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30, 2012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골로새서 1:18-20)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골로새서 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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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하나인 이유
허리가 붙은 채로 태어난 쌍둥이를 샴 쌍둥이(Siamese twins)이라고 합니다. 샴(Siam)은 태국(Thailand)의 옛 이름인데 이곳에서 이런 쌍둥이가 처음 태어났다고 하여서 그 지명 이름을 따서 허리가 붙어서 태어나는 쌍둥이를  ‘샴 쌍둥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샴 쌍둥이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오래 살 확률이 적습니다. 그 까닭을 생각해보면, 두 머리가 한 몸처럼 붙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여야 할 터인데 모든 일들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에 분이 쌓이다 보면 오래 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분리수술을 통하여 두 개체로 살아가게 할 수 있으니 다행스런 일입니다.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할 때에는 개성이 강한 상대방이 매력 있게 보입니다. 많은 문제에서 충돌하고 싸우고 헤어지지만 보고싶어서 다시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자기 주장이 강하고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이 외모와 조건을 좋아하는 감정에서 결혼을 하면 그들의 결혼생활은 한 사람이 수그러들기 전까지는 대개는 평탄치가 않습니다. 남편이 이 일을 하자고 하면 아내는 저 일을 해야 한다고 하고, 아내가 동(東)으로 가자고 하면 남편은 서(西)로 가자고 합니다. 자녀가 생기면 자녀들은 개성이 강한  부모의 틈바구니에서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기 쉽습니다. 매일 티격태격 싸우다보면 결혼한 것을 후회하게 되고 심지어는 갈라설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연애할 때 좋게 보이던 애인이 반드시 좋은 배우자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해서, 남녀의 좋은 결합은 남자가 개성이 강하고 주장이 셀 때는 여자는 부드럽고 순종형인 사람이 좋습니다. 여자가 개성과 주장이 뚜렷할 때 그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면 같이 살더라도 불화가 계속 되거나 혹은 깨어지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이럴 때는 그를 휘어잡을 수 있는 아니면 그가 너무나도 사랑하여서 자기의 강한 성격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든지, 아니면 아주 유순하고 포용적이어서 그의 강한 주장도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남성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가정의 머리, 교회의 머리
바울은 가정생활을 머리와 몸에 비유합니다. 에베소서 5장 22-23절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라.”고 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모두 가정의 머리가 되고자 할 때 그 가정은 불화하고 가정이 파탄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는 남편으로 가정의 머리되게 하시고 아내로 그 남편을 돕게 하셨습니다.
가정에 머리가 하나만 있어야 하듯이, 교회에도 머리가 하나만 있습니다. 그 교회의 머리는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이 말씀하는 머리의 역할은 주로 뇌(brain)의 기능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생각하고, 계획하고, 명령을 하달하는 일입니다. 지체인 사람들은 다만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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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절: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몸인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에베소서 1장 22절에서는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지”(엡 1:19) 알게 하심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보이는 장소임을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몸의 각 지체를 구성하는 교인들에게 전달되어집니다. 만일 지체가 머리에서 명령 내리는 것을 순종치 않을 때 그 지체는 참으로 우스꽝스런 모양일 것입니다.
머리에서는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안 된다고 명하는데 손이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고 도둑질을 하면, 머리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손으로 인하여서 손만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한 손을 가진 그 사람 전체가 처벌을 받습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명하시기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영광돌리라고 명하시는데,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 지체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말씀에 따르지 않고 각자 지체의 머리가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행한다면 각 지체가 따로 노는 기형의 모습으로 보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심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눈에 보이는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이 어떠한지 눈으로 볼 수 있게 육신의 몸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 살 동안에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 나라의 머리로 삼으신 것입니다.

둘째는, 이 세상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 위에 세워진 것인데, 그 믿음 고백의 대상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물론, 믿음의 주체되시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반석이시기도 합니다(고전 10:4; 찬송가 539장 참조). 우리는 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의 각 지체들로서, 또한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것은 그가 철저히 낮아지셨던 까닭입니다.
빌립보서 2장 7-11절에서 “(그리스도가)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아래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체이신 여러분이 구성하고 있는 교회의 머리이심을 믿으십니까?
그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 지체에 전달되어집니다.                                                   

근본이신 그리스도
“그가 근본이요”(He is the beginning)라고 함은 그리스도께서 만물생성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곧, 만물의 창조가 그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전 5세기를 산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주전 494-434년)는 만물이 생성되기 이전에 네 가지 요소(rhizomata, roots; stoicheia, elements)가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네 가지 요소는 불 혹은 태양(fire or sun), 공기(air), 땅 혹은 흙(earth)과 물(water)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불에 해당하는 신은 제우스(Zeus)요, 공기에 해당하는 신은 아이도네우스(Aidoneus), 땅은 헤라(Hera)요, 물은 네스티스(Nestis)인데, 근본이 되는 이 네 가지 요소 또는 네 가지 신성에 의하여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엠페도클레스를 비롯한 후세의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모든 만물의 근본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만물은 “유(네 가지 요소)에서 유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근본(ἀρχή; beginning)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에서 유로” 창조된 것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그리스도
그는 창조의 근본이요 “먼저 나신 자”(πρωτότοκος; first-born, 골 1:15)일 뿐 아니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먼저 나신 자(πρωτότοκος; first-born)가 되십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 계셨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들이 부활됨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부활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심은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부활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부활될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만물의 으뜸이 되신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 삼으심으로 그가 모든 피조물의 시작이요 근본임을 알게 하시고, 그를 모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신 것을 선포하심입니다.
에베소서 1장 20-22절에서 바울은 “그(=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고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9절: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심
“충만(πλήρωμα, fullness)”은 그 자체가 ‘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바울은 “모든 충만”(all the fullness)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시며 그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광대하셔서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모두 그 안에 수용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충만”은 하나님의 권능과 신적 속성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을 ‘충만의 하늘’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앞에서와는 달리 ‘그리스도’라 하지 않고 ‘예수’라고 칭한 것은 어떤 이단에 속한 사람들이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하여서 ‘인간 예수’가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신적 존재’인 ‘그리스도’가 비둘기 같은 성령의 형태로 임하셨다가, 십자가에 처형 받을 때에 ‘신적 존재’인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를 떠나 하늘로 가시고 오직 ‘인간 예수’만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와 ‘그리스도’는 분리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실 때부터 죽으실 때까지 전적인 하나님이시오 전적인 인간의 삶을 사셨습니다.
                                                   
요즘 어떤 사이비 교주들은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청년을 택하여 신성이신 그리스도를 덧입히신 것 같이 자기가 택함 받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신성의 기름부음을 받은 제2의 예수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의 망령된 주장일 뿐입니다.

    20절: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심으로 인간과 온 만물을 위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로 인하여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이 헐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가로놓인 ‘불화의 강’을 건너게 하는 ‘화목의 다리’가 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저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그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만물과 하나님과의 화목’(cosmic reconciliation with God)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을 때, 다른 모든 피조물들도 덩달아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는 만물이 사람들을 위해서 창조되고 그 운명을 사람들과 같이 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로마서 8장 19-20절에서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고 한 것은 다른 피조물들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징계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위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화목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케 될 때, 따라서 만물도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과 화목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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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충만의 축복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로 각 지체를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세우심으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충만을 수용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온전한 머리되실 때 교회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의 장소가 됩니다. 에베소서 1장 23절에 “교회는 그(=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그리스도)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충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과 하와를 말씀으로 지으시고 그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땅에 충만하라.”고 하심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숫적으로만 증식을 계속해 나가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진 아담과 하와와 그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과 찬송을 땅에 충만케 채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함이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패역 다음에 인간을 심판하시고 다시 그 관계를 회복하실 때마다 동일한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남은 노아를 비롯한 그의 식구 여덟 사람에게 말씀하실 때, 창세기 9장 1절(또한 9장 7절)에 보는 바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노아와 그의 아들들과 또 그 자손들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시고 이 지상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간의 교만함을 심판하신 후에, 갈대아-우르 땅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축복하실 때, 창세기 12장 2절에 기록된 대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음의 근원이 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라고 하심은 “네 이름을 충만케 하리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축복하시고 충만케 하심은 그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축복하시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들로  그곳에서 충만케 하시고자 한 것은 그들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의 깊으신 뜻을 살피지 아니하고 욕심을 따라 제 길로 행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신 그의 축복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그리스도로 교회의 머리 삼으시며 교회를 그리스도의 충만의 장소로 삼으신 것은 교회에 속한 지체들인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의 삶을 맛보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드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그리스도로 교회의 머리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충만이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기를 원하시는가 그 목적을 헤아려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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