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6, 2013

"아굴의 기도" (잠언 30:7-9)

"아굴의 기도" (잠언 30:7-9)


 30: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8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1
믿는 사람의 소원
어릴 때에 읽은 동화책 속에서 가끔 발견하는 것은, 요정이 노부부에게 또는 착한 어린이에게 나타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너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을 살 동안 바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천년 만년 이어져 나갈 것이 아니고 다만 이 세상을 살 동안 잠깐 또는 얼마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에 속한 많은 것들을 붙잡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 년에 백만 불 이상 수입을 올리는 것이 소원인가 하면, 어떤 사람은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소원이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분야에서 이름을 내는 것이 소원입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이 지나친 소원을 갖고 있기에 나에게 (눈에 보이는) 축복을 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넘기고자 합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는 동화책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의 이야기는 요정이 아니라 하나님(또는 하나님의 사자)이 친히 믿음의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열왕기상 3장 5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백성을 재판할 때 선악을 분별하기 위하여 필요한 지혜' 였습니다(왕상 3:9).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소원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富)'와 '영광(榮光)'도 더하여 주셨습니다(왕상 3:13).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네 소원이 무엇이든지 두 가지는 들어주겠다."고 하시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당시의 유명한 배우였던 에드워드 머독(Edward Murdoch)이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 잠을 자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 밤 중에 잠이 깨어 일어났는데,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기도의 소리가 들려와서 가만히 다가가 열려진 문으로 들여다보니 대통령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링컨은 두 가지 제목으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이 국민을 축복해주시옵소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 가운데도 이 국민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옵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링컨이 스무 살 때 어느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물건을 팔고 셈을 해보니 3센트가 더 남았습니다. 곰곰 생각해보니 8달러 3센트를 내고 물건을 사간 부인의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지체 않고 바로 부인의 집을 찾아가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 잘못으로 3센트를 더 받았기에 가져왔습니다. 용서하십시오."라고 하며 돌려주었습니다.

매일 일상의 삶 가운데서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는 무엇입니까?
거짓과 속임수가 판을 치고 돈이 만능이 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과 함께 정직함과 오직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아굴의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2
아굴(Agur)은 야게(Jakeh 또는 Yakeh)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그가 솔로몬 시대의 현자였다고 주장하나, 그가 어느 때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그가 이스라엘인이었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7절: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아굴이 하나님께 두 가지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아굴의 기도제목은 단 한번 구하고 말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가운데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라고 되어 있는데, 이보다는 "나의 죽기 전까지 내게서 은혜를 거두어가지 마옵소서(μ? ?φ?λ?? μου χ?ριν πρ? το? ?ποθανε?ν με)"라고 번역함(70인역 참고)이 더 그의 기도의 내용과 잘 맞습니다. 아굴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현재 살고 있는 삶을 계속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굴이 기도한 것과 같이 어떤 기도의 제목들은 매일 매일의 삶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 믿음의 사람들은 매일 반복하여 하나님께 성도에게 있을 것과 필요한 것을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8절: 곧 허탄(虛誕)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첫 번째 간구: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
아굴은 첫 번째로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
"허탄"이란 '속이 텅 빈 말 또는 예언'(emptiness of speech, or empty or false prophecy)이라는 뜻이고, "거짓말" 은 "거짓말, 거짓 예언 또는 거짓 증거(lie, false prophecy, or false witness)"라는 뜻입니다. 옛뱀이 허탄과 거짓말로 하와에게 다가왔기에 첫 번째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허탄'과 '거짓말'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들이 번번이 일어납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서 (발람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라고 말씀하고, 사무엘상 15장 29절에서 (사무엘의 입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허탄"과 "거짓말"은 우리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정직한 삶과 부정과 불의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인입니다. 허탄과 거짓말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의 것을 무마하기 위하여 또 다른 연속적인 허탄과 거짓말을 초래합니다. 이것은 오늘 내게서 없다가도, 내일 필요에 따라 찾아올 수 도 있는 매우 고약한 속성입니다. 따라서, 아굴과 같이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잠언 15장 8절에서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 간구: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시옵소서"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시고"라고 했습니다.
잠언에는 두 가지 종류의 가난과 부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했는데도 가난하다면, 그 가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이 사람의 가난은 하나님의 축복일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잘 경영하여 부한 자의 삶을 허락 받았다면,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 온전한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정직한 방법으로 재물을 긁어모으고, 따라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부자는 정직한 가난한 자보다 못하며, 이 사람의 부는 하나님 앞에 죄악입니다. 잠언 10장 2절에서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게으르고 나태하여 가난한 자 역시 하나님 앞에 죄 지은 자입니다. 잠언 10장 4-5절에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훈계합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시옵소서"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경제윤리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아니함"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이시고 입히시되, 여유 분을 쌓아두어 썩어지게 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동일한 교회 안에서 어떤 성도는 배가 터지고 돈이 너무 많아 어디에 쓸지 몰라 고민하고, 또 어떤 성도는 배가 너무 고프고, 당장 긴박하게 돈이 필요한데 어디서 구할지 몰라 고민한다면, 이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바른 신앙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매일 만나를 내려주실 때 하루 분의 식량을 거두게 하셨습니다(출 16:16; 제 육일은 안식일까지 이틀 분의 만나를 거둠, 16:22-23). 어떤 사람은 더 거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덜 거두기도 하였으나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람이 없었다"(출 16:18)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혹시 다음 날에 하늘로부터 만나가 내리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염려에서 이틀 분을 거두어 남기기도 했는데, 남긴 분량은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출 16:20)고 했습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이시옵소서"라고 기도함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바라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자의 부(富)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부가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게 허락되어진 부를 나눌 수 있는 풍요로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부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루에 열 끼 이상을 먹을 수 없습니다. 열 끼는커녕 세 끼 이상을 먹을 때 배가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는 그의 재물을 가지고 죽은 자가 건너야 할 강(江)을 건너갈 수 가 없습니다.
따라서, 부한 자도 아굴의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그럼, 그 나머지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성경은 필요한 양식이 없는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고 말씀합니다.

9절: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배부른 사람의 문제
아굴이 "오직 부하지도 가난하지도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주 부할 때나 아주 가난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는 것을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한 사람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여질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커다란 액수의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오히려 마음이 불안하고 갑작스런 삶의 변화로 행복보다는 여러 가지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부를 소유한 사람은 더욱 많은 재물을 거두어들이기를 원하여 탐심의 마음이 그 안에서 발동합니다. 적당한 재물이 있을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던 사람이 재산이 좀 쌓이기 시작하자 교회출석부터 뜸해지고 주일날도 온통 사업을 확장하는 일에 몰두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이 지나치면, 아예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발을 끊고, 나중에는 마음으로부터 "나는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라고 말하는 철저한 불신자가 되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문제
적당히 가난할 때는 여전히 소망을 갖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가난의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남의 것을 훔칠 것도 생각하게 됩니다.
'사흘 굶어서 도적질 안 할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가난 앞에 장사가 없고 정직한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나친 가난은 믿음의 사람에게도 미덕이 아니라 오히려 해(害)와 악(惡)으로 작용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에서 생긴 일인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농촌과 산간지역을 자원하여 나간 목사님이 너무 가난한 삶과 이에 따른 빚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기사가 실려서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두 다른 지역의 목회자에 관한 기사이기에 더욱 고통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들이 처음 농촌에서 산지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는 그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목회하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이 임하여 그 마을 사람들이 변화되고 교회도 부흥되겠지 하였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철저하게 그들의 마음 문을 닫아놓고, 출석하는 사람들조차도 목사님의 목회에 전혀 협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례(謝禮)라야 교인들이 뜨문뜨문 갖다 주는 성미(誠米)와 현금 십 만원(100불) 안팎이 전부인데, 그것도 교회를 위한 헌금으로 내어놓으면 생활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목회의 처음에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조금씩 도와주고, 또 아는 사람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일 년, 이 년이지 무한정 도움 받을 처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쩔 수 없이 빚이 쌓여가게 되고, 결국에는 빚쟁이의 빚 독촉에 대한 부담감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것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두 분의 젊은 목회자가 말입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자살이 죄인 줄 몰라서 그들이 자살하였겠습니까? 지나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치 않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영광을 가리는 일을 택하게 만든 것입니다.

3
성도의 결단
성도들의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필요를 미리 보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심령과 삶이 정직하시고,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에게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늘 시인하게 해 달라고, 우리의 생활 중에 하나님께 감사하게 해 달라고, 우리의 일상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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