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6, 2013

"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9-10)

 
"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9-10)

    4:9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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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호흡이요 대화라고 흔히 말하는데 기도만큼 하기 힘들고 또한 사람을 주눅들게 만드는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뜨겁게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전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무 반응이 없으시다면, 또한 그런 경험이 쌓여서 나중에는 내가 드리는 기도에 확신이 서지 않고 자신이 없어진다면, 기도생활에서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서툰 기도에, 때로는 세상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되는 기도에,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 망설이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께 간구하지 못할 제목이 없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브루스 윌킨슨(Bruce H. Wilkinson)의 책 「야베스의 기도(The Prayer of Jabez)」가 2000년도에 미국에서 출간되고 2001년에는 한국에서도 번역-출간되었는데, 기독교 서적으로는 드물게 전 세계적으로 몇 천만 권이 판매되었습니다. 미국에서만도 천만 권 이상 팔리는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구하는 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라 세상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인 까닭도 있습니다.
윌킨슨은 그가 아직 목사로 청빙을 받기 전인 신학생일 때부터 역대상 4장 9-10절에 기록된 야베스와 그의 기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야베스의 기도를 생활 속에서 구하여 왔는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그의 구하는 기도를 통하여 나타났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가 받을 인세(印稅) 수입으로만 따져도 그에게 재물의 복을 더하여주신 하나님에 대한 간증은 실감나게 들릴 듯합니다. 그의 책이 출간된 것은 2000년도이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야베스의 기도'에 관하여 설교하고 강연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청중들에게 '야베스의 기도'를 할 것을 권했는데, 그의 설교나 강연을 듣고 '야베스의 기도'를 따라 한 사람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응답의 축복을 증거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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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특히 족보로 이어지는 1-9장--은 아마 성경 66권 중에 가장 읽기에 지루한 책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아홉 장에 걸쳐서 아담으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누가 누구를 낳았고, 누가 누구를 낳았으며'가 이어집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족보가 이어지는데, 따라서  '성경 읽기'를 하는 사람들은 그 전체 아홉 장을 그냥 지나쳐도 될 것 같은 부분 그 중간에 '야베스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사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란 책이 나오기 전에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도 이 '야베스'란 이름은 생소한 이름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윌킨슨의 책이 대 히트를 치자, 상당수의 발빠른 목회자들은 '야베스의 기도'를 그들의 목회원리로 사용한다, 교회와 교인들의 기도제목으로 도입한다고 난리법석을 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를 축복하셨는지, 또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야베스의 기도를 이해하고 우리들의 기도생활에 적용할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윌킨슨(Wilkinson)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진 야베스란 인물이 저에게도 참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야베스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이름에서 추정해보면, 그의 유년의 삶이 평탄치 않은, 아니 고통과 슬픔이 많은 삶을 산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히브리인들의 경우, 그들의 삶의 모습이나 여정을 반영한 이름들이 많습니다. 아담은 '흙(아다마)'에서 온 이름으로 그가 흙으로 지음을 받은 까닭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비'란 뜻이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홍해(Red Sea)를 건너게 하여 이끌어낸 사람 모세는 '건져낸 자'란 뜻이요, 그 생애동안 전쟁이 없이 평화를 누린 솔로몬은 '평화'란 뜻입니다. '야베스'는 '고통, 수고, 또는 슬픔'이란 뜻입니다. 그가 유다 지파의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 그 형제들은 또한 누구인지, 그 아들들은 누구인지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8절 다음에 나오는 9-10절의 '야베스의 이야기'는 전후의 족보와 전혀 상관없는 듯이 보입니다.

9절: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Jabez)는 누구인가?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로 '야베스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야베스가 그의 형제들과 어떻게 다른 삶을 살았기에 "더 존귀하다"는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이 '야베스의 이야기'의 기자는 어떠한 근거와 판단에서 그러한 결론을 내렸을까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그의 이름과 기도에서 힌트를 얻는다면, 아마도 그는 고통스럽고 실패의 연속인 것 같은 삶 가운데서도 복과 도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한 믿음과 의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요 존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야베스라고 한 까닭이 나오는데, 어머니가 수고 중에 그를 낳았기에 그 이름을 붙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극한 가난 중에 혹은 가정이 몰락한 가운데, 또한 아버지가 죽었는지 또는 다른 어떤 이유로 부재(不在)한 중에 출생하였을 것입니다. 하기에, 아버지 대신에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짓되 '야베스'라고 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자신의 수고와 고통을 아들의 이름에 반영시킨 것인데, 어머니의 수고와 고통만큼이나 아들 '야베스'의 소싯적의 삶도 고통과 슬픔이 많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10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네 가지로 간구하였습니다. 우리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구하는 목적이 분명할수록 좋습니다.

야베스의 기도(1): 복에 복을 더하여 주옵소서
야베스가 하나님께 간구하되 '복에 복을 더하여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 이하에서 아브라함에게 임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습니까?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셨습니다. 2-3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약속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신만이 복의 근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도 복의 근원 되게 하셨습니다.

만일 아브라함 뿐 아니라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의 근원'이 되시면, 이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나'를 축복하고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나를 욕하거나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동일한 것으로 갚아주신다고 하니 참으로 살 맛 납니다.

야베스의 기도(2): 나의 지경을 넓혀주옵소서
야베스는 그의 청년의 삶이 고통의 삶이요, 실패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든든히 붙들기를 원하였습니다. 그가 이제까지는 실패와 초라한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믿기에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나의 지경을 넓혀주옵소서."

세상축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목사님이 말씀하지 않았나요?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없는 듯이 오직 '세상축복만을 구하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기도가 아니지만, 장차 들어갈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나의 지경을 넓히는 일'을 간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박사학위과정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좋은 논문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논문을 빨리 마치고 좋은 직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잘못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축복의 말씀을 홍수 후에 노아에게도 주십니다. 창세기 9장 1절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열두 명 지파들의 대표 열 두 명을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파견하였을 때, 돌아와서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갈렙의 믿음의 보고를 기뻐하셨으므로 모세를 통하여 갈렙에게 가나안 땅의 좋은 부분을 주기로 약속하셨는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갈렙은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꼐서 약속하신 땅을 달라고 청원하였고, 그의 청원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받아들여졌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2-15절에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게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 동안 세상 기업을 허락하셨기에 세상 기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그 기업이 확장되게 해달라고 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관심사가 온통 세상에 붙잡힌 바 되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바라봄이 없을 때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3): 나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을 '보혜사 (도우시는 분: Helper)'라고 하시고, 그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 그의 뒤를 이어 오실 성령님을 '또다른 보혜사 (Another Helper)'라고 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항상 같이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사야 7:14)으로서, 또한 항상 거기 계시는 '여호와 삼마 하나님'(에스겔 48:35)으로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군대를 물리친 후에, 사무엘상 7장 12절에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입니다.

야베스의 기도(4):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는 "나로 한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환난과 근심의 연속입니다. 믿는 성도들은 이러한 환난과 근심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인데,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의 환난, 근심과 염려가 우리의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우리의 마음이 좋은 땅이 되지 못하고 가시떨기가 되는 것은, 22절에서 예수님께서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은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말씀하신 대로, 염려와 재리의 유혹 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러한 환난에서 벗어나고 근심이 없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 같이 여러분의 기도에 "Yes"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심
야베스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았기에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구하는 것을 듣고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7-11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어주심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얻기 위해서 성도는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구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지 못함은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였거나, 믿음의 기도를 드렸는데도 얻지 못함은 그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의 뜻 밖에 있거나 욕심을 따라 잘못 구한 까닭입니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 4장 3절에서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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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결단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창조의 땅인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도우심 가운데 번성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번성과 축복은 우리의 사치스럽고 지나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하심이 어떤지 이웃들에게 전하고 함께 나누기 위한 번성과 풍요로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문(呪文)처럼 '야베스의 기도'를 읊조릴 것도 아니요,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는 기도 자체를 금기시할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모든 복과 도움의 근원 되시며, 지경(地境)을 넓혀주기를 원하시며,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되,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기에, 세상 살 동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달라고 간구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되, 차고 넘치는 풍성한 것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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