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31, 2012

“서로 돌아보자” (히브리서 10:22-25)

                                             “서로 돌아보자” (히브리서 1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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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에 안 드는 일도 더러 있고 때로는 다투기도 합니다. 차라리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 더 잘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 18:20)고 말씀하심으로 모일 것을 권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성도끼리 함께 하는 삶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권면하고 있는데,
로마서 12장 10절에서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라고 했고, 로마서 12장 16절과 15장 5절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라고 했고, 로마서 14장 19절에서는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고 말씀하고, 로마서 15장 7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아주라”고 권면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2절에서는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고 권고하고,
에베소서 4장 2절에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권고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8절에서는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권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에서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서는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베드로전서 4장 9절에서는 “서로 대접하라”고 말씀합니다.

언제나 함께 다니는 얼룩소, 검은소, 붉은소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자는 그 소들을 잡아먹고 싶어서 매일같이 기회를 엿보지만 세 마리의 소는 언제나 같이 다니며 사자가 덤벼들면 세 마리가 한꺼번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사자가 약간 떨어져 있는 얼룩소에게 다가가서 “세 마리의 소 중에서 가장 힘 센 것은 자기라고 붉은소가 뽐내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얼룩소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셋이 똑같이 힘을 합하여 적과 대항해 싸워왔고 무슨 일이든지 함께 도와왔는데 붉은소가 모두 제 힘으로 그렇게 된 것처럼 말을 했다니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룩소에게 거짓말을 한 사자는 붉은소와 검은소에게 가서는 “너희 세 마리 중에 얼룩소가 제일 힘이 세고, 다른 짐승에게지지 않는 것도 얼룩소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두 마리 소는 얼룩소가 건방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붉은소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얼룩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얼룩소도 붉은소가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있는 힘을 다하여 덤볐습니다. 검은소가 말렸지만 두 마리의 소는 뿔이 빠지도록 싸웠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의 소 중에 어는 편이 센지는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로 세 마리의 소는 따로 따로 다니게 되었고, 사자는 좋아라 하며 소들을 차례로 잡아먹을 수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눈 덮힌 산길을 오르는데 한 사람이 눈에 파묻혀 기진하여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혼자서 눈길을 걷는 것이 힘드는데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냥 갑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직 호흡이 있는 사람을 그냥 두고 가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는 것 같아 그를 등에 들쳐업고 힘들게 산길을 걸어갑니다. 그렇게 힘들게 얼마쯤 갔는데, 앞에서 먼저 가던 두 사람이 눈 속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하의 혹독한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얼어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 죽게 된 사람을 들쳐업고 눈이 덮히고 혹한의 길을 가던 사람은 두 사람의 체온이 마주하고 힘들게 걷기에 땀을 흘린 까닭에 혹한에도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다보면,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들과 협력하고 공동 보조를 맞추어 가는 것이 정말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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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22-27
우리 몸에서 밖에 드러나 있는 지체가 더 소중하고 속에 감추어진 지체 중에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지체는 없어도 그만일 것 같지만, 어떤 작은 지체는 그것이 병들 때 몸 전체의 기능이 마비되어 죽은목숨과도 같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에 속한 지체들인데 눈에 드러난 일을 감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덜 중요한 지체가 아닙니다.
차의 예를 들면, 차의 옆이 크게 찌그러져 볼품이 없다고 하더라도 달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가스를 공급해 주는 조그만 연료분사장치(fuel injector)가 막혀버리면 차는 달릴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보면 어떤 사람은 부족한 것이 별로 없음에도 요구사항이 많은 것을 봅니다. 그 사람이 교회 재정이나 행정에 중요한 사람일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이 사람의 요구를 맞추기 위하여 움직여 나가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교회 안에서 부족한 것이 많고 아름다움이 덜한 지체들을 돌보는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찾아가고, 굶는 사람을 돌아보고, 상심한 사람을 위로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먼저 생각하고 감당할 일입니다.

사람의 몸에 눈, 귀, 코, 손과 발, 내부의 각 기관이 상호 조화하고 협력하여 건강한 몸을 이루듯이, 교회 안의 각 지체들도 서로 충돌하여 병든 몸을 만들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그의 하는 일을 존중하여 서로 조화하고 협력하여 건전하고 활력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몸의 한 지체가 상처가 있을 때 몸 전체가 아픔을 느끼듯이 교회를 구성하는 우리들은 한 교우의 아픔에 동일한 아픔이 느껴져야 할 것이며, 한 지체가 상쾌함을 느낄 때 몸 전체가 시원함을 느끼듯이 한 교우의 즐거움이 전체 교우들에게 전달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감당하는 일이 몸을 구성하는 각 지체가 감당하는 기능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존귀하게 보이는 지체들과 덜 귀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존귀한 자와 덜 존귀한 자가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입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 안에서 각 직분자들은 서로를 질시하는 자세를 버리고 성도들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 아껴야 합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형제가 보기에 작은 일을 맡고 있거나 믿음이 약할 경우, 온 성도들은 몸의 약한 부분을 더욱 귀히 여겨 사랑하는 자세를 취하여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보며 격려하는 넉넉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0:22-25
히브리서 기자는 신앙생활을 같이 하는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22절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자(Let us draw near to God)라고 권고합니다.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신 것입니다. 19-20절에 보는 바대로 새롭고 산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소에 들어가는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더욱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하여 서로 권하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23절에서 믿는 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자(Let us hold fast the confession of hope)라고 권고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그가 우리를 위하여 주신 약속들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우리의 소망이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24절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자(Let us consider how to stir up one another to love and good works)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서로 돌아보고 격려하여 사랑과 선행이 그들 안에 나타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힘쓸 것은,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도우심으로 원수까지도 불쌍하게 여겨지게 하시며, 성도들의 기도가 우리에게 사랑과 선행을 하게 합니다.

넷째는, 25절에서 주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자(Let us meet together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drawing near)라고 권고합니다.
혼자 하는 신앙생활은 때로는 힘들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고 격려하므로 모이기에 힘쓴다면 이 일은 쉽고 또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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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모임을 확장해 나가기 바랍니다. 주님의 날이 언제 임할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살던 때보다는 2000년이 단축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았다면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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