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8, 2017

“역사하는 믿음” (살전 1:2-5)



역사하는 믿음” (살전 1:2-5)


   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1
믿음은 말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장인 11장에서 역사하는 믿음을 보인 믿음의 선진들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벨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에녹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노아 역사하는 믿음으로 동안 오래참음으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주를 지어 그와 그의 가족 여덟 명이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 역사하는 믿음으로 부르심을 받았을 순종하여 바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여 나갔습니다.
아브라함 시험받았을 역사하는 믿음으로 그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자 했습니다.
모세 역사하는 믿음으로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습니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역사하는 믿음으로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구원을 얻고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기록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행함을 보였는데 이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에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믿음의 기도』로 알려진 죠지 뮬러는 믿음에 대하여 정의하기를믿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말씀하신 것들이 참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말씀하신 것에 따라 행하실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이러한 보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러한 신뢰, 이러한 확신이 믿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기록된 증거를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 2 26에서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라고 하면서도, 가난한 사람에게는너는 거기 섰든지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는 사람은 역사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또 2 14-17에서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몸에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합니다.
기도와 성경공부는 하는데, 주위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있는데도 그들을 모른 한다면 사람은 역사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 6에서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믿음이 믿음 되기 위하여서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사랑을 동반해야 합니다.

중국인으로서 세계적인 교회지도자요 선교전략가인 토마스 (Thomas Wang)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설득한 결과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기로 승락하긴 하였지만 마음에는 별로 내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북경에 있는 어느 선교사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선교사 부부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나도 저분들이 믿는 예수님이라면 믿어봐야 되겠다 다짐하고 비로소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주위사람들을 의식하여서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의 사는 것이 부담스러운데 그러한 삶을 억지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드리는 것은 은혜법칙 하에 있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로 이러한 삶을 사모하게 하며 성령이 우리를 도우실 이러한 삶이 나타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과 구원의 보장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남은 참으로 귀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여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어린아이는 하나님 안에서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 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하면, 장성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성화(聖化, 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칭의는고백하는 믿음으로 얻어지지만, 성화는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5:6, 또한 5:13-14; 야고보는 이를 행하는 믿음이라고 )으로 가능합니다.
고백하는 믿음 하나님의 은혜이듯이, ‘역사하는 믿음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백하는 믿음 하나님의 은혜로 사모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듯이, ‘역사하는 믿음역시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지 않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고백하는 믿음 인간 행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듯이역사하는 믿음또한 행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며 주장하시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을 원함도 연약한 인간의 바람이기는 마찬가진데,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를 시작하실 성령은 우리의 원함을 하나님의 원하심과 일치되게 하시며 육체의 원함으로부터는 멀어지게 하십니다.

2
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개척한 교회가 많은데 어느 교회 하나 그의 마음과 기도에 포함되어있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교회들 가운데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 마게도냐 지방의 교회들이 바울을 가장 기쁘게 하고 그를 열심히 도운 교회들입니다.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바울은 믿음의 초기에 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과 그의 전도에 반대하는 데살로니가 지방의 유대인들의 소요(騷擾)에도 불구하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음이 대견하였습니다.
해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역사”(work of faith) 선한 일의 열매를 맺는 능동적이며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진 후에는 믿음을 속에 구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행위는 믿음의 역사라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느 곳에 가든지 믿음의 역사가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생각나는 사람들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 보이지 않는 내적인 것이라면 역사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수고”(labor of love)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수고와 희생을 요구합니다.
바울은 사랑의 수고가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생각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 책의 저자 토마스 켐피스(Thomas à Kempis)고통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희생과 수고가 따르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고 없습니다. 참된 사랑이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20:35). 이것이 참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본문에서 말하는 아가페사랑입니다.

셋째는, “소망의 인내”(steadfastness of hope) 하나님 나라와 상급을 바라보는 사람은 인내할 소망하는 바를 얻을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각기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소망은 헛된 것이며( 1:23) 오직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 참된 소망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궁극적인 승리의 날을 바라보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1 19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자들은 현실 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할 있는 인내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사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쉬지 않고 기억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 대한 기억이 매우 자주 떠올랐기 때문에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생각나는 사람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이 복음을 처음 받아들였던 과거에는 그리스도께 대한 구속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있고 미래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삶의 초점은 확실히 예수그리스도께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그들로 인하여 감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쉬지 않고 기억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앞으로도 계속하여 이러한 일들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바울은 유대인의 박해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의 생활에 힘쓰고 있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믿음을 지키고자 힘쓰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심을 알게 합니다.

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전하여진 복음은 그저 말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해서 그저 환난이나 소요가 나면 그대로 시들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이라고 말씀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을 담대하게 지킬 있는 것은 바로 복음의 능력이 안에 역사하기 때문이며, 이를 위하여 성령이 도우시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확신 가운데 전달되어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복음을 전한 사람들로서 그들에게 먼저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와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기에, 그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함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도 동일한 능력과 성령의 역사와 복음으로 말미암은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에게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까?
사랑의 수고가 있습니까?
소망의 인내가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주위에 아름다운 소문을 내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갖고 우리 주위에 뿐아니라 복음이 증거되는 모든 곳에 믿음의 좋은 소문을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