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31, 2012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2): 빌라델비아 교회” (계시록 3:7-13)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2): 빌라델비아 교회” (계시록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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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한국에 투신자살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습니다. 성적을 비관한 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아들이 뛰어내린 그 자리에서 아들의 죽음을 슬피 여긴 아버지가 뛰어내리고, 성적을 비관하고 실연한 여고생 두 명이 아파트에서 함께 투신하고, 남편의 주식투자 손실을 비관한 30대 주부가 두 자녀에게 독약을 먹인 후 자신은 아파트에서 투신하는가 하면, 생활고를 비관하고 카드 빚에 몰림을 당한 역시 30대 주부가 14층 고층 아파트에서 두 딸을 먼저 던지고 자신은 어린 아들과 함께 투신한 사건 등 투신에 관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투신자살을 한 당사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평하는 잘못입니다만 성경은 자신을 죽이는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죄인 것을 가룟 유다의 예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 기도하고 간구할 것은 우리가 어떤 처지나 환경에 있든지 주님께서 늘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시고 위로하심으로 우리가 지나치게 낙담하거나 좌절하여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을 스스로 행하지 않게 해달라고 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는 허탄하고 막연하게 보이던 그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붙잡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우리에게 변함이 없는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보장받는 일인지 날마다 믿음을 쌓아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확실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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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7-13절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요한이 밧모 섬 앞 소아시아 서편 가까이에 흩어져있던 일곱 교회에 편지하였는데, 이 일곱 교회를 어떤 성경학자들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세상에 존재할 교회들의 유형이라고 말합니다. 일곱 교회들을 살펴보면, 에베소 교회는 정통적 교회로 시대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한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궁핍하나 부요한 교회요, 버가모 교회는 주위 환경이 나쁜 교회이고, 두아디라 교회는 악한 여선지자가 활동한 교회이며, 사데 교회는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죽은 교회로 중세 카톨릭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연약하나 충성된 교회이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요한 것처럼 보이나 가난한 교회로서 현대의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적 구분에 따르면, 서머나 교회가 1세기 말에서 2세기까지 박해가 극에 달하는 순교하는 시대에 살고 있던 교회--곧 믿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빌라델비아 교회는 부패한 중세의 교회에서 루터와 칼빙에 의하여 새혁이 벌어지던 종교개혁 이후의 참신해진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라고 서술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듬뿍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다윗의 열쇠”는 어떤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열쇠”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는 이사야서 22장 22절에 나옵니다: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이사야서 22장 22절에 나오는 “다윗의 열쇠”는 히스기야 왕이 유다의 보물이 들어있는 국고(國庫)의 열쇠를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에게 맡기면서 예언되어진 말로서 그 다윗의 열쇠는 국고를 여는 열쇠였습니다.
오늘 계시록 본문 7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신 다윗의 열쇠는 천국 문의 열쇠입니다. 엘리아김에게만이 히스기야 왕의 나라 보물이 들어있는 국고를 열고 닫을 권한이 주어졌던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이 하늘 문을 열고 닫으실 권한이 주어져있습니다.

8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8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교인들에게 주시는 축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인들 앞에 열린 천국 문을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다 들어갈 때까지 그 열린 천국 문이 닫혀지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그 천국 문을 닫을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 모두에게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이와 같기를 원합니다.

찰스 가브리엘(Charles H. Gabriel, 1856-1932) 작사한 찬송가 544장을 보면,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다스리리
    (1절)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여러분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열어놓으신 천국 문을 소망 중에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우리의 생각하고 마음에 품은 것들을 살피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칭찬이 그 다음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첫 번째 칭찬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능력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과부의 두 렙돈--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정성으로 삶의 중심을 드리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 다섯 달란트를 남긴 것도 칭찬하셨지만,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두 달란트 남긴 것도 칭찬하셨습니다.
어느 구역 모임에서 달란트를 맡은 종이 주인을 위해서 사업을 열심히 했는데 손해를 보았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토론하였다고 하는데,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이 때에도 그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경영한 것을 아시기에 그의 충성은 칭찬하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삶에 대한 변명으로 ‘나는 시간이 없어서, 나는 물질이 없어서, 나는 현재 매우 바쁜 일을 하고 있어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내가 전혀 주님의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시간에 여유가 생길 때, 내게 물질에 풍족함이 생길 때, 내가 이 바쁜 일을 처리하고 나면,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바쁘고, 부족하고, 가난한 가운데 주님의 일을 감당하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의 일을 감당할 여유 있는 시간과 재물이나 한가한 때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능력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요, 시간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요, 재물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요, 내가 현재 다른 일로 매우 바쁜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요, 나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 세상을 향하고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그들이 중심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인 것입니다.

두 번째 칭찬은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입술로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부인하지 않지만, 삶으로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전혀 하나님의 개입하실 여지가 없고, 어떤 일에 실패하였을 때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처럼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는 것은 입술로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주님을 인정하고 시인하며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 앞에 여러 가지 환난과 시험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때마다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므로 온전히 이기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9절: 보라 사단의 회(會)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서머나 교회와 성도들의 환난과 궁핍”이 무엇입니까?
1세기 말 예수님을 믿는 일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믿는 일은 만사형통, 부자가 되고 출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환난과 고난이 따르고, 예수 믿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없고, 예수 믿기 때문에 출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의 사람들은 드러내놓고 예수 믿는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함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음이 두려워서 그들의 그리스도인 됨을 숨긴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지상명령인 전도의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박해가 심할 때에는 외딴 곳으로 피하여 그곳에서 집단생활을 하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도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과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실상은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 아니요 다만 사단의 조정을 받는 ‘사단의 회’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중에 얼마를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주어 그들 앞에 절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빌라델비아 교회를 반대하던 사단의 회에 속한 유대인들 중에 얼마를 회개시키시고 개종시키시사 그들로 빌라델비아 교회에 사과케 하고 그들에게 더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줄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교회를 핍박하거나 비난하던 사람이 회개하고 그가 비난하던 교회에 다니며 겸손한 심령으로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기쁨이며 이로써 주님께서 그 교회를 사랑하심을 알게 하십니다.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빌라델비아 교회와 성도들이 적은 능력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켰을 때,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키시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시험의 때는 언제인가 하면 “장차 온 세상에 (환난이)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하실 때 이 지상에서 잘 믿는 성도들과 성도들의 연합인 참된 교회들은 들림을 받을 것이며 그러므로 이 지상에서의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변변치 못한 믿음의 삶을 살던 사람들과 교회답지 못한 교회들만이 지상에 남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의 기록을 보면, 환난의 때의 기록에서 교회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은 이미 들림 받았기에 대 환난 기간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11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그 성도들,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속히 임하리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분명한 약속을 주시고 계십니다. 성도들은 우리에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중에 늘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신앙의 삶에서 실족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권고하시며 경계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에게 믿음을 굳게 잡아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빼앗기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끝까지 견고히 붙잡아야 할 것인데 이러할 때 우리는 면류관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 14절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집에) 참예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축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기는 자”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사단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심은 하나님의 성전이 그 사람이 영원히 거할 장소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기둥은 쉽게 쉽게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오게 된 사람은 결코 그 성전에서 내몰림을 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더하실 축복은 빌라델비아 교인들과 그들의 신앙을 본받는 모든 성도들에게 세 가지의 이름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이름”의 기록입니다. 성도 위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다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밝힘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성 즉, 새 예루살렘의 이름”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입니다. 이로써, 성도는 천국백성임을 증명 받습니다.
                                                  
세 번째는 “나의 새 이름”의 기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의 기록이란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과 우리 성도들에게 몇 가지 이름이 있습니까?
세 가지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또는 자녀, 천국백성,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기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3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의 귀가 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기 위하여 열려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말씀을 들을 귀 있는 자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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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어떤 능력이 있으십니까?
많은 능력입니까? 적은 능력입니까? 우리의 능력의 많고 적음, 혹은 크고 작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주님으로 향하여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크거나 작은 능력으로, 혹은 많거나 적은 능력으로, 많거나 적은 시간으로, 풍족하거나 빈궁한 재물을 가지고 주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끝까지 지키고 주님을 입술로나 삶으로 배반하지 않으시기 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열어놓으신 천국 문을 통하여 천국에 이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라, 천국백성이라, 참 그리스도인이라 칭하여 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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