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6, 2014

“세례요한의 증언” (요한 1:19-34)

                                                 “세례요한의 증언” (요한 1: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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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이자 에딘버러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던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son, 1811-1870)은 수술 중에 환자가 받는 고통에 대하여 매우 마음 아파하였습니다. 그는 환자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수술하기 위하여 수술용 마취제의 개발에 노력하였고 마침내는 성공하였습니다. 19세기 후반 마취제의 발견은 수술계의 혁신적인 일이었습니다.
한 번은 한 학생이 그의 강의시간에 심프슨 교수에게 질문합니다: “교수님의 생애에 가장 뜻깊고 소중한 발견 한 가지를 든다면 무엇입니까?”
그 학생은 당연히 ‘마취제의 발견’이란 답을 기대하고 질문한 것입니다.
심프슨 교수는 대답합니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광야로 내몰림을 당한 아사셀을 위한 염소의 모습으로(레위기 16장),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머물 당시 애굽의 장자들과 구분하여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리기 위하여 대신 죽은 어린양의 모습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시기 위하여 어린 양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과 함께 모리아산을 오를 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질문합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창 22:7)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사랑과 믿음을 보시고, 그의 고백대로 번제할 어린 수양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해서, 아브라함은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예비하시다’라고 붙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하여 어린 양을 준비하셨듯이, 온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이 번제로 준비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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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절: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세례요한이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베다니의 요단 강의 지류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의 기이한 행적과 복장과 담대한 외침에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이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보냈습니다.
세례요한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요단 강에 도착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가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다른 위대한 선지자인지 알아보고자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누구냐?”

20절: 요한이 드러내어 증거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세례요한은 그들이 묻는 것이 그가 그리스도인지 묻는 것인 줄 알기에 직설적으로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21절: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세례요한이 혹시 그러면 엘리야가 아닌가 질문합니다. 왜 엘리야인가 질문했나 하면 말라기서 4장 5-6절에서 하나님은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두려운 하나님의 날이 이르기 전에 오리라 예언되어진 엘리야가 아닌가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나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세례요한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은 아합왕 시대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의 재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하였다”고 세례요한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들은 또 질문합니다: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
여기서 ‘그 선지자’란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희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고 말한 “(후에 나타날) 나와 같은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란 곧 장차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22절: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그런데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가 보통사람이 아닌 알기에 계속 질문합니다. “그러면 누구냐?”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절: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세례요한은 자신이 누군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간명하게 선포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다.”
“외치는 자의 소리”는 이사야서의 두 번째 부분의 시작--곧 이스라엘의 회복의 장의 시작인 40장 3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세례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예비하고 증거하는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밝혔습니다.

24-25절: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그들은 이제 따지듯이 묻습니다: “네가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또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느냐?”
이에 세례요한은 자신이 무슨 권세로 세례를 주는지 답하는 대신에 그의 다음에 나타나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26-27절: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한 것입니다.
주인의 신들메를 푸는 것은 보통 노예 중에 하급의 노예의 일이었는데, 그리스도와 자신의 관계를 설명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신들메 푸는 노예도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 단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요한의 관계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사람과 개미의 관계보다 더욱 큰 것입니다.

28절: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세례요한이 회개의 물 세례를 베풀던 곳은 예루살렘 동남쪽 베다니 지방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세례요한에게 물으러 온 곳이 베다니 지방이라는 설명입니다.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두 번째 증거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의 허물과 죄의 짐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시고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30절: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0절에 나오는 증거는 15절에 나온 것의 반복입니다.
태초부터 계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요한보다 먼저 계신 것은 자명합니다.

31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1절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이 물로 세례를 주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장차 사역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미리 나타내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32절: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세 번째 증거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나오시고 그에게 물세례를 받으시고 뭍으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그에게 비둘기같이 임하시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마태 3:16-17).
해서, 세례요한은 그가 예수님께 물 세례를 베풀 때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도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33-34절: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네 번째 증거는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셔서 예수님 위에 머물렀기에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세례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다섯 번째 증거는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라.“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그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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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 때 사람들은 교만하고 자고하기 쉬우나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매우 잘 안 사람입니다. 그는 겸손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겸손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시요,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 되시는 분이십니다. 세례요한의 담대함과 겸손함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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