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9, 2012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요한 13:31-38)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요한 13:31-38)
       
                                                                           1
성경말씀 가운데 사랑을 빼면 별로 설교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장입니다. 크리스천들에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중요한 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의 또 다른 책인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초지일관하게 사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권고합니다.
진리를 순종하는 사람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장 8절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말씀하는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의 허다한 죄가 덮음을 받았습니다.

                                                                                2
31-32절: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라고 함은 그의 죽으심의 때가 이미 정하여졌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라고 함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으심이 하나님 아버지의 인간구원계획을 완성하시는 일인 까닭입니다.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라고 함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인간구원이 완성될 것이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승천케 하셔서 그리스도에게 영광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 바울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3절: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시고 그들의 발을 씻기신 밤이 목요일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금요일 아침이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날 밤을 위한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을 제자들이 따라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요 인간구원을 위한 죽음은 예수님만이 가실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리고 유언과도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복음 15장 12절에서도 반복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새 계명이 아니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새 계명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이미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생활 가운데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 말씀하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서로 사랑함”은 예수님의 그런 희생적인 사랑이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알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모르든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36-38절: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6-38절은 예수님과 베드로와의 대화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아직도 예수님이 어떠한 죽음을 당하실 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실 때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실 ‘대속적인 죽음’-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시는 죽음--은 오직 그만이 담당하실 것이지만, 후에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할 것을 예언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용감한 베드로는 예수님께 항변합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 그를 포함한 모든 제자들이 도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또한 예언적으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실 때 그곳에까지 먼발치로 따라가지만, 사람들이 그를 한패로 붙잡고자 할 때,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마태복음 26장 69-75절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그저 부인하고,’ 두 번째는 ‘맹세하고 부인하고,’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고 부인’합니다.
부인(否認)의 강도가 점점 높아가며 목숨에 대한 애착이 커 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그를 장차 부인할 베드로도 사랑하시며, 그를 팔 가룟 유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군중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우리도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3
예수님의 이 세상에 오심은 그의 죽음이 있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확증이요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로 알게 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목숨을 버리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 같지만 예수님의 지고(至高)하신 사랑의 방향으로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