드림 그 자체가 형식에 치우친다거나 자기만족이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예배가 아닙니다. 생활습관에 젖어서, 자기 자신의 경건의 모양을 자랑하기 위해서 드려지는 예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중심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와 찬송의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시며, 주님과 약속한 대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우주의 주인 되시며 장차 심판장으로 임하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경외하는 예배자의 예배드림이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 나님께서는 우리의 환난과 고통과 슬픔 가운데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원하시며 응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 중에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모습을 배워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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