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27, 2013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룸” (로마서 8:28)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룸” (로마서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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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장 8절에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라고 했습니다.
격언에도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고 했고, 또 독일속담에도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다”란 말이 있습니다.
한해의 시작을 어떻게 하느냐 보다는 끝을 어떻게 마감하느냐가 더욱 중요하고, 인생의 시작이나 중간이 어떠한 것보다는 끝을 어떻게 마감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지도자 3백 명을 조사해서 분석해 본 결과, 그들 중 50%는 어려운 가정이나 문제 있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에 부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결국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것에 따라서 나중에는 훌륭한 삶을 살기도 하고, 좋지 않은 삶을 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줍니까? 시작보다는 마지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결코 낙심하지 않고, 단념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우리의 믿음의 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랍니다.

뉴잉글랜드의 감리교단의 스테픈 올린이란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가 교회를 개척했는데, 사람들은 안 오고, 교회는 성장하지 않고, 목회는 너무 힘들어서 고생 고생하다가 목회를 그만두려고 작정했습니다. “나는 도저히 목회를 못하겠으니 그만 두어야겠습니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그는 큰 바위 앞에 서서 곡괭이를 들고 바위를 팝니다. 아무리 곡괭이로 바위를 찍어도 바위가 깨어지지 않으니까 그는 “아무리 일해도 소용이 없잖아. 이제 더 이상 일하지 않을 테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갑자기 커다란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이 일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일을 그만두려고 하느냐?”
    “쓸데없기 때문입니다. 곡괭이로 바위를 쳐봤자 텅텅 튀어 오르고 바위는 깨지지 않습니다.”
그러자 그 음성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야 이놈아! 바위가 깨어지든 안 깨어지든 네가 알 바 아니다. 너의 할 책임은 곡괭이로써 바위를 찍는 것이다. 바위가 깨어지고 안 깨어지는 것은 네가 생각할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 음성에 그가 꿈에 회개하고 다시 곡괭이를 들어 힘껏 바위를 치니까 바위가 꽝 소리가 나더니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잠이 번쩍 깼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든 안 하든,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 준비하고 말씀을 증거하고 심방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구나! 내 맡은 달란트 책임을 내가 충실히 다하면, 나중에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내 책임을 다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6-7절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열심히 하던 일이 잘 안되면 실망하거나 환경을 탓하거나 포기해버립니다. 그것이 교회 일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우리는 그저 순종하고 충성하라고 말씀합니다.
결과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주실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에 절대 복종해야 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패한 것에 대하여 간접적 복수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난(苦難: sufferings)은 성경 전체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主題)중에 하나입니다.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고난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에 연단되기를 원하시는데, 사단은 성도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그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낙심하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러한 때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내서 성도들이 가는 모든 길에서 보호해 주시고(시 91:11), 그들을 자기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십니다(신 32:10, 슥 2:8).
중요한 것은 성도들은 고난 당하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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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우리 인간 편에서 바라봄입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은 믿음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 그 자녀의 자녀, 자녀의 자녀의 자녀들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45편 20절에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인과 선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악인과 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복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들의 결국이 잘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란 하나님 편에서의 기술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서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것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혈통이나 육정이나 뜻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이 됨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름을 받은 자들을 반드시 축복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 43장 1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시고 ‘너는 내 것이라’고 인치신 성도들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책임져 주십니다.
때로 우리 앞에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을 그 때에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는 성도이기를 바랍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요, 전에 있던 어두움 가운데서 불러낸 바 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증거하게 하기 위함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귀하신 이름을 증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축복의 말씀이요, 위로의 말씀이요, 사랑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일진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십니다.
요셉은 아름답고 놀라운 꿈을 꾼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의 꿈과는 동떨어지게 전개되는 것 같았습니다. 당장에 높은 지위에 올라가는 대신에 형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구덩이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전 20개에 팔려 애굽으로 종살이를 가게 됩니다.
애굽에서는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있게 되었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되고 13년의 세월이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애굽 왕의 꿈을 해석하여 주게 되고 그 꿈의 해석이 맞아 30세에 애굽의 국무총리에 오르게 됩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은 그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나중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형들에게 자신이 종으로 팔려갔던 그 길이 축복의 길이요, 성공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모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10년 후를 생각하고, 20년 후를 생각하고, 30년 후를 생각하면, 바로 지금 겪는 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연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동방의 의인 욥이 당한 고난이 얼마나 컸습니까?
욥은 그가 고난 당하는 이유도 모르고 고난당하였습니다. 그의 전 재산이 다 날라 가고, 그의 일곱 아들과 세 딸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몸에는 악창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을 붙잡은 끈을 놓지 아니하였을 때, 하나님은 욥을 위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욥기 42장 12절에서 욥은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떤 환경이나 형편에서 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의 환경에서 나는 하나님께 어떤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신 자’를 종국에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의 삶은 실패의 연속(連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신앙이 경건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참으로 신실한데도 그의 형편을 보면 하나도 제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러한 실패의 발자국들을 따라가 보니 그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실패를 통하여 주님 안에서의 성공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현재 우리 눈에 비치는 바울은 위대한 능력의 사도요, 만사형통(萬事亨通)했던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도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갖가지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23절이하에서, 그는 자기가 겪은 온갖 수고와 고난을 기록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그의 고생은 끝이 없고 말로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바울과 우리들의 실패와 고난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함께 협력하여 하나님 안에서 선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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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찬송가 작가 중에 하나인 화니 재인 크로스비(F. J. Crosby)가 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9천 곡의 찬송가를 작시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책의 ’나의 생명 되신 주(42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434장),‘ ’오 놀라운 구세주(446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492장)‘ 등을 작시하였습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10대에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서 주사를 잘못 맞아 장님이 되었습니다. 많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면서 “하나님 안 믿는 사람도 눈이 밝아서 활보하고 다니는데 나는 주를 사랑하고 믿는 사람인데 이렇게 눈이 어두워서 이제 내 인생은 망쳤으니 나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너무나 야속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크로스비야, 네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너의 눈 어두워진 것 알고 있다.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눈이 어두워진 것이 너에게 큰 복이 되게 하겠다. 너는 눈이 어두웠으니 사람이 못 보는 것 영안(靈眼)으로 보게 되고 사람이 못 듣는 것 영의 귀를 열어 주어 사람이 못 깨닫는 것 영의 마음을 열어 주마. 그래서 눈뜨고 네가 일생을 산 것보다 더 영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해주마.”
그 말을 듣고 화니 크로스비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정말 하나님이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눈뜨고는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뜨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 바빠서 못 깨닫는 진리를 그 마음속에 깨달았습니다. 한평생에 그는 찬송가를 9천 곡이나 적고 수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나의 눈이 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을 믿습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괴로움 때문에 나는 오히려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게 되었고 성전의 기둥으로써 주님 앞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처럼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다시 한번 인생을 산다 해도 눈뜨고 사는 것보다도 눈을 감고 살기를 원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실명이란 고통을 불행으로만 보지 않고 그 모든 일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시고,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받들어서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어두움도 밝음도 성공도 실패도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불행도 삶도 죽음도 다 합동하여 아름다운 선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을 믿으심으로 끝까지 인내하시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시는 성도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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