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7, 2013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1-39)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로마서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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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탕한 삶을 살다가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과연 아버지가 자기를 용서해주실 지 몰라서 먼저 아버지께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 불효소자 아버지께 문안인사 드립니다.  ....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아버지의 품이 그리워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온데, 아버지께 불효한지라 아버지께서 안 받아 주셔도 할 수 없사오나 ... 만일 아버지께서 저를 받아주신다면, 그 증표로 집 앞에 있는 떡갈나무(Oak Tree)에 노란 리본 한 개를 매놓아 주십시오.“
이윽고 아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차에 오르고 고향을 향하여 옵니다. 기차에서 내려 그의 마을에 가까이 올수록 심장이 박동쳐 옵니다. 그의 집 앞에 있는 떡갈나무의 꼭대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과연 노란 리본을 매달아 놓으셨을까? 매달아 놓으셨다면 어디다가 매어놓으셨을까?’
골목 모퉁이를 돌면서 그의 눈에 떡갈나무 전체가 눈에 들어오자 그의 심장은 박동을 멈추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리본을 한 개만 매달면, 아들이 혹시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서 갈까봐 수백 개의 노란 리본을 나무 전체에 매어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어머니의 마음일 것입니다. 아들이 아무리 방탕하다고 하더라도 부모에게는 사랑을 쏟을 대상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는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이 남루한 모습으로 돌아올 때 “아직도 상거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누가 15:20)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순종치 않고 떠나 그 마음이 이방 우상에게로 향하여 있을 때도 하나님 아버지는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로마서 10:21)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극치(極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들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시되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불순종하고 불의한 삶을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골고다 십자가 언덕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인간사랑을 확증하심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에 무슨 토를 달 여지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감격으로 체험하였을 때 한동안 즐겨 부르던 찬송이 404장입니다.

1.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2.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3.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부모 된 사람들은 자녀들을 키우면서 그들을 향한 부모로서의 애정을 느끼게 됩니다. 자녀들에게 쏟아 붓는 사랑은 어떤 반사이익을 바라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자녀이기에, 나를 향하여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에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은 세상에 속한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측량할 수 없습니다.

                                                                             2
바울은 오늘 본문을 시작함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고 질문합니다.
8장 29-30절에 보는 바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미리 아시고, 또한 미리 아신 우리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하여 미리 정하시고, 미리 정하신 우리를 미리 부르시고, 미리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8장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장차 나타날 일이라고 했는데 30절에서는 이미 되어진 일처럼 기술하고 있음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의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약속은 변개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31-35절에서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부르신 자들인 우리에게 보장되어진 사랑을 네 단계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Nobody can be against us. v. 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반문합니다.
구약의 예(例)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청종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편에 서서 말씀하실 때 주변의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수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평지(平地)에서 싸우든지 산악(山岳)에서 싸우든지 아무도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장 되시며 깃발(=여호와 닛시) 되실 때, 우리의 외부의 적도 내부의 적도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둘째는, 아무도 우리를 송사(訟事)할 수 없습니다. (Nobody can bring any charge against us. v. 33)
혹, 우리의 적이 분수를 모르고 우리를 대적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송사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연고(緣故)입니다. 우리가 비록 죽을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심으로 우리의 죄가 없어졌으므로 우리를 송사(訟事)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Nobody can condemn us. v. 34)
혹, 우리의 대적이 실수로 혹은 막무가내로 송사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변론자(Advocate)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으므로 사단이 아무리 우리의 죄를 정하려 하더라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재판장과 재판장 우편에 앉으시는 특권을 갖으신 변호사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懇求)하시므로 대적이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넷째는,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Nobody can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Christ. v. 35)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마음 속에서 깨달아 알 때,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환난(患難)이나 곤고(困苦)나 핍박(逼迫)이나 기근(饑饉)이나 적신이나 위험(危險)이나 칼이나 그 어느 것도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사회적 곤난(困難)이나, 정치적 핍박이나, 경제적 헐벗음이나 가난이나, 군사적 위협이나 해함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오래참음으로 어둠의 권세의 대적과 송사와 정죄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려하는 모든 시도에서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되, 간신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고 모든 권세와 정사 위에 뛰어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5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울은 39절에서는 이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인간의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며, 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에게 알게 하여주신 까닭입니다.

35절에서 세상의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군사적 어려움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포한 바울은 그 범위를 우주(宇宙)와 하늘의 권세(權勢)와 다음 세상에까지 확대(擴大)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견고한가 웅변적(雄辯的)으로 말합니다.
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死亡)이나 생명(生命)이나 천사(天使)들이나 권세자(權勢者)들이나 현재(現在) 일이나 장래(將來) 일이나 능력(能力)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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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의로와진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해서, 세상의 사람들로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느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십니까?
그 사랑이 얼마나 감격스러우며, 그 사랑이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께 얼마나 헌신하게 합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고자 하실 때 하나님께 “아멘”으로 나아옵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읽고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온전히 깨달아 아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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