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6, 2013

"다윗의 회개기도" (2) (시편 51:13-19)

 "다윗의 회개기도" (2) (시편 51:13-19)


  51:13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오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14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가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 하시나니 그렇제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 하시나이다.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1
하나님의 은혜 체험과 전도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Monica)는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방황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것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모니카는 어거스틴의 일생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그를 신앙으로 보살피고, 가르치고, 기도했는데, 정작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와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주교가 절망에 빠져있는 그녀를 보고는 말합니다. "부인이 하나님께 그토록 많은 기도를 드리며 키운 아이인데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어거스틴 자신도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가 싫어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밀라노를 여행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큰 슬픔을 느끼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질문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오랫동안? 어째서 지금은 아닌가?" 이때 비몽사몽간에 아이들의 음성인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집어서 읽어라, 집어서 읽어라." 그가 성경을 집어서 펼쳤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성경구절이 로마서 13장 13-14절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로써 어거스틴의 삶은 180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 (325년) 이후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교부들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방탕한 삶을 살아가던 청년인데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까? 첫째는 어머니의 기도의 능력이요, 둘째는 그가 끊임없이 자신의 죄의 문제로 고민하고 하나님과 씨름했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는 설교로 또한 책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가르치고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별로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노방 전도자들을 봅니다. 지하도 입구나 거리, 역 대합실이나 전철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소리칩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뭐 저렇게까지 할 것 있나'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아예 그런 사람들을 이상한 종교집단의 사람들로 취급하거나 멸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은혜를 체험하였길래 저렇게 목청을 높여서 증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말이 많아집니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게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에 관하여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의 짐을 풀어주심이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내가 고통과 슬픔과 절망 가운데 살아갔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나의 모든 고통과 슬픔과 절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내 자신도 용서할 수 없는 죄로 인한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죽음 이후에 더욱 아름답고 거룩한 나라가 내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견딜 수 없는 희열이 엄습합니다.
여러분은 이 기쁨을 마음속에만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큰 기쁨의 원인을 내가 갖고 있는데 그것을 속에만 간직할 사람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주위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는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2
오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허물을 용서해 주실 때 그의 새로워진 심령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할 것인지 서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칠 것이고(13절), 둘째는 주를 찬양할 것이고(14절), 셋째는 주를 전파할 것이요(15절), 넷째는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드릴 것(19절)이라고 서원합니다.

   13절: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서원기도(1):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이다
"그러하면"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과를 도말하시고,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고, 죄를 깨끗이 제하셔서 그의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시며,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그를 붙드시면'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심으로 그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을 회복시키시면,' '주의 도를 가르치겠다'고 서원하고 있습니다.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죄를 범하고도 죄인인 줄 몰랐던 자신처럼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도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도(道)"가 무엇인지 알게 하여 첫째는 그들의 죄와 허물을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나 그들의 죄와 허물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 중심에서 통회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자복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며 그들을 고통의 늪에서부터 구원하심을 알게 할 것입니다. 범죄자들이 이러한 하나님을 알고 체험할 때 그들은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14절: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간구(1):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하나님만이 구원이 되심을 다윗은 고백합니다. 아무도 그를 상한 심령에서 건질 수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구원이 되십니다.
"피 흘린 죄"라고 함은 밧세바를 취하기 위하여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터에서 일부러 전사케 만든 것(삼하 11:15-17)을 가리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그의 죄가 무엇인지 깨달은 후에는 이 죄의 짐이 그를 짓눌러 옵니다. 그는 이 고통과 부담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서원기도(2):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다윗은 그의 혀로 하나님의 의를 노래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죄 있는 자, 불의한 자와 함께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의 하나님은 자복하고 통회하는 자의 죄과를 말갛게 씻기시어 불의한 자를 의롭게 하십니다.

   15절: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간구(1):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죄의 무거운 마음이 그를 옥죄이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그의 죄로 억눌린 마음이 그의 입술을 무겁게 하고 닫히게 합니다.

서원기도(3):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용납하심을 그가 경험할 때 그의 입술이 다시 열릴 것이며, 그 입으로 용서와 구원의 주님을 찬송할 것이며, 이러한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경험할 때, 이 사람은 그의 입을 닫아둘 수가 없습니다. 입을 벌려서 찬송하며 또한 담대함으로 용서와 구원의 하나님을 주위사람들에게 증거하게 됩니다.

   16절: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 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 하시나이다.

제사와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주님
하 나님께서 제사 그 자체를 싫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 중심을 드리지 않는, 부정한 마음으로, 겉모양만으로 드리는 제사를 물리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호세아서 6장 6절에서 하나님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제사와 번제를 즐기지 아니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죄를 회개치 않은 사람이 드리는 외형적인 제사와 번제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자는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와야 합니다.
 우리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예배를 드릴 때 "자기 의"(self-righteousness)를 드러낼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심령이어야 합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란 자신의 범죄로 인해 찢기고 상처받았지만 죄의 모습을 그대로 주님 앞에 아뢰어 주님의 용서를 구하는 낮은 자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의롭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그 마음 중심에서부터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사람을 멸시하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등을 돌리시지 아니하시고 그를 용서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받으십니다.

   18절: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간구(3):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의 마음은 시온으로 급격하게 옮겨갑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나타나는 산이요, 예루살렘은 그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성(=도시)입니다.
다윗이 소망하는 바는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에 견고한 성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영영히 이어가기를 원합니다.

   19절: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서원기도(4):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드리리이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와 번제가 무엇인지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께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의 수소를 드릴 것을 서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후 깨끗한 심령으로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제사와 번제를 흠향(歆饗)하십니다.

3
성도의 결단
주님께서 우리의 먹보다도 더 검은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가 전에는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죄인인 줄 모르면서 살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인 줄 모르면서 불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는 삶이요 불쌍한 삶인 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그들도 우리와 같이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기억하지 아니하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잊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4-15절에서,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아름다운 발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거나,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드릴 때 입술과 겉모양으로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에서 상한 심령을 기뻐 받으시는 주님께,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는 주님께 찬송으로, 삶의 산 제사로 우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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