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9, 2012

“내가 온 것은” (요한 12:37-50)

                                                      “내가 온 것은” (요한 12: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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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1999년) 이스라엘을 여행할 때 안내를 맡았던 이스라엘 여행안내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크리스천은 그들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이라고 주장하고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구 예루살렘 성벽의 황금문(Golden Gate)을 통하여 권세로 임하실 것이라고 하는데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그 때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장차 임하실 때 그는 영광 중에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으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육신을 입고 세상에 처음 내려오시고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며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실 때 그의 사역은 심판주로서의 사역이 아니라 구원자로서의 사역이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몸을 그를 정죄하는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사람들을 위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지만, 그들이 후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까지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2
37-38절: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들을 때 표적을 보지 아니하고도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표적을 보아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현실은 복음을 전해듣고 표적을 보고도 믿음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출애굽을 한 60만 명의 20세 이상의 장정들의 경우는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옷과 신발이 닳지 않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매끼마다 내려주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습니까?
그들이 출애굽하여 한 달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고, 시내산에서 일 년을 머문 후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보고가 어떠했습니까?
또한 그 보고를 들은 60만 명의 이스라엘 장정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나머지 이스라엘 전부는 하나님께서 그 동안 보여주신 표적과 인도하심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애굽을 떠난 20세 이상의 장정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광야에서 그들의 불신앙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도 그들의 불신앙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때가 주전 1406년이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언케 하신 시기가 주전 700년경이었으니 700년 동안 그들은 여전히 불신앙의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광야 40년 유리생활 가운데 태어난 이스라엘 2세들과 그들의 후손들도 광야에서 죽어간 그들의 조상과 별반 다름이 없었습니다.

38절에 인용된 예언은 이사야서 53장 1절의 예언으로 메시야에 관한 예언입니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선지자들에 의하여 선포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이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39-41절: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頑固)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믿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신 까닭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40절에 나오는 인용은 이사야서 6장 10절의 예언의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시고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시기를 원하셨겠습니까?
이는 다만 그들의 눈먼 것과 마음이 닫혀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때로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꽉 막힐 수가 있을까?’라고 안타까움이 들 때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안타까우심의 표현은 바로 장차 이 땅에 오시고 사역하실 메시야의 영광을 보고 그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42-43절: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黜會)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법을 집행하는 관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랬다가 혹시 해라도 당할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44-45절: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리고자 함이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를 포함한 하나님이시요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오신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통로라고 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한에서 우리 믿음의 대상이라고 할 것이지만,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우리로 그 분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46-47절: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빛의 역할은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나게 하며 어두움의 권세를 깨뜨리고자 함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진리를 드러내시며 어두움에 있었던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심은 아직도 어두움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은 심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두움에 그저 머물러 있음이 심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음이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도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 주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을 믿고 바라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8-50절: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믿지 않는 자는 사망에서 구원으로 옮기지 못하였으니 이미 심판되어진 것이며 그 심판의 결과가 마지막에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회개하고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에스겔서 33장 11절에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 주실 때,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심판 받기를 원하셨다면 흠과 티가 없으신 그가 십자가에 죽지 않으셔도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몸을 죽이시더라도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금도 자유로 말하지 아니하고 친히 아버지의 명령대로 이루는 것뿐이니 그 명령 자체가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그 명령을 순종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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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이는 그들의 눈이 멀어있고 그들의 목이 뻣뻣하며, 마음이 완고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은 그들을 멸하거나 심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까지도 사랑하시고 말씀으로 구원하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2000년 전에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여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얻으며 우리의 삶이 주님으로 인하여 더욱 풍성하여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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