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간구를 드리자!” (야고보 5: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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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에 절친하게 지내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두 사람이 논의를 했습니다. 우리 둘 다 시골에 있으면 아무도 성공할 수 없으니 한 사람은 도시로 나가서 공부를 하자. 그리고 한 사람은 시골에서 경제적으로 도와주자.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는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까 네가 먼저 도시로 떠나라." 서로 먼저 하라고 말하다가 그중 '둘러'라는 친구가 먼저 그림을 공부하러 떠납니다.
남은 친구는 둘러의 공부를 위해 열심히 식당에서 일합니다. 둘러는 친구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 후 10년이 흘러 둘러는 마침내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고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친구가 일하는 식당으로 갑니다. 둘러는 거기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친구가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전 이미 그림 그리기에는 손이 굳어졌습니다. 제가 아니라 저의 친구가 성공해서 돌아오게 하옵소서." 그는 기도만 한 것이 아니고 친구의 성공을 위해 그림 대신 식당 일을 하는 노력을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이 모습을 목격하고 감동을 받아 그린 그림이 바로 "기도하는 손" 란 알버트 둘러의 명화입니다.
노인이 식탁 위에 빵 한 조각을 놓고 두 손을 모두어 기도하고 있는 그림의 주인공 죠지 뮬러(George Mueller) 목사님은 고아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에 있는 그의 고아원의 많은 고아들을 위한 정규적인 후원자가 한 사람도 없었지만 그는 고아들을 한끼도 굶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원자를 자원해 오는 사람들을 오히려 사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이 고아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이 고아들을 먹이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뮬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하셔서 고아들의 양식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은 멸시하는 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눅 18:9ff.).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아주 당당하게 십계명을 다 지키며 자신이 의인임을 드러냈지만, 세리는 얼굴을 감히 들지 못하고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것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사람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시고 세리의 기도는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삶으로는 바리새인이 더 의로운 듯 보이지만, 그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를 드러냄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되지 못하고 세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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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기회입니다. 해서, 고난당할 때 성도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소망 중에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찬송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즐거움의 근원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즐거운 일을 허락하시매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14절: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뼝든 자는 장로들을 청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장로들은 현재 교회의 목회자를 위시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렇게 함은 그 병자의 믿음으로는 아직 병 고침을 받을 수 없기에 믿음이 더 좋은 사람의 기도를 받기 위함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데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기름을 바르는 행위”는 구약시대에 행하여지던 것인데, 안수를 할 때 흔히 동반하던 것이었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경우는 첫째는 왕이나 선지자나 다른 직분자를 세울 때입니다. 직분자 중에 직분자인 메시아(=그리스도)를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합니다.
둘째는 “병자를 치료할 때 그의 이마에 기름을 발라서 준비시켰습니다.
셋째는 귀한 손님이 방문하였을 때 그에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거나 부어서 그를 귀하게 여김을 나타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병든 자를 위하여 기름을 바름은 하나님께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 위한 정성을 보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것입니다.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병자를 위한 기도가 응답 받기 위하여 요구되어지는 것이 있는데, 첫째는 병자에게 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병자에게 이런 믿음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기도 하는데 병자를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실 때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 상에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올라가시고 안 계실 때에 귀신들린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지만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고 결국에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그를 고쳐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태 17:19)라고 물을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대답하십니다.
16절: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너희 죄를 서로 고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본은 ‘죄(罪)’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본문은 복수형, τὰς ἁματίας)’ 대신에 ‘허물’에 해당하는 ‘파랖토마(복수형, τα παραπτωματα)’로 되어 있기도 합니다. 죄나 허물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중요한데, 또한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죄나 허물을 시인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이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허물을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나 자매가 병들었을 때 그를 위하여 기도해줌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는 이기적이기 쉬우나 타인을 위한 기도는 이타적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응답하시기를 즐겨 하십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의인”이 누구입니까?
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에서 시편 기자의 말(시편 14:1-4, 53:2-4)을 인용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시편기자가 말하는 의인은 “선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함으로 의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의인”은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역사를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한 의인이 드리는 간구(δέησις, earnest prayer or supplication)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시는 강력한 약속입니다.
시편 34편 15절과 17절에서 시편기자는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 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라고 했고,
잠언 15장 8절에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여호와)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했고, 잠언 15장 29절에서는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고 했고,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고,
마태복음 21장 22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시고,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세 그대로 되리라.”고 약속하시고,
요한일서 5장 14-15절에서 사도 요한은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17-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기 않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야고보는 하나님의 응답 받은 의인의 간구의 대표적 예로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우리 보통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나타난 일은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능력이 나타날 것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한 까닭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 이하에 나오는 엘리야의 기사는 하나님께서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을 주심으로 시작됩니다. 그 수 년의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그릿 시냇가에 머물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공급하시고, 이제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마를 때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게 하시고 거기서 떡 반죽 그릇이 마르지 아니하는 축복으로 엘리야를 먹이십니다.
삼 년 반이 지난 다음에 엘리야로 하여금 갈멜 산에서 450인의 바알 선지자와 400인의 아세라 선지자를 물리치게 하신 다음에는 그로 산꼭대기에서 비를 위한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하늘이 아직 청명한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비를 위한 기도를 계속합니다. 그렇게 일곱 번을 기도할 때에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고 조금 후에는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왕상 18:44-45).
무엇이 하나님의 커다란 역사를 보게 합니까?
의인의 믿음과 믿음으로 드리는 간절한 구함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의 신앙과 성도들을 위하여, 그리고 또한 교회를 위하여 이러한 간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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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믿음으로 의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일과 형편, 환경 가운데 항상 하나님께 먼저 우리의 사정이나 고통을 아뢰는 성도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고 간구하는 것을 하나님께 들으시고 응답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합심하여서 교회를 위하여서, 교우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역사가 풍성하게 나타나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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