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4, 2013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 (마태 28:16-20)

                                        “너희는 가서 제자를 삼아” (마태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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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류시인의 체험입니다. 교회 근처에 꽃을 파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늘 웃고 계십니다. 그 얼굴에는 늘 소망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주름살이 깊게 패인 할머니였지만 얼굴 전체에 웃음꽃이 피고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이 시인이 그 할머니에게 질문합니다: “늘 그렇게 웃고 계신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꽃 파는 할머니는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내 나이만큼 살면 슬픈 일,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금요일은 끝이 아닙니다. 겨우 사흘만에 부활의 새벽이 왔죠. 그래서 나는 괴로울 때면 사흘만 기다리자고 혼자 말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마음 속에 소망이 생기고 기쁨이 샘솟게 되었답니다.” 주님의 부활보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자신을 나타내심은 사 복음서를 종합 정리해보면, 첫째, 무덤을 방문하고 천사의 말한 대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그러나 아직은 미심쩍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와 요안나, 그리고 다른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문을 잠그고 있던 열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나중에 의심 많은 제자 도마가 직접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할 때 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천사와 여인들을 통하여서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직 고난 당하시기 전 마태복음 26장 32절에서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말씀하셨지만 제자들 중 아무도 이 말을 귀담아 들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그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시고, 그들이 갈릴리로 가기 전 아직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을 때에 자신을 나타내셨지만, 갈릴리로 간 제자들이 한 일이란 한 곳에 모여서 기도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난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긴가 민가 하는 마음으로 소일거리를 찾으며 보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보는 바대로 제자들은 갈릴리의 디베랴 바닷가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갑니다. 한 밤을 지새우며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아직 동이 환히 밝기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제자들이 대답하되, “없나이다.”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해서, 제자들이 말씀에 의존하여 그물을 던졌더니, 많은 물고기가 잡혔고 이를 세어보았더니 153마리나 되었습니다.
그들이 그물을 던질 때, 오른 편에는 안 던져보았겠습니까?
고기가 많이 잡히매, 그들이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인 줄 알았습니다.
무슨 장면을 연상시킵니까?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밤이 맞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돌아온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에게 나타나신 그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에 나타나셔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상황이 이와 같았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나 얻은 것이 없는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에게 배를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도 그물이 찢어질 지경으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그의 동무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와 같은 많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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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절에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더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주로 호수나 평지에서 이루어졌는데, 마태가 여기서 산을 말함은 아마도 산상수훈설교(5-7장)에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그들에게 긴 설교를 하신 그 산에서의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이 산입니다. 호렙산에서 불 떨기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케 하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의 마음에 머뭇거림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죄된 세상인 애굽으로부터 건져내시는 사명을 맡기십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갈릴리로 가라 명하신 것은 그들을 처음 부를 때에 그들에게 말씀하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하신 명령을 생각나게 하시고 공생애 3년여 동안 가르치시고 당부하시고 명하신 모든 것들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 위함이심입니다.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뵌 제자들 가운데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들 앞에 육신으로 부활하신 것이 확실한 데 이를 못 믿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여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주시고, 40년 동안 그들의 옷과 신발이 닳지 않게 하셨는데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의 마음이었습니다. 참 형상의 하나님 대신에 그들이 부릴 수 있는 거짓 형상의 여호와--금송아지를 만들어 그들의 불신앙과 불경건한 태도를 되풀이하여 보이고 있었습니다.

18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땅에서 매시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으시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9-20절에서 세 가지로 당부하십니다.
첫째는,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십니다. 아직 이 세상에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들은 사람보다 더 많음을 아십니까? 우리는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이러한 일을 감당치 못할 대 우리는 기도로서 또한 물질로서 이러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을 도와 이 일에 동참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자를 삼으라’ 하셨는데 이 제자는 저나 여러분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해서 우리는 그들에게 나의 윤리와 사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대신에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십니다. 세례예식을 집행하는 사람은 목사이지만, 세례를 받기 위한 믿음의 결단은 평신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위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사랑함으로서 그들에게 우리가 믿고있는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명하십니다. 교회생활을 하면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한 주위 사람들에게 할 일은 그들에게 주님께서 당부하신 것을 가르치는 것이요 또한 그들로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로 지키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이 주님의 당부를 지켜야 합니다. 먼저 믿은 사람이 지키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중 믿은 사람으로 지키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2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귀한 약속의 말씀을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은 1장에서 예수님의 족보와 함께 예수님의 탄생을 소개하는데, 마태가 소개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1장 23절에서 마태는 이사야서 7장 14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제 그의 복음서를 마감하매, 마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예수님의 “항상 함께 하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기록합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와 과거에도 함께 하셨고, 현재에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하나님이십니다.

아프리카 개척자이며 선교사인 리빙스턴(Livingston)이 오랜만에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글래스고우대학(University of Glasgow)이 수여하는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강당에 나타난 그는 몹시 초췌하고 쇠약(衰弱)해보였습니다.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심한 열병으로 스무 번이나 쓰러졌었다고 합니다. 이날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극심한 고생과 죽음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리빙스턴은 조용한 음성으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살아 계신 주님이 나의 길동무로 원시림과 사막을 함께 걸어가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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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부르신 갈릴리 호숫가를 경험하셨습니까?
아니면, 아직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심을 전혀 듣지 못하셨습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의 제자들과 같이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시긴 하였지만, 세상적인 실망으로 인해 좌절하고 낙담하며 슬픔에 잠겨있습니까?
아니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여러분에게 맡기셨던 사명이 무엇인지 갈릴리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는 놀라운 체험이 여러분 생 가운데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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