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0, 2013

“죄의 종과 의의 종” (로마서 6:15-23)

                                              “죄의 종과 의의 종” (로마서 6: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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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져있으면 그것으로부터 헤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은 처음에는 가벼운 즐거움으로, 또는 괴로운 일을 잊기 위하여서 술을 마시지만, 술에 거나하게 취하기 시작하면 이제는 술을 받는 몸이 괴로운데도 술을 몸 속으로 퍼붓습니다. 하여서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게 됩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술을 마시지 아니하면 손이 떨리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지경까지 갑니다.
마약(痲藥)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환각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마약을 하지만 나중에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몰골도 흉하게 되지만 마약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돈을 모으는데 맛이 들린 사람은 돈을 버는 재미를 느끼지 않고는 세상을 사는 맛이 없습니다. 해서, 이 사람은 돈을 벌어 평생을 즐길 수 있는 돈이 있는데도, 때로 여행을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는 대신에 일년 365일 돈 버는 일에만 전념합니다. 돈을 버는 일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불안합니다. 몸에 병이 나도 돈을 쓰는 것이 온갖 고통을 고스란히 견디고자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에 미혹되어 에덴 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을 때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와가 처음 하나님께 행위로 죄를 지어 선악과를 따먹을 때, 또한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가 준 선악과를 받아서 먹을 때 그들은 몹시도 떨렸고 불안하였을 것입니다.
죄(罪)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 벗어남을 의미하는데, 한 번 죄를 지은 사람은 그 다음 두 번째 죄를 짓는 일은 훨씬 쉽고, 그 다음은 점점 더 쉬워집니다. 해서, 나중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상태에까지 가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이신 하나님을 떠난 상태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삶을 살아도 아무런 가책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죄인(罪人)’이란 말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가 왜 죄인(罪人)인지, 무슨 죄를 짓고 살아가는지도 알지 못 합니다.
                                                 
현대인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당신은 죄인입니다’란 말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내가 교회를 출석하는 것은 내가 죄인인 까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에 나오면 사람도 만나고, 또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또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해서입니다. 죄에 무감각해진 까닭입니다. 죄에게 여전히 종노릇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으로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커다란 죄인이었는지 깨달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약간의 죄를 범한 적은 있지만, 그렇게 큰 죄를 범한 기억은 없는데요.’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를 찬양하고 경배하지 않은 것이 죄입니다.
‘나는 매 주일 교회에 출석하여 찬송하고 예배드리는데요.’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이 죄요, 지나친 욕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도 시기하지도 않는데요.’ ‘또한 지나친 욕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주위에 헐벗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못하고 찾아가지 않음이 죄입니다.
‘......’
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우리가 죄인임을 자복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종노릇함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죄의 종에서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죄의 권세아래서 사단이 기뻐하는 일을 반복하여 해왔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게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께 종노릇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낫는데, 또 종노릇하는 삶을 살아가라구요?’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에게도 또한 하나님에게도 속하지 않은 사람은 다시 돌이켜 죄에게 속하게 됩니다.

미국의 남북이 흑인노예의 갈등이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 흑인여자가 노예시장에 나왔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값을 부릅니다. 한 사람이 높은 값을 부르매 아무도 그 이상의 값을 부르지 못하여 그 흑인여자 노예는 그 사람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노예문서를 전달받은 그 사람은 흑인여자에게 노예문서를 주면서, “당신은 이제 자유인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시오.”라고 말합니다.
흑인여인은 그 사람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농담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해서 반문합니다. “정말입니까? 제가 자유인입니까? 제가 아무 곳이나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단 말이지요?!”
그 백인남자는 대답합니다. “그렇습니다.”
얼마간의 침묵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흑인여자는 그에게 요청합니다. “제가 당신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살면 안 될까요? 저는 막상 갈 데도 없는 사람입니다. 괜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노예로 못된 주인을 만나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라면 제가 열심히 섬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인남자는 조금 생각하다가 그 흑인여자의 청을 들어주기로 하였습니다.
흑인여자는 자유인으로서 그 사람을 위하여 즐거움과 감사함으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종의 멍에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해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허물의 멍에와 종노릇함에서 해방시켜 주시매 우리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그 자유를 가지고 자원하여 하나님의 의의 종, 하나님께 순종의 종이 되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종, 순종이 되기로 결단하는 사람은 마지못하여, 억지로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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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절: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응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5절에서 바울은 1절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그런즉 어찌 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의로움과 죄는 서로 상치되는 것으로서 의로와진 사람은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연민의 마음으로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값싼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그의 죄 사해주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일부러 죄짓는, 죄지으면서도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 긍휼을 거두신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은 하나님께 항의(抗議)할 수 없습니다.
에스겔서 33장 13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중에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여기는 잘못을 범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세례”가 우리에게 필요함은 우리가 마음으로 미워하는 죄에서 떠남이, 벗어남이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그 마음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성령의 도우심으로 불법과 불의에서 떠나 의에 이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완전(完全)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우리는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이 성화되어지는 삶은 믿음으로 의로와지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이를 수 있는 삶이 아니며, 우리의 결단과 간구와 함께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6장 후반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실천적인 삶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결단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미워하는 죄를 짓지 않겠노라--죄의 법 혹은 그늘에서 벗어나겠노라”하는 것입니다.
결단이 없으면 실천도 없고, 부족함도 깨닫지 못하고 또 해서 간구함도 없습니다.
그저 매일을 무의미하게 믿지 않는 자와 다름이 없이 살아갈 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성화의 결단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디모데전서 4장 7절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성화의 끝--곧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연습하다’(γυμνάζω)는 운동선수가 체육관에서 땀흘리며 훈련하는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단과 땀흘리는 연습만 가지고도 부족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도우심입니다. 이릴할 때,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우리를 의의 병기, 순종의 종으로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16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성경은 두 가지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단의 종으로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의 종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있는 사단에게 속한 사람들은 보이든지 보이지 않든지 짐승의 표를 이마나 오른 손에 갖고 세상을 살아가고, 요한 계시록 7장과 14장, 에스겔서 9장에 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표 또는 어린양의 표를 이마에 받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들의 세상에서의 삶은 비슷하거나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짐승의 표를 받은 세상에 속한 자의 종국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요 사망인 반면, 하나님의 표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의 종국은 생명이요 상급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타락 이후에 사단에게 권세가 넘어간 세상에 살면서 짐승의 표를 받고 이 사단이라고 하는 짐승에게 경배하는 그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결국이 하나님의 진노이었는데 하나님의 한 의가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17-18절: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우리가 알았건 알지 못하였건,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의 결국은 로마서 2장 5절에 있는 바대로 하나님의 진노요 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나타난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되고, 사형의 선고를 받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형장을 향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사면(赦免)함을 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해서, 우리 입술에는 감사함이 넘쳐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죽음에 이르는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을 사랑함이 넘칩니다.

19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면합니다.
“의에게 종으로 드리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의’이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성도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은 거룩함에 이르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모습과 성품-곧 하나님의 거룩하신 형상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20절: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죄’란 말은 ‘의’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를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다” 즉, “의가 없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 아래 놓여있었을 때에는 ‘의’를 생각하고 행하는 대신에 ‘죄’인 ‘불의’와 짝하여 ‘불의’를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1절: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우리가 죄의 종노릇할 때 무슨 열매를 얻었습니까?
열매에 대해서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43-44절에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는 사람들은 못된 열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22절: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니라.

믿음으로 의로와진 사람이 얻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밖으로는 전도의 열매이며, 내적으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내적인 변화--성령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바울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믿음으로 의로와진 사람에게 있는 이러한 것들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들인데 이러한 성령의 열매들을 통하여 그가 성령에 속한 사람인 것과 해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음을 스스로 증거합니다.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죄 아래서 죄의 종노릇하는 삶과 은혜 아래서 의(義)이신 하나님의 종노릇하는 삶이 그렇게 큰 구별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엄청난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아 여전히 죄 아래 놓인 삶을 산 사람은 사망이 그를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처음에 하신 선포가 무엇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입니다. 곧, ‘죄를 지음’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정녕 죽으리라”--‘사망’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입으로 그의 주되심을 고백할 때” 우리는 의로와지고 구원함을 받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사”(τὸ χάρισμα τού θεού)--‘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고 해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짐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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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 아직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주’ 되심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까?
우리는 먼저 의와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믿음 생김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믿음이 그의 마음에 들게됨이 하나님의 첫 번째 은혜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이 믿음이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사랑이라고 하는 완전함에 이르도록 결단하고 연습하고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간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의 실천과정에서 우리는 열매 맺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열매 맺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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