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rch 17, 2013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9)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마태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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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 마당에다 깻잎, 상추, 부추, 파 등의 채소 씨를 심기 위해서 조그만 밭을 만들었습니다.  마당이 작은 자갈로 덮여있기에 먼저 그 돌들을 걷어 내었습니다. 그 자갈 위에 씨를 뿌리면 뿌리를 내지 못하여 대부분의 씨는 죽을 것이고 설령 얼마간의 씨가 흙에 닿아 뿌리를 내린다 하더라도 자갈 틈을 비집으며 자라는 채소가 좋은 열매를 내기를 기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해서, 자갈을 먼저 들어내고 맨 땅이 드러났을 때 그 땅이 딱딱하기에 땅을 파헤쳐서 고르게 하였습니다. 딱딱한 흙을 부드럽게 하여 씨가 떨어질 때 쉽게 뿌리를 내리게 해줍니다.
그리고는, 먼저 주인이 개를 기르면서 개똥과 함께 흙을 모아놓아 건조해진 것이 있기에 그것이 좋은 거름이 될 것 같기에 파헤친 흙 위에 부어 다시 고르게 해주었습니다.
이제, 그 위에 채소를 잘 자라게 해주는 좋은 흙을 조금씩 덧뿌려주고 물을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뿌려 땅에 수분을 마련하여주고 한 달쯤  뒤에 씨를 뿌릴 생각입니다.
제가 그렇게 자갈을 거둬내고, 마른 땅을 파헤치고,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리는 것은 씨를 뿌릴 때 실하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함입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보면(41장) 상사(上士), 중사(中士), 하사(下士)란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군인의 계급이 아니고 세 종류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노자가 말하기를,
    상사(上士)--뛰어난 사람은 도(道)에 대하여 들으면 힘써 행하고자 하고,
    중사(中士)--어중간한 사람은 도(道)에 대하여 들으면 이런가 저런가 망설이고,
    하사(下士)--어리석은 사람은 도(道)에 대하여 들으면 크게 웃습니다.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道)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노자의 상사(上士), 중사(中士)와 하사(下士)는 고린도전서 2-3장에 나오는 바울의 세 종류의 사람--영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과 같습니다.
바울의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 안에 거하므로 모든 것을 분별(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는 사람이요(고전 2:15), 육신에 속한 사람은 가끔 성령의 일을 생각하나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로서 때로는 시기와 분쟁과 파당에 속하여 있는 사람이요(고전 3: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고전 2:14)입니다.
노자의 하사(下士), 바울의 육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는 길가의 밭이요, 노자의 중사(中士), 바울의 육신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돌밭이나 가시 떨기요, 노자의 상사(上士), 바울의 영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좋은 땅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한 매 주일마다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깨닫는 사람도 있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말씀으로 자라고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말씀으로 양육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교육을 받지 못하였는데도 말씀을 깨닫고 열매맺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 교육은 받을 만큼 받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에는 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마음이 완악하고 귀가 둔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마태복음 13장 14-15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서(이사야 6:9-10)를 인용하시는데,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만난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교회 일에 너무 깊게 관여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배우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혹시 하나님의 사역에 푹 빠져서 그가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서 떠나게 될까 두려워합니다. 나는 지금 세상 재미도 적당히 누리고 교회생활도 적당히 즐기고 있는데, 지나치게 말씀에 치우치면 혹시 내가 세상사는 재미를 버려야 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에게 이 재미가 더욱 크기에 제가 즐기던 세상 재미를 온통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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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절: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너무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은 병 고침을 받고 세상양식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은 그렇게 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매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해변에 선 무리에게 말씀하십니다.

3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심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게 하기 위함이십니다.
무슨 뜻입니까?
비유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의 뜻을 깨달아 알기가 쉽습니까?
아마 깨달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그 말씀의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나타납니까?
예수님께 나아오되 병이 낫고 세상일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은 비유로 하신 그 말씀의 뜻을 알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그의 삶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굳이 말씀을 풀어 설명하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말씀을 풀이하여 떠 먹여줘도 그것을 뱉어버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질문할 때 예수님은 11-13절에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4절: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뿌렸다고 했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19절에 표현하신 대로 천국 말씀입니다.
채소의 씨에는 좋은 씨 쭉정이 씨가 있지만, 씨 뿌리는 사람의 씨가 ‘하나님 말씀의 씨’인 한에 있어서는 이 씨는 좋은 씨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데,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씨를 뿌리셨고 지금은 목회자가 말씀의 씨를 뿌립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많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좋은 땅에만 씨를 뿌려야 할 터인데 왜 예수님의 비유에서 씨 뿌리는 사람은 길가에도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떨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나는 뿌리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잘못 떨어진 것입니까? 그런데, 8절에 보면 좋은 땅에도 “떨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각기 다른 땅이 말씀을 듣는 사람을 의미하기에 그렇게 “떨어졌다”고 한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이 길가인 줄 알기에 ‘당신은 들어도 소용없으니 듣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돌밭이나 가시 떨기이기에 ‘당신의 마음 밭이 좋은 땅이 되기 전에는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사람이 길가이거나 돌밭이거나 가시 떨기인 줄 알 때에도 그 밭이 언젠가는 좋은 땅으로 바뀔 것을 소망하면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길가”는 19절에 설명하신 대로 “말씀을 듣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미련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 때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 교회에 출석하였는데, 목사님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먹는 것, 마시는 것과 입는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라고 설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 말씀을 생각하며 교회 파킹장을 떠나는데,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그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가?”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속으로 “그렇지?! 그건 말이 안 되지?!”라고 하며 더 이상 그 말씀에 유념하지 않고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길가의 마음을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5-6절: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은 돌로만 된 밭은 아니고 흙과 돌이 섞여 있는 밭입니다. 그러나, 흙 밑에 돌이 있기 때문에 쉽게 뿌리를 낼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뿌리를 내지 못하게 막는 돌들은 무엇인가 하면 그의 주장이요 판단이요 편견이요 세상지식입니다. 이것이 하도 딱딱하기에 말씀이 뿌리를 내고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얇은 흙과 함께 섞여 있고 또 그 얇은 흙 밑에 깔려 있는 돌들이 다 부숴지거나 파헤쳐 제거되기 전에는 이 사람의 마음에는 말씀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말씀은 들을 때는 때로는 기쁨이 있고 은혜를 받았다 여기기도 하지만 교회를 떠나서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자기의 생각과 지식과 판단이 주장하는 대로 세상의 삶을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갑니다.                                                 

21절에 예수님께서는 이 돌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하십니다.

7절: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가시 떨기”의 사람도 돌밭의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이 사람의 문제는 “가시”입니다. 이 가시가 말씀의 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데, 이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입니다.
세상의 일로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고, 돈버는 일에 너무 열을 올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일을 좀 성별하여 거룩하게 지킬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온전한 십일조도 드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신 약속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눈앞에 놓여있는 염려와 근심과 재리의 유혹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의지해야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 것인 줄 알면서도 내가 이제까지 잡고 있는 줄을 놓아버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내게 있는 가시가 말씀이 성장할 수 있는 기운을 막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 “너희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말씀한대로 우리의 염려를 다 주께 내어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좋은 땅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8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일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일로도 염려할 때, 그 염려함이 상심을 낳고, 그 상심함으로 우리는 하나님 일뿐 아니라 세상의 일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염려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결코 어떠한 유익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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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수고와 근심의 짐은 다 주께 내어 맡기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한 지나친 염려도 버리고,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가장 귀중한 목숨과 몸의 문제의 해결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과 다른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주님께 맡겨 버리시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시는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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