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9, 2012

“신약 교회의 시작” (행전 1:12-15상)

                                       “신약 교회의 시작” (행전 1:12-1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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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람은 세 명이 모이면 ‘중국집’을 열려고 하고, 한국사람은 세 명이 모이면 교회를 세울 것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민 한국인들에게 교회는 삶의 중심에 놓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분이 초대교회와 평균의 현대교회를 비교하여 놓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나오는 대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한 반면에 현대교회는 서로 물건을 뺏으려고 애쓰고; 초대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으나, 현대교회는 1주일에 한번 각자 제 마음대로 필요에 따라 성전에 모이고; 초대교회는 한 집에서 떡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으나, 현대교회는 각자 살기 위해 각자 제집에서 밥을 먹고; 초대교회는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으나 현대교회는 교회 밖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고; 초대교회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여진 반면에 현대교회는 간혹 어쩌다가 한 두 사람의 새신자가 더하여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모든 것이 다 좋았고, 현대교회는 모든 것이 그저 그렇다고 무조건 깎아 내릴 것은 아니지만, 현재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의 지체로서 나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성경에 ‘교회’란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가 118(백 열 여덟)번 나옵니다. ‘에클레시아’는 ‘무엇으로부터’란 뜻의 에크(εκ)와 ‘부르다’란 뜻의 칼레오(καλεω)의 합성어로서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무리’란 의미를 갖습니다.
이 ‘교회’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마태복음 16장 1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하실 때에 베드로는 선뜻 대답할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라고 고백하였는데, 이 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칭찬하신 후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세상과 구분되어 주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들의 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38절에서 스데반은 신약교회가 있기 전 구약시대에 애굽이라고 하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홍해를 건넌 모세와 그가 인도한 이스라엘의 회중(assembly)을 ‘광야교회’(the church or assembly in the wildernes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광야교회는 하나님께서 직접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시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시게 하셨지만, 그렇게 모범적인 교회는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왜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실 땅, 가나안으로 가야하는지 목적의식이 분명치 않았고 따라서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특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그들을 위하여 지도자로 세우신 모세를 향하여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발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여 그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가야 했습니다. 성인으로 홍해를 건넌 사람들 중에는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요단을 건너 그들이 바라보고 소망한 가나안 땅을 밟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삶을 사실 때 그를 따라다닌 무리들도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업 중에 부르신 열 두 명의 제자들과 또한 전도를 위하여 파송하신 칠십 명의 제자들의 무리는 교회라고 하기에 족합니다. 그밖에 그저 구경 삼아, 양식을 얻기 위하여, 병 낫기를 원하여서, 예수님의 능력 행함을 보기 위하여,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 듣기 위하여 모여든 사람들의 무리도 넓은 의미의 교회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구경 삼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음을 볼 때 이것이 이상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는 한 때는 일만 명 이상 모이는 대형교회였습니다. 물론 교회당이라고 하는 유형건물은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라는 의미에서 교회 되기에 족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교회는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고난 당하실 때에는 다 흩어져서 한 사람도 교회를 지키는 자가 없었습니다.
왜 예수님의 교회가 이와 같이 힘이 약하였는가 하면, 아직 주님께로 향한 헌신이 없었으며, 믿음의 고백이 없었으며, 몇몇 믿음의 고백을 한 제자들도 그들의 믿음을 고백을 뒷받침하여 줄 성령의 역사가 아직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본 무리 가운데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므로 시작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신약시대 교회의 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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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제자들이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곳이라.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3절에 기록된 대로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곧 교회의 지상 사명은 “예수님과 그의 복음의 증인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마치신 다음에 감람산 꼭대기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사람들의 수는 500여명인데(고전 15:6), 이 중에 380여명은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본 후에도 각각 제 길로 가고, 오직 120명의 무리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한 곳에 유합니다.

    13절: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열심당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그들이 유한 다락은 요한이라고도 하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있었는데, 그의 집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커다란 집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120명의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의 열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14-15절: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외에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도(마태 13:55)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적 동생들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에는 그를 따르지 않던 사람들이며 때로는 그가 하시는 일을 못마땅히 여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후에는 온전하게 그를 좇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야고보는 기도의 사람으로 후에 예루살렘의 공회장까지 되었고 야고보서의 저자이며, 유다는 유다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밖에 이곳에 모인 120명중에는 예수님께서 전에 전도훈련을 위하여 파송하셨던 70명 혹은 72명의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해서, 그들도 나중에 귀하게 쓰임을 받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이 한 자리에 모여 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실 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하여, 또한 성령을 받을 때 역사하시는 권능을 받기 위하여 한 곳에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때 무슨 일을 하였습니까?
“마음을 같이하였다”(ὁμοθυμαδόν: with the same mind, with one mind)고 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는 다른 표현으로는 ”동일한 마음으로,“ ”한 마음으로“인데, 그들의 각기 다른 사람들의 마음들은 접고 하나님으로 향한 동일한 마음으로 기도함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모양이 다양합니다. 그들의 성격도, 생각하는 것도, 환경도 각각 다릅니다. 그들의 주장도 각각 다름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이해도 다릅니다. 저 사람이 왜 내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할까 답답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이해 못함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만일 서로 다른 성격과 생각과 주장과 이해와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교회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이는 항상 갈등이요 다툼뿐일 것입니다.
해서, 통일이 필요한데 하나님의 뜻과 말씀으로 마음을 같이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는 한 가지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마음을 같이한 그들은 “전혀 기도에 힘썼다”(All these devoted themselves to prayer)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한 성도들이 할 일은 “전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을진대, 성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주심을 믿을진대, 더욱 기도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기를 일주일 간 계속할 때, 사도행전 2장 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말씀한 대로 성령의 강림하심과 역사하심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본 무리 가운데 120명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쓴 것이 신약교회의 태동을 위한 준비라고 한다면, 성령의 무리들 가운데 강림하심과 역사하심은 신약교회의 시작이요 신약교회를 사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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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광야교회가 성부하나님의 역사요 사역이셨는데, 그들 중에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과 사모함이 적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가 성육신하신 성자하나님의 역사요 사역이었는데, 그들 중에 헌신함과 그 중에 얼마가 갖고 있던 믿음의 고백을 뒷받침하여줄 성령의 능력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바탕으로 세워진 신약의 교회는 믿음의 고백과 헌신, 그리고 그들의 고백을 버리지 않게 하는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모함과 소망이 있기에 2,000년 동안 계속 성장하여 왔습니다.
때로 교회가 대체적으로 타락한 시대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때에도 바알이라고 하는 세상 신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성도들이 있었기에 그 명맥을 계속 유지하여 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이어야 할 것입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바른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지고 놓여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사모함을 가진 성도들의 연합입니까?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초대 교회의 함께 떡을 뗌과 구제에 대한 마음이 있습니까?
그 위에, 함께 모일 때 하나님을 향한 동일한 마음으로 전혀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하는 열리고 낮아진 마음이 있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풍성히 있는 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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