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0, 2012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골로새서 2:1-5)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골로새서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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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있는 개신교회들의 어려움
얼마 전에 터키(Turkey) 이스탄불(Istanbul)에서 목회하시는 선교사님의 선교편지를 받았는데, 그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터키 내에 존재하는 개신교의 교회들이 상당한 핍박을 받으며 폐쇄명령이 떨어진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터키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기에 공공연하게는 개신교를 탄압할 수 없어서 하부법률인 건축법을 적용하여 압박을 가한다고 합니다. 현재 개신교회들이 예배드리는 장소는 주택가와 상가인데 이는 건축법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서 폐쇄명령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터키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바울의 이방 전도와 교회 개척의 중심지입니다. 여기에 에베소 교회, 갈라디아 교회, 골로새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 등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에서 편지하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 몰려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주님의 칭찬만이 있었던 빌라델비아와 서머나 교회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2세기 중반의 믿음의 표본적인 감독인 폴리캅(Polycarp)이 목숨을 희생하며 지킨 교회입니다. 이 지방에 바울의 땀과 수고가 배어있으며, 안드레와 요한과 빌립 등이 이곳에서 노년을 보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스탄불은 터키의 옛 수도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입니다.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 280?-337)가 자기의 이름을 따라 이곳을 명명하고 새로운 수도로 삼은 곳이며,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반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요한과 기타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의 노력으로 1세기부터 기독교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요, 4세기 콘스탄티누스 때에는 기독교와 종교정치의 중심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3세기 이후 오스만(Osman, 1259-1326)에 의하여 이슬람교를 신봉한 투르크(Turk) 제국이 들어서매 기독교는 그 씨가 사그러들고 터키는 이슬람교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의 한 가운데 이슬람 사원이 건설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과 요한이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지역이요, 그들의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아니하던 소아시아의 중심이었건만 지금은 기독교가 발을 딛고 있기가 어설프고 어려운 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한 지역, 한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라와 교회들의 생성되고 무너져 내림이 때로는 하나님을 무심하신 분인 것처럼 보이게 할 때가 있습니다. 앗시리아와 바벨론, 페르시아와 그리스, 로마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주후 70년 이후에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2,000년 가까운 세월을 유리한 것이며, 찬란한 기독교의 중심지 터키가 기독교가 발붙이지 못할 땅처럼 되어버린 것은 하나님께서 무심하신 까닭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신앙에서 떠났던 까닭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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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를 알기를 원함
라오디게아는 골로새 서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주로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이 한 지역에 있는 교회에 편지할 때 그의 편지는 주위 다른 지역에 있던 교회 성도들에게도 전하여지고 회람(回覽)되었습니다. 골로새서 4장 16절에 보면,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만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의 내부 문제에 관하여 권면하고 가르침을 주기 위하여 편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 바울의 이름으로 갖고 있는 서신의 수가 열 세 편이지만, 전하여지지 않은 편지가 적어도 (현재 전하여지는 서신에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도) 5-6편은 더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이 편지 쓰기가 곤란한 형편과 처지임에도 많은 편지를 쓰고 인편에 보낸 것은 그의 가르침과 권면이 각 교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 그 자신은 (편지를 받는 교회와 성도들은 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증거자의 사명을 따라 교회의 일꾼 된 자신이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및 그들과 더불어 바울을 얼굴로 알지 못하는 여러 교회들과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편지를 통하여 가르치고, 위로하고, 권면하고, 또 때로는 책망하는 수고를 함을 감추고자 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함이 무엇인지 골로새 성도들에게 알리고자 함이요, 또한 그들이 바울의 기도와 가르침의 대상인 것을 알게 함으로써 든든한 마음이 들게 함입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들이 모르게 기도할 때가 많이 있지만, 때로는 특정한 문제 가운데 놓여 있는 어떤 성도에게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음을 알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함은 어려운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그 성도님이 혼자가 아니며 그를 위해서 뒤에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게 함으로 힘을 얻고 마음을 든든히 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목회자도 교인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있음을 알기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의 힘든 목회가 그 자신만의 몫이 아니라 교인 전체의 몫이며 그 혼자만 어려움 가운데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 전체가 합심하여 그들 앞에 당한 어려움을 이김으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함입니다.

    2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함이라.

바울이 그의 어떻게 힘씀을 여러 교회들과 성도들이 알기를 원함은, 그로 인하여서 첫째는 저희가 마음에 위안을 받으며, 둘째로 사랑 안에 연합하고, 셋째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고, 넷째로 따라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깨달아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마음에 위안을 받음
이방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시며 파송하신 큰 사도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괴로움을 기뻐하고 교회 일꾼으로서 어떻게 힘쓰는 것을 앎은 그들에게 큰 위안을 주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편지를 통하여 보여지는 바울의 사랑과 힘씀은 쉽게 느껴질 수 있으며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함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각 사람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너를 사랑하되 나의 독생자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기까지 사랑하노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기만 한다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참으로 커다란 감격이요 위안이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며 지금도 나를 보호하시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위하여 내가 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인 헌신을 못하며, 시간과 재물과 생명 드림에 인색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개인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로 인하여 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위안을 얻고 증거하는 성도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성도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느끼며 아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원만한 이해의 부요에 이름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울이 필요하며 또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어떠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길래 교회 일꾼 복음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하며, 교회의 목회자는 믿음이 좋은 어떤 장로님은 하나님의 어떤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였기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인가 알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직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지며,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와 연합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더욱 잘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나타나지는가 알게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하심과 깊으심이 무엇인지 먼저 체험한 사람으로서 골로새 성도들에게도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알게 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기뻐하고 힘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함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골로새 성도들과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므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며(요한 3:16 참조),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시되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주셨음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가나안의 거민들 중에 그모스나 밀곰 우상들을 섬기던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태워서 재물로 바침으로써 우상에 대한 그들의 충성과 사랑을 보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천 년 전에, 그리스도를 사람들을 위하여 주시기 2,500년 전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그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어떠한지 확인하시기 위하여 그의 나이 100세에 얻은 귀한 약속의 자녀,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창 22:1-2). 아브라함이 사흘 길을 행한 다음에 하나님의 지시하신 모리아 땅(지금의 예루살렘)에 이르고 그곳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칼을 들매,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급히 멈추시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이삭)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사랑)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성도를 대표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을 확인하시기 위하여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지시하셨던 하나님께서 자신도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모리아 땅은 지금의 예루살렘 중심부로서 그 바위가 있는 곳에는 이슬람 사원 오마르 모스크(Dome of Rock)가 세워져 있고 여기서 불과 100미터도 안 떨어진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독자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믿음(=신실하심)과 사랑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희생제물로 죽임을 당하십니다(롬 5:8).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와 허물의 사함을 위해서 짐승을 잡아 피 제사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의 제사에 관한 지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하실 일들에 대한 그림자인데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드리던 모든 제사의 의미들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친히 드리신 속죄제, 속건제, 번제, 소제와 화목제 제물(祭物)이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과거의 죄와 허물, 하나님과의 소원한 관계를 위하여 희생제물로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독자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제물로 하셔서 제사를 드리시매 우리의 과거 죄와 현재 죄와 미래 죄가 모두 사함을 얻고 하나님과 영원히 화목되므로 다시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생제물을 드림이 아니라 죄와 허물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시기 위함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와 함께 사는 삶을 허락하시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난 길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구원됨).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비밀이신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듣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비밀”이라고 함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알려짐에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미스테리(mystery)--곧 수수께끼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 수만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기를 원하였습니다.

    3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감취어 있는 보화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성도 안에 거하심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게 하시는 지혜를 주시며, 또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무엇을 기뻐하시며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아는 지식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실 때 크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 33장 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비밀한 일을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부요함이 어떠한지 아는 지혜와 지식이 우리에게 있게 됩니다.

    4절: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공교한 말로 속이지 못함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오고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복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철학을 통하여 논리적으로 되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철학이 신앙에 대적하는 관계에 있지 아니하지만, 주후 1-2세기의 교회들에는 철학을 비롯한 세상의 학문들이 성도들의 신앙에 위협거리가 되었습니다. 피타고라스(Pythagoras, 580?-500? BC),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494?-434? BC), 플라톤(427?-347? BC) 등의 주장들이 교회 안에 이단이 생기게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철학적으로 달리 주장하는 신관(神觀)이나 우주의 생성(生成)-운행(運行) 원리들이 영지주의 이단사상에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기에 교회들은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당시 로마와 그리스, 소아시아 등 전 세계를 지배하던 것이 헬라철학과 사상--특히 플라톤의 철학과 사상이었는데, 어떤 이들이 어설프게 이 철학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비밀을 설명하려고 하다가 이단으로 빠져들었기에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이나 철학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 안에 감취어진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알 수 없습니다.

    5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심령으로는 함께 있음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권면하고 그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주기를 원하는 것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있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골 1:4-5). 그들이 잘못된 이상사상에 빠져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멀리 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잘 알기를 원함 때문인 것을 바울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의 갇힘으로 인하여 골로새 성도들과 육신으로는 함께 하지 못하지만 심령으로는(=in spirit)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로써, 그들을 모든 이단 사상들로부터 지켜주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바른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골로새 성도들의 규모와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
“규모”(τάξις: good order, orderliness)와 "굳은 것“(στερέωμα: firmness, steadfastness)은 군대용어로서 잘 훈련되어 절도(節度) 있고 신뢰가 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의 군사들로서 질서가 있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굳은 사람들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군사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 들어감으로 지리멸렬(支離滅裂)하는 것을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더욱 믿음이 나아지기를 사모하다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가끔 봅니다. 믿음이 한층 나아지기를 원하기에 어느 기도원 모임에 가거나 무슨 부흥집회를 가는데, 그곳에서 이상한 교리를 듣거나 요상한 체험을 하고 돌아와서는 기성교회와 전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믿음이 없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예가 가끔 있는데 이는 그가 원래 들은 복음과 하나님의 바른 진리에서 벗어난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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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결단
여러분에게 먼저 골로새 성도들과 같이 믿음의 규모와 굳은 것(열심)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규모와 열심이 건전하고 바르게 잘 표현되고 활용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힘쓰는 것을 그들이 알기를 원한 것 같이, 목회자로서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힘쓰고 기도하고 있음을 여러분이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마음에 위안을 받으며, 서로 사랑 안에서 연합하고, 풍성한 이해로 하나님의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더욱 더 잘 깨닫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신앙의 삶이 더욱 부요로와지며,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돌리며,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사라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얼마나 큰지 나가서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연합인 교회도 아울러 건전하며 풍요하며 하나님의 칭찬과 기쁨이 넘치는 장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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