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6, 2013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빌립보서 1:3-11)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 (빌립보서 1:3-11)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懇求)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懇求)함은
     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始作)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確信)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心腸)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思慕)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證人)이시니라.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聰明)으로 점점 더 풍성(豊盛)하게 하사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榮光)과 찬송(讚頌)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
성도들이 좋은 목회자를 만나는 것도 축복이지만, 목회자가 그를 돕는 좋은 성도들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목회자들에게 가장 소망하는 성도들과 목회지가 허락되고, 모든 성도들에게 그들이 가장 원하는 목회자가 허락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해서, 목회자로서 보람을 느끼고 만족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거나 좌절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은 교회를 위하여서는 하나님께 더욱 매어 달려 기도할 것이요, 감사가 많은 교회를 위하여서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릴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가 넘치고 선한 목회자를 만나면,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더욱 목회자와 교제하여 신앙적으로 성숙할 것이요 그를 도와서 주님의 교회가 성장하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좀 부족하고 은혜가 덜 된다고 생각되는 목회자를 만나면, 그를 비난하고 교회를 옮길 생각부터 할 것이 아니라 그 목회자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드려야지 하는 발전적이고 건전한 생각을 할 때 그 사람의 신앙도 성장하고 교회도 부흥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문젯거리인 교회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또 모범적인 교회도 여럿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가 그렇고,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한 안디옥교회가 그렇고,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 그리스 반도 마게도냐에서 개척한 교회들이 그렇습니다. 빌립보를 위시한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등의 마게도냐 교회들은 21세기를 향한 현대교회들이 연구하고 추구해야할 모범적인 교회들입니다. 그들은 긁어모으는 교회가 아니요 나누어주는 교회였습니다. 특별히 부유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극한 가난 가운데 있던 교회였지만 주위의 그들보다 못한 교회들이나 성도들이나 이웃들을 돕기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사역한 바울에게 문젯거리의 교회가 있었는가 하면, 자랑거리의 교회도 있었습니다. 동일한 사람, 바울이 목회를 하였는데도 이와 같이 다른 교회들의 모습을 보입니다. 빌립보 교회를 비롯하여 마게도냐의 교회들은 바울의 자랑거리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통하여 증거되는 하나님 말씀의 씨의 좋은 밭이었습니다. 그 좋은 밭에 말씀의 씨가 떨어지매 뿌리를 내고,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뻗고, 잎이 나오고, 풍성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고자 했을 때,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고린도 교인들은 발뺌을 하거나 늑장을 부리는데, 가난으로 여유가 없는 마게도냐 지방의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이 모금운동에 동참합니다. 사실, 바울은 그들의 형편이 안 좋은 줄 알았기에 그들에게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어디서 이야기를 듣고 자기들도 이 일에 참여케 해달라고 당부했으며, 그들보다 1년 먼저 이 일을 추진해온 고린도 교회보다 일찍 마칩니다. 고린도후서 8장 1-5절에서 바울은 이들의 자선을 칭찬할 때,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自願)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 말씀합니다.

빌립보는 바울에게는 참으로 각별한 곳입니다.
사도행전 16장 9절에 "밤에 환상(幻像)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기록한 대로, 일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다니면서 더욱 견고케 하기를 원했던 바울은 성령의 계시로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 중부 마게도냐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마게도냐 첫 번째 사역지가 바로 빌립보이고 이후에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빌립보 지방에서의 복음사역은 바울이 자주(紫紬)장사 루디아를 만남으로 그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행전 16:14-15).
바울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서 모금한 돈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거기서 그를 싫어하는 유대인들에 의해서 붙잡히고 몇 년을 예루살렘의 감옥에 유하다가 황제에게 재판 받기 위해 로마로 옮겨져서 현재 가택연금 혹은 옥에 갇히는 상태에 있음을 이 빌립보교회가 듣고 그를 기도로서 돕고 또한 물질적으로 돕고자 에바브로디도 편에 작은 정성을 담아 바울에게 보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얼마간 바울과 함께 머물다가 돌아갈 기한이 되었을 때, 바울은 그의 편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한 그의 기도를 알게 합니다.

2
   3-5절: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나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감사와 기쁨의 간구
바울에게 이 빌립보 교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하면, 생각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드리는 대상입니다. 곧, 바울의 감사와 기쁨의 원인입니다.
이 빌립보 교회에 바울이 그렇게 길지 않은 날 동안 머물렀지만 그들은 바울을 열심으로 도운 사람들이요 바울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또 실천하는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입니다.
목회자의 보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1년 6개월이나 머물렀고 또 바울에 뒤이어 아볼로라고 하는 훌륭한 설교자를 사역자로 가졌지만 변화가 없었던 반면에 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떠난 다음에 변변한 사역자도 없었는데 그들의 믿음을 잘 유지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믿음에 진보를 보인 교회입니다. 이 어찌 바울의 감사와 기쁨과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목회자로서 어떤 성도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는 그가 목회자에게 향응(饗應)을 잘 베풀어서가 아니라 그의 삶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삶일 때 그렇습니다.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여럿이지만 특별히 빌립보 교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은 그런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복음에서 교제함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이라" 했는데, "복음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원어 "에이스 토 유앙겔리온(ε?? τ? ε?αγγλ?λιον)"은 직역하면 "복음 속으로(into the Gospel)"입니다. 성도들끼리 교제--서로 돌아보고 구제하고 교통하는 삶--하고 또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과 교제하는 삶이 '복음 속으로 들어가는 삶'이란 뜻입니다. 곧, 복음 안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삶이란 의미입니다.

   6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믿음의 착한 일들을 위한 간구
여기서 "착한 일"이란 성도가 서로 돌아보고 불쌍한 자를 구제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후에 지금까지 살아오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날"이란 그리스도의 재림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이 빌립보 교인들을 축복하셔서 이들이 현재 하고있는 이 믿음의 착한 일들을 계속해가게 해달라는 기원입니다.

   7절: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된 빌립보 교인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 대해서 각별히 생각하고 그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들의 선한 일이 끝까지 계속될 것을 기원함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늘 바울과 기도 가운데 영으로 교통하고, 바울의 선교사업을 때로는 기도로 때로는 물질로 도와 바울의 선교에 동참해온 것을 바울 자신이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가 개척한 교회에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사람을 보내어 호소한 일에 가장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교회가 바로 이 빌립보 교회인 까닭입니다.

   8절: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로 향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ν σπλ?γχνοι? Χριστο? ?ησο?)라 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속 가장 깊숙함에서 아무런 가식 없이 우러나오는 진실된 애정으로'란 뜻입니다. 단지 형식적인 표현으로서 '내가 너희를 진실로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애정의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마음 속을 뒤집어 보일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나의 이러한 마음을 아시지'라 함으로 극한적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9-11 절: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세 가지 기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세 가지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간구(懇求)합니다. 믿는 사람에게 '이만하면 됐지!' 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온전으로 날마다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도 빌립보서 3장 12-14절에서 보는 바대로 '얻은 자도 아니요 이룬 자도 아니요 잡은 자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라고 자신을 평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빌립보 교인들이 앞으로도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하게 행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허물없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선한 행위가 우리를 구원해주는 방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선하고 허물없는 삶'은 우리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 것을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이 반복하여 강조하듯이 사랑의 실천은 우리가 믿음이 있는 자요 주님 안에 거하는 자라는 증거입니다.

셋째는 빌립보 교인들이 의의 열매를 많이 맺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믿는 사람의 삶에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도,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되어 허물없는 삶을 사는 것도 궁극적(窮極的)으로는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고자 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르고 진실된 삶은 자기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자 함임을 빌립보 교인들과 이 편지를 대하는 우리로 깨달아 알기를 원함이 있습니다.

3
성도의 결단
제가 40세의 나이로 이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한 이래 인생의 가장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40대 전부(9년 5개월)를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21년여 전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되고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2년여 뉴욕주립대학교(Binghamton)에서, 6년 간 버지니아대학교(Charlottesville)에서 학원선교(Campus Ministry)를 하며 성경을 가르치고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학생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종종 생각합니다. 그들 중에 얼마간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 알고 있으며, 또 얼마간과는 직접, 간접으로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현재와 장차(將次)에 있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목회자로서 저의 관심이며 또한 저의 기도의 대상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믿음의 진보가 없었던 성도들도 앞으로의 신앙의 삶에서 커다란 믿음의 진보를 보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세 가지의 것--그리스도의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며,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축복이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트포드 한인장로교회에서의 고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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