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0, 2012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간구” (골로새서 1:9-14)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간구” (골로새서 1:9-14)       

                                                                            1
세상의 재미와 하나님을 아는 재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현재 갖고 있는 인생의 재미는 모두가 후천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세상의 재미에 몰두하여 그것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히로뽕 등 환각제를 먹거나 주사를 맞음으로 환각의 재미를 맛봅니다. 이 재미에 맛 들린 사람은 이것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환각제에 맛 들리기 전에도 그들에게는 다른 재미가 있었으며 환각제의 재미 없이도 그들은 이 세상을 충분히 재미있게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은 가끔 술을 마시지 아니하면 인생을 사는 재미가 없을 것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술 마시는 재미 역시 그에게 본래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맛에 길들여지기 전에는 술 마시는 일이 고역이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담배에 인 박인 사람은 담배를 피우는 재미 없이는 세상을 살맛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담배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돈버는 재미, 돈을 모으는 재미에 탐닉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양손에 돈을 쥐고 태어난 사람이 없으며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돈을 움켜지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 다음에 올 나라에서는 이 세상에서 통용되던 돈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재미가 따분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를 원할 때,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일을 힘써 행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재미에 맛을 들이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아마도 “내가 왜 아직까지 이런 재미를 모르고 인생을 살아왔지?”라고 지난날들을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늦은 것이 아니란 말이 있듯이 아직 더 살아갈 생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아는 재미를 즐길 날들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조지 뮐러(George Muller, 1805-1898) 목사님의 친구를 위한 중보기도
조지 뮐러 목사님은 평생에 5만 번의 기도 응답 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뮐러 목사님은 중보기도를 특별히 잘 드렸습니다. 남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 또는 도고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중보기도를 잘 들으십니다.
뮐러 목사님은 자신과 교제하는 믿지 않는 다섯 친구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기도를 시작한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때 한 친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한 친구를 위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뮐러 목사님은 나머지 네 친구를 위해서 중단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5년이 지났을 때 두 번째 친구가 복음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뮐러 목사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나머지 세 친구를 위해서 기도를 계속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6년째에 세 번째 친구에게 감동을 주셔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뮐러 목사님은 이번에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욱 더 남은 두 친구를 위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끝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네 번째 친구가 뮐러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섯 번째 친구는 뮐러 목사님이 임종하기까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뮐러 목사님이 기도의 용사였지만, 그의 다섯 번째 친구는 끝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섯 번째 친구도 뮐러 목사님이 죽은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뮐러 목사님의 친구를 위한 중보기도는 온전히 응답되어졌습니다.
여러분도 교우들을 위해서, 가정의 믿지 않는 식구들을 위해서, 또 이웃들을 위해서 쉬임 없이 중보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케 하며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2
    9절: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간구
3-8절에서 골로새 교인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바울은 9-14절에서는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로부터 골로새 성도들의 형편을 전해들은 그 날부터 바울과 디모데와 그 일행은 그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왔다고 말씀합니다.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구
바울은 먼저 골로새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말미암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해)이 주어지기를 구하고 이를 통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 사람으로서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은 사람의 육적인 생각과 학문을 통하여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그가 주시는 신령한(spiritual) 지혜(σοφία: wisdom)와 총명(σύνεσις: understanding)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13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하나님의 뜻)은 신령한 것(=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분별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기쁘시게 하는 신앙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할 것인데, 이는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총명(=이해)으로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 수 있는데,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깨달아 알 수 없고, 자기 멋대로의 해석을 내리게 되며, 그러므로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자기 멋대로의 삶을 여전히 살아갑니다.

    10절: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고 열매맺기를 간구
“주께 합당히 행하다”라고 함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에 맞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먼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골 1:4)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사무엘을 통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하시고, 호세아서 6장 6절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시고,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이에 따른 삶을 살되--곧 성도들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되--부득이함이나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순종함과 기쁨으로 그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맺을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은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알뿐만 아니라 자원함으로 그의 뜻에 순종함으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풍성한 열매맺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기를 간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신앙의 삶에서 열매를 맺으며 더욱 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달란트의 비유의 결론에서 예수님은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자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더욱더 풍성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의 축복하심을 얻을 것이지만, 이를 가벼운 것으로 여기는 사람은 처음에 갖고 있는 듯 했던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마저도 없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9절)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또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갖고 계신 계획은 무엇인가?’ 등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10절)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힘써서 그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을 살 때, 그는 또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잠잠히 계신 분이 아니라 그의 모양과 형상을 나타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은 광대하시며, 능력이 크시며, 긍휼과 축복을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신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함께 하나님 그분을 아는 지식이 점점 더 자라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11절: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기를 간구
성도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영접한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신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 성령의 권능이 함께 주어집니다. 교회생활을 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느껴지지 않음은 믿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기도에 능력이 나타나야 할 것이며, 병 고침에 능력이 나타나야 할 것이며, 말씀을 깨닫고 영을 분별하는 능력이 나타나야 할 것이며, 전도에 능력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야 할 것은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여러 가지 다른 형편 가운데 소망과 기쁨으로 그가 당한 어려움을 견디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기를 간구
바울 당시에는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당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단속하고 박해를 가하는 일을 시행하면 믿는 사람들은 지하로 몸을 피하여 그곳에서 생활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생활이 때로는 오래 계속되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그들 가운데 없다면, 그들에게 기쁨이 없고 따라서 이러한 힘든 믿음의 삶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영광의 힘(κράτος)을 따라 능력(δύναμις)을 성도들에게 허락하십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이 소망 없는 세상에서 소망과 기쁨을 갖고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그들 앞에 놓인 믿음의 장거리 경주를 잘 달려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12절: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감사하게 하시기를 간구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마지막 간구는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감사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풍성하신 은혜와 긍휼은 생각하지 않고 당장에 그 앞에 놓인 어려움과 고통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우선적으로 감사할 것은 그가 흑암에서 우리를 건지사 빛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 줄 알기만 한다면, 우리의 입술과 심령에는 끊임없는 감사가 솟아날 것입니다.

    13-14절: 그가 우리를 흑암(黑暗)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救贖)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3-14절은 성도의 감사의 대상이신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부연설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기심
우리가 전에는 골로새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흑암(黑暗)의 권세 하에 놓여있던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 12-13절에서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그를 바라보는 자마다 사단이 지배하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증언합니다.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곧 ‘하나님 나라’인데, 여기에서 ‘아들의 나라’라고 칭함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나라”라고 함은 지역적인 개념이 아니라 통치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이 미치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이 임하옵시고”라고 간구합니다.
                                                   
이 세상을 살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우리에게 임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라야 가게 됩니까?
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의 소망’ 중에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는 이 세상을 살 때에도 그가 간구하는 ‘하나님의 나라’--‘그리스도의 나라’가 그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다스리심--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순복하고자 할 때 그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그리스도의 나라의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에 순복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10절에 말씀한 대로, 주께 합당히 행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이까?”라고 물을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복하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찬송가 495장의 작사자는 “주 예수와 동행하는 삶”,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가 495장 1, 3절)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얻음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그의 다스리심에 온전히 순복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구속함--곧 죄사함의 은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 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인생들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사신(구속하신: redeemed, purchased) 까닭에 그는 우리의 구속주(Redeemer)가 되셨습니다.

                                                                     3
성도의 결단
여러분 자신과 교우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시되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알게 하시며, 알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합당히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의 삶에서는 열매맺게 시며, 하나님을 더욱 더 잘 알게 하시며, 하나님의 힘이 성령의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마라톤과도 같은 이 인생의 길고 험한 경주를 달리되 기쁨과 소망 중에 끝까지 달리게 하시고, 그 위에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빛과 생명으로 옮겨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입술과 심령을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우리 앞에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이 놓여 있습니다. 거울에 모습을 비춰보기가 두려워서 점점 멀어질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설 용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추하게 일그러져 있거나 검뎅이가 묻어 있을 때에도 실망하여 그대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을 닮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것입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이를 수 없지만,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한 걸음 한 걸음씩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