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7, 2014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2-17)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2:12-17)
           
  
  2: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1
어느날 수도사가 천사와 동행하여 길을 갑니다. 얼마쯤 가는데 말의 시체를 만나자 수도사는 코를 막고 지나갑니다. 천사가 그 까닭을 묻자 그는 “말의 썩은 냄새가 참으로 고약하여 견딜 수 없노라”고 대답합니다. 또 얼마쯤 가는데 화장을 곱게한 아름다운 여인이 지나갑니다. 이번에는 천사가 코를 틀어막습니다. 수도사가 의아하게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묻자, 천사는 “여인의 음란(淫亂)한 냄새를 도저히 견딜 수 없노라”고 대답합니다(강흥수, 「인생의 거울」에서).
위경서(Pseudeigrapha) 중에 하나인 에녹1서(1-36장)에 보면 하나님나라 파수천사들의 타락(墮落)이 인간의 딸들의 아름다움으로 말미암았으니(창세기 6장 참조) 그 천사가 코를 막은 행동에 일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눈까지 가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 유학왔을 때 학교(SUNY at Binghamton) 캠퍼스 안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하루는 저녁을 먹고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고양이 크기 만한 짐승을 발견하였습니다. 등에 하얀 줄이 있는데 저는 그것이 오소리쯤 되는 줄로 알고 신기하여서 그놈을 잡으려고 쫓아다녔습니다. 결국, 그것을 잡았는데 이놈이 다급하니까 손등을 깨물고 뒤로 가스를 방출하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고약스럽던지 놓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짐승이 다름 아닌 말로만 듣던 스컹크였습니다. 그 냄새가 캠퍼스 전체에 번져서 그날 저녁 모든 학생들에게 참으로 불유쾌감을 주기에 족하였습니다. 저의 옷에 밴 냄새는 세탁을 하고 또 하였는데도 한 달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후로 때때로 캠퍼스에서 스컹크를 보면 혹시라도 냄새를 피울까봐 멀리 돌아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가끔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보면, 길가에 치여죽은 스컹크에게서 그 냄새가 나는데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로 역겹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한번 치명적인 냄새의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꽃들은 대체적으로 좋은 냄새를 풍깁니다. 그 좋은 향기로 말미암아서 벌과 나비가 날아듭니다. 선덕여왕은 그 이름이 덕만(德曼)이었는데 공주일 때부터 그 총명함이 뛰어났습니다. 아버지 진평왕(眞平王)이 당(唐)나라에서 얻어 온 모란(牧丹) 꽃의 그림과 종자를 덕만에게 보였더니, 그는 “꽃은 아름다우나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진평왕이 웃으며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덕만이 대답하기를, “대개 여자로서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으로서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날아들기 마련인데, 이 그림에는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가 없는 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종자를 심어보니 과연 덕만이 말한 것과 같이 그 꽃에 향기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꽃은 향기가 참으로 좋기는 한데 너무 짙어서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꽃도 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백합화(lily)의 향기는 처음 맡을 때에는 참 좋은데 오래 있으면 어지럽기까지 합니다.
서인도 제도에서 자라는 ‘만차닐’이라고 불리는 나무는 모양이 매혹적이고 목재가 아름답습니다. 이 나무의 열매는 매우 먹음직스럽습니다. 상처난 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향료는 매우 향기로운 냄새를 풍깁니다. 하지만 이것을 먹으면 당장 죽고 맙니다. 그 열매의 즙이 몇 방울만 피부에 닿아도 금방 물집이 생기고 때로는 심한 아픔을 느낄 정도로 독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적과 싸울 때 적을 죽이기 위하여 화살촉을 이 열매의 즙에 적셔 둔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여러 부류의 냄새를 냅니다.
어떤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대신에 세상의 악취(惡臭)를 발합니다. 교회와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중상하고 비방함으로 세상사람보다 더 악취를 내며, 오히려 세상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어떤 교인들은 외양으로는 멀쩡하게 생겼고, 악취를 내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안이나 밖에서 그가 믿는다고 하는, 그를 구원해주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한 마디도 증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말함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러한 교인은 냄새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 대할 때부터 짙은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냄새가 너무 짙어서 나중에는 어지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지나친 신비주의(神秘主義)나 이단(異端)에 속한 사람입니다. 가끔 문을 두드리며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몰몬교도들이거나 여호와의 증인 혹은 다른 이단 집단에 속한 사람입니다. 목사라고 신분을 밝히는데도 굳이 “당신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로 시작하여 “언제 구원받았나?” 등등으로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향한, 혹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음은 사실이나 너무 향기가 짙어 어지러움을 줄 지경입니다. 그들의 짙은 향기와 기성교회 교인들의 무취(無臭)와 혼합하면 은은하고 적당한 냄새를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때가 가끔 있습니다.

2
12절에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가기를 원하였지만 소아시아에서 그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주어졌기에, 문제가 심화된 고린도에 디도만 보내고 그는 소아시아 지방의 복음 증거를 위하여 에베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고전 16:8-9). 그러다가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주어져서 소아시아의 북서쪽 드로아에 이릅니다.

13절에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에 파견한 디도가 드로아로 와서 바울에게 그곳 소식을 전하여 주어야 할 터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디도가 오지 않고 또한 그로부터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하므로 바울의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혹시 그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더욱 커져서 겉잡을 수 없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바울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도이지만, 그도 약한 인간인지라 걱정으로 복음 증거하는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그는 드로아에서 복음 증거할 광대한 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복음다운 복음을 증거해 보지 못하고 그리스 중부 마게도냐로 발길을 향합니다. 그곳에서 혹 디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자 함입니다. 후에 마게도냐에서 바울은 디도를 만나고 그를 다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돕는 모금의 일로 고린도에 파견합니다(고후 8:16-24).

14절에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로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계속 가능케 하십니다.
온갖 고통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믿음을 지키는 일을 계속 가능케 하십니다.
우리의 대적은 공중 권세와 지상 권세를 가진 사단인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6장 12-13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때, 그 승리로 말미암아 각처에 있는 악취(惡臭)는 사라지고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ὀσμή)가 나타나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리스도의 향기는 악취에 뒤덮여서 사라지거나, 발하지 못하게 되거나, 악취와 섞이여서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를 내게 될 것입니다. 신문기사에 종종 나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불유쾌한 사건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고약한 냄새는 신문기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갈림이나 교회 내의 다툼이나 비방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또한 고약한 냄새를 없애기 위하여 뿌리는, 약간의 향내가 있는 냄새제거제(deodorant)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는 사회는 약간의 은은한 냄새를 내게 될 것입니다.

15절에서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발하는 향기(εὐωδία,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사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항상 동일한 그리스도의 향기이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그들과 동일한 냄새를 내고자 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들이 발하는 악취를 발함으로써 조금도 손해를 당하지 않고자 할 때가 있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라일락(lilac)의 꽃향기를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라일락은 그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의 향기를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의 향기도 마찬가지이어야 합니다.

16절에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의 냄새는 그 사람의 말과 삶을 통하여서 증거되는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냄새를 맡을 때 이 냄새를 좋게 여겨서 그도 이 냄새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고 이 냄새를 발하기를 원하나, 또 어떤 사람은 이 냄새가 싫어서 이 냄새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그 냄새 가까이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은 생명에 이를 것이요, 그렇지 않고 냄새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고,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라고 질문합니다.
‘누가 이러한 향기 발함에 적합하겠느냐?’("But who is adequate for such a task as this?" Living Bible)는 반문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감당할 바입니다.

17절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교사와 삯군 목자의 경우, 이단 집단의 교주의 경우,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은 사라지고 자신의 이익이나 권위를 위해서 이 말씀 저 말씀을 꿰어 맞춥니다.
교회를 잘못된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들의 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세상 복을 위해서 잘못 사용되거나 부적절하게 인용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되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하듯이 그렇게 순전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마땅히 할 바요, 그리할 때, 이 사람은 순전하고 향기로운 그리스도의 냄새를 사람들 앞과 하나님 앞에서 발할 것입니다.

3
우리에게서 어떤 냄새가 납니까?
시궁창이나 쓰레기더미에서 나는 악취는 아닙니까?
악취는 아니더라도, 크리스천인데 전혀 냄새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입술로 삶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야 할 것입니다.
편의에 따라서, 때로는 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냄새를 감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에게와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 동일하고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냄새”를 발하여야 합니다.
향기를 발하되 혼잡하고 불순한 냄새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파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른 바른 삶으로 순전하고 은은한 향기를 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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