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6, 2013

"다윗의 회개기도" (1) (시편 51:1-12)

 "다윗의 회개기도" (1) (시편 51:1-12)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음나이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꺽으신 뼈로 즐거워 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
죄(罪)와 회개(悔改)
4세기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지금 터키의 이스탄불) 교회의 주교(bishop)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7?-407)이 로마황제에 의하여 체포되었습니다. 황제는 크리소스톰에게 신앙을 스스로 포기하라고 강요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해서, 그를 어떻게 처리해야 좋은지 신하들과 의논합니다. 황제가 묻습니다. "그를 지하감옥에 집어넣으면 어떨까?" 그러자, 한 신하가 대답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지하감옥에 갇히는 것을 오히려 기뻐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믿는 신의 자비함을 묵상하고 찬양하기 위하여 지하감옥같이 조용한 곳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를 그냥 처형하는 것은 어떨까?" "그것도 역시 안됩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죽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자기는 죽음으로써 자기의 신 앞으로 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황제는 답답하다는 듯이 재차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신하가 대답합니다. "크리소스톰을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는 일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죄를 빼놓고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罪)를 한자어로 보면, 넉 사(四)자 아래에 아니 비(非)자입니다.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행한 것이 죄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네 가지에 대하여 성경 속의 죄의 기원과 관련하여, 첫째는 말하지 말아야 할 대상과 말한 것이요 (하와가 사단의 심부름꾼인 옛 뱀과 대화를 나눈 것), 둘째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요, 셋째는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만진 것이요, 넷째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은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죄가 세상에 오고, 사람들은 원죄의 구속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죄(罪)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 창조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교만에 빠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지 않을 뿐 아니라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또한,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과녁판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죄'에 해당하는 단어(하타트; 하마르티아[aμαρτiα])는 '과녁판을 빗맞추다'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회개(悔改)의 한자어는 뉘우칠 회(悔)와 고칠 개(改)의 합성어입니다. 즉, 회개란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다'라는 뜻입니다. 뉘우치는 부분이 회개의 20% 비중이라면, 고치는 부분의 비중은 80% 이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뉘우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침에 있습니다.
여느 세상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교인들도 뉘우침은 잘하는데 고침을 잘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는 고침을 잘하는 자녀입니다.
성경에서 회개는 '돌아오다(return)'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히브리어 '슢'; 헬라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eω]).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죄를 짓는 삶이라고 한다면, 멀어지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오는 것은 회개하는 삶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따라서, 마음과 삶이 변화되지 않은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중요하지만, 사단이 주장하는 이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죄의 유혹은 항상 있습니다. 해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죄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통하여 또 때로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2
시편 51편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로 인하여서 범죄한 사실(삼하 11장)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듣고(삼하 12:1-14) 자신의 죄를 깨달은 후 하나님 앞에 자신의 중심으로 참회하는 기도입니다. 1-12절은 죄의 고백과 용서의 간구, 13-19절은 하나님의 용서를 전제로 한 서원입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다윗은 자신의 죄과(罪過)에 대한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의 인자(steadfast love)와 자비(mercy)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자비로 그의 죄과를 도말(塗抹)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죄과'는 '저버리다', '이탈하다', '벗어나다'의 명사형으로 '변절', '반역'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탈한(벗어난) 행동이었음을 고백하고, 이에 대한 용서와 죄 없이함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나의 죄악을 씻기시고 죄를 제하소서
다윗이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그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입니다. 다윗이 그의 죄를 씻어달라, 제하여 달라고 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징계를 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유지를 위한 간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일시적인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 내지는 소원해짐입니다.

   3절: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다윗은 그의 죄가 항상 그 앞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범죄함에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 입술에도 있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의로운 체 하며 살아가지만, 마음으로, 입으로, 행위로 여러 가지 죄를 짓고 있습니다.

   4절: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였나이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관계로 그녀의 남편을 전장터(battle field)에 내보내어 암몬 족속과의 싸움에서 교묘히 죽게 만들어 일차적으로는 우리아에게 범죄한 것이지만, 자신의 죄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서 이탈함으로 하나님께도 범죄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곧, 수평적 인간관계의 파괴가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파멸을 가져옴을 직시한 것입니다.

   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나이다
다윗은 그의 선천적인 죄성(罪性)을 인정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의 피가 사람의 몸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죄성(罪性)을 인정한 것은, 그러나, 그가 지은 죄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핑계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가 그만큼 죄에 노출된 약한(fragile) 존재임을 고백함입니다.

   6절: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다윗은 입술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중심에서 진실로 통회함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임을 깨달아 아는 것이 지혜인데 다윗은 하나님께 그의 깊은 곳에서(in the inmost place) 이를 가르쳐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7절: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우슬초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게 된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데 사용되었던 식물(植物)입니다. 다윗은 그의 범죄함으로 그가 부정한 몸이 된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그를 깨끗케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유대인 전승에 따르면, 다윗이 하나님의 징계로 실제로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따라서, 그는 정결케 되기 위하여 우슬초를 사용하였는데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구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매일 매일 삶에서 저지르는 죄와 허물과 부정을 고백하여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8절: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그의 부정을 씻어주시고 그를 정결케 하심으로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고 응답하심이 다윗이 듣기를 원하는 즐겁고 기쁜 소리입니다.
그가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아 그의 뼈가 꺾긴 것 같지만, 그의 허물의 사함을 입을 때 그는 그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9절: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 절과 2절에 이은 다윗의 간절한 구함입니다. 그가 비록 범죄하였지만, 그의 허물이 참으로 큰 것이지만, 그는 이 시간 '용서의 하나님'(God of Forgiveness)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진노의 얼굴을 돌리시고 용서하심으로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달라는 청원입니다. 그의 모든 죄를 씻기셔서 없이하여 달라고 간구합니다.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직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인간은 스스로 정결한 마음(clean heart)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기에 하나님께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마음으로 죄 짓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상 정직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허물도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고 바로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주의 성신(聖神)을 거두어 가지 마소서
다윗의 죄 범함이 참으로 큰 것이지만 그러나 그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징계 당함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신을 거두어 가시는 그런 엄청난 저주(징계)를 면하기를 간구합니다. 다윗은 아마도 사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징계를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다윗에 앞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징계하셨는가를 잘 알기에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청합니다.

   12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소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를 받으셨다는 응답을 필요로 합니다. 그가 여전히 왕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때 이는 참으로 비참하고 괴로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를 받으실 때 그는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다윗은 즐겁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의 제사를 드릴 것입니다.

3
성도의 결단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죄와 허물을 범하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복되고 좋은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때로 '죄의 법'에게 삼킨 바 되는 것을 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바울도 통탄하였지만 이것이 우리 인생의 약함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약함을 죄 범함의 변명거리로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다윗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죄와 허물을 범할 때마다 통회하고 자복함으로써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늘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의 마음과 정직의 영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비록 약하고 죄에 심히 노출되어 있지만 내게 힘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여전히 성화의 과정의 삶을 사모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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