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7, 2014

“성령의 은사들” (고전 12:1-11)



                                   “성령의 은사들” (고전 12:1-11)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첫째로는, 우리가 원하는(=사모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어떤 은혜의 선물(=은사)을 원하는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바라는 것이 없어서인지 믿음이 작아서인지 기도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주시든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 성격을 보시고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는 선물을 주십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어떤 사람에게 꼭 필요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강청함(=떼씀)이 하도 심하여 못이기는 체 선물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약하셔서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강청하는 사람의 기도와 부르짖음을 잘 물리치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판단에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니거나 해로운 것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으십니다.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유용하거나 꼭 필요한 것일 때에는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의 기도도 물리치십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No'로 응답하신 기도는 믿음이 없는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대표적 믿음의 사람들--구약의 모세, 예수님, 그리고 신약의 대표적 인물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때로는 들어줄 것을 거절하실 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뜻이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2
1절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씀할 때 신령한 것들에 대하여 알기를 원하되, 그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왜 주시는지 바로 알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2절에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던 상태의 모습입니다. 그때 고린도 교인들이나 우리 이방인들이 섬기던 것은 조각된 신상이요, 태양이요, 산이나 나무나 바위 등이었습니다. 그 앞에 기원하고 제사를 드렸지만, 그 우상들은 말못하는 비인격체였습니다.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매 우리들의 입술의 고백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우상을 믿거나 마음에 전혀 절대적 존재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지 않던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거나 저주하던 자들입니다.
‘예수가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 예수를 믿느니 나를 믿는다.’고 예수님의 이름을 조롱하던 자들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그의 사역을 인정치 않으며 우리의 삶도 그리스도가 없는 자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나를 주장하시매, 나의 입술의 고백이 달라지고 나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시인하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이 증거하는 것이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이 “예수님은 주님이라”고 마음 속 깊숙히에서 진정으로 시인함은 성령이 그 사람에게 감동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세례 요한에게 임하였을 때, 그는 예수님을 만나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 양이로다.”라고 고백하였으며, 성령이 베드로를 감동시키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 신앙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예수님은 나의 주시라’고 고백함은 성령께서 나의 입술과 마음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

4-6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은사(χάρισμα, 은사들: χαρίσματα)는 ‘값없는 은혜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은사는 선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더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성격과 품성, 혹은 재능에 따라 더하여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은사들은 한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다”고 했습니다.
직임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는 봉사(service), 공헌(conribution), 도움(help), 후원(support), 또는 사역(ministry)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심은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 더욱 봉사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주는 같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이 한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고 했습니다.
역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게-마(ἐνέργημα)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활동(activity, working)'이란 뜻입니다. 영어의 에너지(energy)와 같은 어원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을 주심으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힘을 갖고 활동하지만 그 모든 것을 역사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4-6절에서 은사, 직임과 역사의 다양성 가운데, 같으신 성령과 주와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므로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상호작용(interactive)하심을 강조함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4-6절에서도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말씀할 때,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했습니다.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가운데, “예수님은 나의 주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또 성령의 값 없는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을 허락하시고, 각각 다른 직임을 감당하게 하시고, 우리 각 사람을 통하여 여러 가지 다른 역사를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유익이 되게 하려하신다는 것입니다.

8-10절에 성령의 구체적인 아홉 가지 은사들을 열거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에는 이것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는 없고 로마서 12장 6-8절에 나타나 있는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도 성령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실 때 즐거움과 자원함으로 잘 감당할 수 있는 은사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직분에 따른 은사들로서, 고린도전서 12장 27절 이하에 나오는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고치는 것,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 말함이 있습니다.
무슨 은사를 가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은사들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는가가 중요합니다.

8-10절에 나오는 성령의 은사들을 살펴봅시다.
첫째, 지혜의 말씀(λόγος σοφίας)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은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함으로 이 은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은사입니다.

둘째, 지식의 말씀(λόγος γνώσεως)은 ‘영지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알고 실생활에 적용하게 하는 은사입니다.

셋째, 은사로서의 믿음(πίστις)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과는 다른 것으로서 초자연적인 능력이 수반되는 믿음입니다.
13장 2절에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라고 했는데, 이러한 믿음을 말씀함입니다.

넷째, 병고치는 은사(χαρίσματα ἰαμάτων)는 자기 자신이나 어떤 사람을 위해서 그 병이 낳음을 얻는 은사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는 사모하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 중에 병고치는 은사가 필요치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이, 아니면 자녀가, 주위 사람들이 병이 났을 때, 기도해보지 않고 그저 병원에 달려가는 대신에 먼저 병낫기를 위해서 기도한 다음에 다음의 행동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여기에 열거한 은사들이 조금씩은 다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은사가 현저하게 나타나지만, 이를 믿지 못하여 활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귀한 은사라고 하더라도 나타나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은사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 은사의 활용이 다른 은사의 나타남을 돕고, 혹은 다른 은사들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고, 사모하고 기도함으로 얻어지게 합니다.

다섯째, 능력행함(ἐνεργήματα)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6절에 나오는 역사(ἐνέργημα)의 복수형입니다. 즉, 직임을 감당하는 활동들--사도, 선지자,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로 감당하는 모든 활동들도 이 능력행하는 일에 포함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평신도의 일을 자원함과 기쁨으로 잘 감당함입니다.
능력행함은 또한 초자연적인 것을 행할 수 있는 은사입니다.

여섯째, 예언함(προφητεία)의 은사는 점장이가 점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학생이 어느 대학에 지원하면 합격할 것이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다,’ ‘어느 사람이 xx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것이다’를 쪽집게처럼 맞추는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예언의 은사가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자 또는 선지자의 일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의 일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의 하는 일의 90%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리는 것입니다.
혹 소수의 경우 하나님의 일이나 교회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예언케 하시는 성령의 감동으로 알게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영들 분별함(διακρίσεις πνευμάτων)은 어떤 사람의 말을 듣고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니면 사단의 말인가, 사람의 말인가 분변하는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의 영의 상태가 사단에 의해서 미혹당하여 있는가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요즘같이 기독교 안에서만도 다양한 종교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여덟째, 각종 방언 말함(γλωσσών)은 자신이 배우지 않은 나라의 말을 하거나 전혀 이상한 말--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고전 13:1)--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언을 하게 하시는 이유는 다양한 나라와 종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시매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서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이 다 방언을 말할 때, 마침 오순절을 맞이하여 각 다른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이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듣고는 다 의혹하고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님들에게 방언의 은사가 있을 때 쉽게 그들의 말을 배워서 그들 가운데 복음을 증거합니다.
또한 자신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방언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4절을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라고 했습니다.

아홉째, 방언들 통역함(ἑρμηνεία γλωσσών)은 주로 방언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사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예배는 어떤 일정한 형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중예배 때에 어떤 사람들은 일어나 방언으로 말하고자 했는데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절과 5절을 보면,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방언통역의 은사는 방언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아뢰는 영적인 비밀을 회중들에게 해석하여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함입니다.

11절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이 열거되어 있지만 그 은사들은 한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 뜻대로”란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성품을 보시고, 우리에게 합당한 대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케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다른 은사들을 여러 다른 모양의 사람들에게 나눠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은사를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은사를 자기의 자랑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증거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더욱 더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할 것인데 곧 사랑의 은사 받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31절).

                                                                                         3
우리에게 맡겨주신 직임(=봉사)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위한 역사(=활동)를 이루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사모하며 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은사들을 받되 그 은사들을 개인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위에 사랑을 따라 행하시므로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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