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이스라엘의 구원(救援)” (로마서 11: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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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과 한국인들간에는 비슷한 점들이 많습니다. 작은 나라로서 외세의 영향과 지배를 많이 당하면서 살아온 것,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상이 강하고, 족보를 중요시 여기고, 자녀들의 교육에 정열을 많이 쏫는 것, 미국 땅에서의 삶에서 그들의 직업변천과정--가게 종업원에서 출발하여, 가게 주인이 되고, 자녀들을 의사나 변호사를 시키는 것등. 종교에 열심을 내는 것도 비슷한데, 유대인들이 옛언약인 유대교에 머물러있는 반면, 한국인들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한 새언약에서 두드러짐을 보면 현재시점에서는 한국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축복받은 백성이라 할 것입니다.
어떤 학문이나 분야에서건 콧대높은 미국인이 한국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경우가 없는데, 신학교에 가면 신학교에서는 한국 신학과 한국교회 성장의 연구에 관한 과목이 있고, 관심있는 미국신학생들이 과목을 택하고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민족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임을 깨닫게 되고, 이들의 이제까지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이란 분이 과연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유프라데스강 하류--지금의 지도로는 이란에 해당하는 곳이겠죠--의 갈대아·우르땅에 아브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살고있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부르십니다: “아브람아, 아브람아,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에게 복을 주겠고, 땅과 민족을 주리라.”
아브람은 유프라데스강을 건너 북서쪽으로 진행하여 하란에 이릅니다.
히브리인이라는 말은 “강을 건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바르(רבע)에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하(ה)를 덧붙여서 된 단어인데 해서, “강을 건넌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강을 건너옴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약속을 지키심에 조금도 오차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인도하시어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시고 아브라함은 여행자로서 그 땅에 머물고 있지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는 하나님의 시간과 날을 짐작할 수 없어 초조한 적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조금도 착오없이 약속하신 바를 지켜가십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에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시고 “많은 민족의 아비”가 되게 해주시겠다던 약속의 기초를 다지십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으로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게 하시고 “하나님과 씨름하다” 혹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란 축복의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약속의 땅--가나안을 얻기까지 430년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하시는데 먼저 요셉을 그곳 땅에 끌려가게 하시고 가나안땅에 가뭄이 들매 야곱의 자손 70인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약속하신 430년의 기한이 차매 모세로 장정 60만을 포함하여 250만 혹은 300만의 이스라엘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대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며 그들을 축복하시는 생활을 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이방 우상에게로 기울어진 마음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기를 원하셨던 온전한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솔로몬이 젊어서는 지혜와 명철의 왕이었지만, 아무리 지혜자요 하나님께 신앙이 있던 사람도 세상과 짝할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왕이기도 합니다. 천명이나 되는 이방의 처첩들로 인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고, 치명적으로 북방왕국 이스라엘과 남방왕국 유다로 갈리는 계기(契機)가 됩니다.
갈린 다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유다왕국과 이스라엘왕국에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듣는 귀가 둔한 왕과 방백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징계를 당합니다.
북방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피섞임을 당하여 혼혈민족이 되어 결국은 사마리아인이라 불리며 예수님 때에는 혈통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의 조롱(嘲弄)꺼리가 됩니다.
남방왕국 유다왕국의 왕과 방백과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안듣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지자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은 결과 이스라엘이 망한지 140년 뒤인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하고 70년의 포로생활을 감수하여야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처음 돌아왔을 때에는 예루살렘 성벽도 재건하고 성전도 개축하여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은 또 다시 옛모습의 삶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은 그들을 헬라인, 시리아인과 로마인의 손에 부치십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예수 그리스도께서 “길과 진리와 부활과 생명되심”을 말씀하셨지만 복음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그를 로마인의 손에 내어주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또한 하나님의 징계의 대상이 되고 흩어짐을 당합니다. 로마정부에 대항하여 두 차례에 거쳐 죽을 힘을 당하여 투쟁해보지만 역부족입니다.
132-135년 2차 투쟁을 벌였던 바-코흐바(Bar Kokhba) 혁명에서 패하고는, 유대인은 법으로 예루살렘 근처에도 얼씬할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렀다가는 붙잡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의 방황이 2,000년 가까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이후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다시 건설됩니다. 이것이 경이(驚異)가 아닐 수 있습니까? 세계 역사상 어느 나라와 민족이 그렇게 오랜동안 흩어짐을 당한 다음에 다시 나라로서 존재한 적이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족속을 일시적으로는 징계하시고 버리신 것같이 보이지만,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사도 바울의 믿음의 말씀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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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을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부분인 1-12절에서는 남은 자의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13-24절은 이스라엘과 이방인 역사의 과거와 현재입니다. 이스라엘중 얼마가 현재에는 원 참감람나무에서 꺾이움을 당하고 부러진 상태로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고 종국에는 다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구원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소망을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25-36절은 1-12절과 대조적으로 온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13-24절이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라고 한다면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미래입니다.
25절에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비밀(秘密)이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은밀(隱密)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을 향한 경륜(經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구원의 오묘한 섭리를 말함입니다.
에베소서 1:9-10에서 바울은 “그 뜻의 비밀(秘密)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經綸)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의 비밀은 보통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비밀은 알리지 아니하셔서 비밀이 아니라 사람들이 알고자 아니하여서 비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비밀을 모든 이방종족에게까지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해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그리스도의 피로서 담력을 얻어 하나님 앞에 나오고, 이로서 이스라엘도 시기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26절에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합니다.
11장 첫부분에서 “남은 자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할 때, 남은 자란 뉴앙스가 적다는 느낌을 주지만 숫적으로 소수라기 보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을 가리킨다 말씀드렸습니다.
대조적으로, 온 이스라엘은 많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뜻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하나님의 예정의 경륜에 따라 믿음을 지킨 이스라엘 한 사람 한 사람이 구원될 것임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28절에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말씀합니다. “복음으로 하면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인하여 원수된 자”라 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스라엘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이방인 가운데는 받아들여지고, 해서, 이스라엘중 얼마는 꺾이움을 당하고 하나님의 일시적 버림의 대상이 된 반면, 원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택하심으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거룩한 뿌리--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을 조상으로 둔 까닭에 여전히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29-30절에 “하나님의 은사(恩賜)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하므로 이제 긍휼을 입었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의 하는 일에는 홧김에 혹은 다른 일시적 감정으로 저지르는 일이 많습니다.
해서, 일을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라 식언(食言)치 아니하시고 후회함이 없으십니다.
바울이 후회하심이 없는 하나님을 말씀함은 “원래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을 내 백성이라 부르신 뜻”이 사람의 경우와 같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고 불순종한 것이 화가 나서 그들을 버리시고 이방인을 그의 백성 삼으신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깊은 경륜 가운데는 때가 이를 때에 이방인에게도 아들의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고, 그들도 구원할 계획을 갖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해진 것이 이스라엘의 순종치 않음으로 된 것이지만, 이는 그 경륜의 때가 이름을 말씀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일시적 감정으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마련되었던 구원을 이방인에게 돌리신 것은 아니란 말씀입니다.
33-34절에서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判斷)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느뇨?” 말씀합니다.
하나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백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을 헤아려 알고자 하고, 그를 나름대로 평가하고자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그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을 판단하여 평가할 수 없으며 그의 마음과 생각을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또, 그가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자기의 능력의 한정된 만큼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비밀의 경륜과 그 섭리를 다 알 수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우리의 부족함으로 불완전함으로, 죄와 허물의 속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헤아려 알 수 없으며, 그분의 계획을 다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55:8-9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합니다.
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감사함으로 순종함으로 나아감이 필요합니다.
35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질문합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먼저 드리는 의를 행함으로서 하나님의 갚으심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들이요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값없는 은혜와 긍휼을 입은 자입니다.
36절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말씀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바 인간이었지만 첫 사람 아담과 이브의 예를 따라 타락하고 하나님의 곁을 떠났던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찬 비밀의 경륜이 때를 따라 이루어져 갑니다. 우리는 이러한 만주의 주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구원의 그 어느 한 가지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께 “아멘”으로 그 분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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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의 삼분지 이가 아직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들려지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즉,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질 때, 완악하였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소망하는 예수니의 재림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선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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