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떡 이십 개의 기적" (열왕기하 4:42-44)
1
사람들은 흔히 연령이나 사회적 통념으로 자기의 한계를 정합니다. ‘나는 70이 넘었으니까, 사회의 인식이 70이 넘은 사람은
노인이라고 하니까 나는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어.’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선교지에서 활동할 수 있고
없음은 하나님의 판단에 달린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활동할 기회를 주시면 80이 넘어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이고 거두시면 30-40의 청장년의 나이에도 활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 세는 그 당시의 연령기준으로도 젊지 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120세를 살았는데 그의 나이에 3분의 2를 산 80세에 이스라엘을 인도할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나이로 따지면 55-60세에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축복하시매 120세에 이르기까지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한 교회를 은퇴하시고 1992년부터 러시아 선교사로 현재까지 활동하시고 계시는 김재광 목사님은 올해 84세가 되시는데 여전히 건강하게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교회 밖 다른 분야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노년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사람들이 종종 눈에 뜁니다.
언젠가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84세의 노인이 마라톤 전구간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60이 되기 전까지는 골골하던 사람인데 의사와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동아마라톤에까지 출전하고 완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禪) 불교의 대가들 가운데도 대가인 차오추우는 60세의 나이로 선 불교에 입문하여 도를 쌓아갔습니다. 20년이 지난 80세에 마스터가 되었는데, 그 이후 40년을 더 활동하면서 선 불교에 한 획을 긋는 대가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화가 중에 한 사람은 60세가 넘어 그림을 시작하였는데 미국의 화가들 중에 가장 유명한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miracle makers)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지혜와 명철과 지식과 능력을 바라보고 믿을 때 보통사람인 우리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사(奇事)와 이적(異蹟)이 나타나집니다.
구약의 사건들은 많은 경우에 신약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예표(豫表)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평강의 왕과 의의 왕 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사건은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요 평강의 왕, 의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신약 성도들을 축복하시는 사건의 예표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 올라 번제로 드리는 사건은 장차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모리아의 한 산인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번제로 드리는 사건의 예표입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에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사건은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보혈을 신약백성들이 힘입는 사건의 예표입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출애굽한 사건은 신약의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나와 하나님께 속한 사건의 예표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건은 성도들이 장차 영적 가나안 땅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건의 예표입니다.
엘리야가 과부의 죽은 아들을 일으킨 사건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일으키신 사건, 마리아와 마르다의 죽은 오라비 나사로를 일으키신 사건의 예표입니다.
엘 리사가 오늘 본문에서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로 백 명을 먹이고 남긴 사건은 예수님께서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신 사건과 일곱 개의 떡과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를 남긴 사건의 예표입니다.
2
아벨므홀라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는 열두 겨리로 밭을 갈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그를 부르실 때에 그는 소를 버리고, 한 겨리 소를 취하여 잡아 그 고기를 백성에게 나눠주고 엘리야를 좇았습니다(왕상 19:16-21).
엘 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려 할 때 끝까지 그를 따르며 “갑절의 영감”을 구하여 얻었습니다. 그는 엘리야를 계승하여 구국과 애족의 사역을 감당했던 선지자로 구약의 어느 선지자들보다도 신비한 기적을 많이 경험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초자연적인 사역을 크게 나타낸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사가 행한 많은 이적들 중에 대표적인 것들로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으로 요단 강물을 쳐서 갈라지게 하고 건너고(왕하 2:13-14); 불결한 물에 소금을 쳐서 좋은 음료를 만들었으며(왕하 2:20); 벧엘로 가는 길에 아이들이 대머리라고 조롱하매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여 암곰 두 마리가 수풀 가운데서 나와 42명의 아이들을 찢는 일이 일어나고(왕하 2:23-24); 이스라엘 왕이 유다 왕과 에돔 왕으로 더불어 모압 왕과 싸울 때, 물이 없어 고생하매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으며(왕하 3:9-20); 선지자의 죽은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팔아 채무를 갚게 하고 남은 것으로 그와 두 아들의 생활비로 쓰게 하였으며(왕하 4:1-7); 수넴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을 예언할 때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죽으매 다시 살리고(왕하 4:8-37); 우물물의 독을 제거하였고(왕하 4:38-41); 바알살리사에서 보리떡 20개와 채소 한 자루로 백 명을 먹이고 남았으며(왕하 4:42-44; 비교: 마태 14:13-2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었고(왕하 5:1-14); 그의 종 게하시가 나아만의 재물을 탐하매 그의 몸에 문둥병이 발하게 하였으며(왕하 5:20-27); 그의 생도 중에 하나가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졌으나 물에 떨어진 도끼를 떠오르게 하였고(왕하 6:1-7); 자기 사환의 눈을 밝게 하여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그를 호위한 것을 보여 주었고(왕하 6:17); 아람 군사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마리아로 인도하고 그 눈을 다시 밝게 하여 사마리아 성 중에 있음을 보게 하였으며(왕하 6:18-20); 엘리사가 죽은 다음 해에 어떤 사람이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던져 놓았더니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납니다(왕하 13:2-21).
42절: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 곧 보리떡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오늘 본문의 기적은 엘리사가 길갈(Gilgal)에 있을 때 행하여진 것입니다.
길갈 지방에 커다란 흉년이 먹을 것이 없던 때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본문의 앞서 38-41절에 나오는 사건인데 엘리사가 그 사황 게하시에게 그의 생도들을 국을 끓이라고 명할 때 그 안에 건더기가 없으므로 생도들 중에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 야등(野藤) 덩굴을 발견하고 거기에 달린 들 외(wild gourds)를 따다가 국에 넣어 끓인 후에 생도들에게 먹게 하는데 독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해서 엘리사는 어떤 가루를 가져오게 하고 그것을 솥에 넣었더니 독이 없어졌습니다.
그 사건이후 얼마가 지난 어느날 바알살리사(Baal-Shalishah)에 사는 한 사람이 처음 익은 식물-곧 보리떡 이십과 채소 한 자루를 갖고 엘리사를 찾아와 드렸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선대함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가뭄이 극심하여 먹을 것을 얻기 어려웠던 시기라 이것은 감사할 일이지만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는 한 사람의 몇 끼 식량밖에 되지 않는 분량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잠언 3장 9-10절에서 잠언기자는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넘치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 나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십일조 드린 만큼 삶에서 부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축복을 선포하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엘리사를 찾아와 처음 익은 열매를 그에게 드린 사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고 믿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시골교회에서는 지금도 목회자에게 성미(誠米)를 갖다 드립니다. 목회자의 삶도 어렵지만 교인들의 삶도 어려운 가운데 쌀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드리는데 이것이 한국의 시골 교인들에게 있는 가난한 가운데 하나님을 공경하고 목회자를 선대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기 혼자 먹기에도 부족한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를 사환 게하시에게 명할 때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말합니다.
엘리사가 자기의 생도의 수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지 못하여서 이런 무리한 말을 한 것일까요?
그는 자기의 생도의 수가 백 명이나 되는지 알았지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과 약속을 믿고 바라본 것입니다.
빈들에서 그의 가르치심을 들으러 모인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무엇이 있었습니까?
어린아이가 자기 점심으로 준비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43절: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그의 사환이 반문합니다: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사실 믿음이 별로 없던 게하시에게는 그의 주인의 명령이 터무니없이 들렸습니다. 어떻게 보리 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가 일백 명의 식량이 되겠습니까?
사람의 계산으로는 게하시의 반문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합리적인 계산과 사고가 하나님께는 불신앙이 될 수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계산이 하나님의 약속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나는 나의 생각과 계산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말씀하실 때, 제자들의 반응도 비슷하였습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어떻게 이것으로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십니까?’라고 하는 불신앙과 불평의 목소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엘리사가 그의 하인에게 대답합니다: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사는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는 말을 반복한 후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알게 합니다: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항상 차고 넘쳐나는 것입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차고 넘쳐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요 붙잡지 않기 때문입니다.
44절: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부대를 백 명의 생도들에게 베풀었을 때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다 먹고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보리떡 이십 개를 어떻게 나눠줬는지 확실하게 기록되어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사람의 생각에 영 부족할 것 같은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부대로 백 명의 무리에게 배불리 먹게 나눠주고도 남은 것입니다.
엘리사의 기적은 장차 예수님께서 베푸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떡 일곱 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과 기적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나눔의 놀라운 기적과 풍성함을 알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3
엘리야는 평범한 농부였으나 그가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었을 때 그의 토지와 열두 겨리의 소를 버려두고 엘리야를 좇아갔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할 때는 그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하였습니다.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그가 구하여 얻은 갑절의 영감을 백성과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농부 출신인 엘리사를 통하여 보리떡 이십 개와 채소 한 자루로 백 명을 먹이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서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눔의 기적과 은혜를 베푸시기를 축원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