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24, 2013

“빈 들에서의 기적(奇蹟)” (마태 14:13-21)

                                        “빈 들에서의 기적(奇蹟)” (마태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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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기적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나눔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4복음서 모두에 나오는 유일한 기적입니다(마가 6:31-44; 누가 9:10-17; 요한 6:1-14). 그만큼 이 기적이 제자들에게 뚜렷한 이적으로 그 마음 깊숙이에 자리잡았으며 주는 교훈이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장소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대로 벳새다라고 하는 곳입니다. 벳새다라고 하는 지명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가버나움 동쪽의 벳새다 율리우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늘날 답가(Tapgha)라고 불리는 지방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 이전의 예수님의 사역은 잘 드러내어놓지 않은 가운데 행하시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만 오천 명, 여자와 아이까지 합치면 만 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을 먹이신 이 사건으로 인하여서 예수님의 이름은 갈릴리에서 뿐 아니라 유다지방에까지 알려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이후 얼마 뒤에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십니다.

복음서를 종합해보면, 세례요한의 목베임 다음에, 열 두 제자를 파송하는 일이 있고 그들이 돌아온 다음에도 갈릴리 지방에서 계속 병고침과 말씀의 사역을 하시던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시며 쉬시고자 하나 무리들이 알고 먼저 예수님이 가시고자 하는 곳으로 갑니다.
곧, 벳새다라고 하는 현재의 지명으로는 답가라고 하는 약간 언덕진 빈 들(deserted place, empty place)입니다. 이 벳새다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이하에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행하신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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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좇아간지라”고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했는데 무엇을 들으셨다는 것인지 13절만 갖고는 알 수 없으나, 마가복음 6:30을 보면 열두 제자들(혹은 사도들)이 그들의 행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함을 들으신 것인 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 가서 쉬라’고 이르시고 자신도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14절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the sick, 복수)을 고쳐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빈 들에 가신 이유가 쉬고자 함이셨지만, 무리가 그에게 나아옴을 막지 아니하셨으며, 그들 중에 있는 병자들을 치료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는 치료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치료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병과 육적인 병을 치료하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에게 나아가는 자마다 나음을 받습니다.

15절에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게 하소서.” 청합니다.
요한복음 6:7에 보면, 빌립이 말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 백 데나리온의 떡이 오히려 부족하리이다.”고 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건장한 일군의 하루 품삯이니, 현재로 계산하여 하루의 일당을 60불이라고 하면, 이백 데나리온은 12,000불입니다. 12,000불로 빵을 산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넉넉하지 않습니다.

1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의 주관자이시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하여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해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지만,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명하실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너희가 마련해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에 이미 오병이어와 비슷한 기적의 예가 나옵니다.
열왕기하 4:42-44(엘리사와 백명의 사건)에 보니,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엘리사)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었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그 사환(=게하시)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었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서 예수님의 예표인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사환 게하시를 통하여 일하고자 했던 것과 같이, 오병이어의 기적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용하셔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지만,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명하실 때,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너희가 마련해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에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6:8-9에는,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고 아룁니다.
안드레의 믿음이 빌립의 믿음보다 조금 나아 보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음을 보고 그것을 예수님께 아뢰지만, 또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분이신 줄 알지만 이 무리를 다 먹이실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그냥 있을 때는 단지 어린아이의 한끼 분의 식사밖에 되지 못하지만 이 작은 것을 나누고자 할 때 풍성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18절에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 '나눔의 기적'을 베푸시기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나눔의 기적은 우리들의 긍휼과 자선의 마음 가운데 나타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에 나오는 마게도냐 교인들을 통한 '나눔의 기적'은 그들이 부자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 던 기적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난하고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고후 8:2 참고) 나누고자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는 자녀들의 경제적 삶은 평균의 (나눔의) 경제원리가 실천되는 삶입니다. 고린도후서 8:13-15에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平均)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裕餘)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6:18에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웠더라"고 했습니다.
평균의 경제원리에 따른 나눔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realization)을 가져오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약한 자나 강한 자나, 남자나 여자나, 배운 자나 못배운 자나, 다 풍요로움을 맛봅니다.
19-20절에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祝謝)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것으로 축복하시기 위해서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그 떡과 물고기를 축복하시매 오천 명의 남자와 기타 숫자가 밝혀지지 않은 여자들과 아이들의 먹기에 부족함이 없고 열두 바구니에 남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차고 넘치는 풍요로운 축복이십니다.
시편 23:5에서 다윗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고 풍성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요한복음 6:1-14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은 6:22이하에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35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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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까닭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위에 아무 것도 여유있는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나 자신의 가진 것도 참으로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누고자 할 때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뒷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너희가 주어라!"
'너희가 형제와 자매의 목마름에 물을 주고, 베고픔에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음에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됨에 영접하고, 갇힘에 돌아보라'(마태 25:35-36)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 같이 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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