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우신 이름 예수” (마태 1:18-25)
1
처음 아기를 갖게 되는 가정은 그 아이의 이름을 무엇이라 지을까 오랫동안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이러 이러한 이름을 주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저러저러한 이름을 주어야지.’
세상에 사는 60억의 사람의 이름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그들의 이름은 대부분 특별한 의미와 기대와 소망을 갖고 붙여진 이름들입니다.
저의 집에 네 아이가 있는데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은 성경의 인물들 중에 P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따왔습니다. 굳이 P자로 시작되는 인물을 따온 것은 제가 바울(Paul)을 좋아하기에 첫 아이의 가운데 이름(Middle Name)을 Paul이라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태어나는 아이들의 가운데 이름들에 P자 돌림을 주고 싶었고, 해서 Paul, Priscilla, Peter와 Philip이라고 붙이게 되었습니다. 나의 자녀들이 성경 속의 인물들처럼 주님을 온전히 섬기며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소망 중에 그런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히브리인들도 한국인 못지 않게 이름짓는 일에 신중하고 그들의 의미와 소망과 기대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부모로서 그들의 자녀에게 원하는 이름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그런 이름을 짓게 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흙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고 해서 흙을 뜻하는 ‘아다마’를 남성명사화한 것입니다.
그의 아내 하와는 ‘산 자의 어미’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은 한 민족의 아비란 뜻인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많은 민족의 아비란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십니다.
형을 속이고 아비를 속인 야곱은 ‘교활한 자’란 뜻인데 그가 얍복강 가에서 주의 천사와 밤이 맞도록 씨름하매 그의 하나님 축복 사모함을 가상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곧 ‘하나님과 씨름한 자’란 이름을 주십니다.
모세가 ‘건져낸 자’란 의미의 이름을 얻은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 패역한 세대를 물로 멸망하신 것과는 달리, 그의 백성들을 구하실 때 ‘멸망의 물 가운데서 건져냄을 받은 자같이 구하시겠다’는 계획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건져낸 자’--모세라고 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이란 뜻의 여호수아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바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온전히 미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2
예수님의 이름도 의미와 소망과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 딸은 사람의 소망과 기대를 담고 있지만,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소망과 기대와 예언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은 그들의 부족하고 포기함으로 인하여서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하나님의 소망과 예언은 착오가 없으십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 장차 오실 메시아의 이름이 임마누엘(Immanuel)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다”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우리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신 다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안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임마누엘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영--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심은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9장 6절에서는 메시아의 또 다른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는 기묘자(Wonderful)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기묘자인 것은 그가 놀라운 일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놀라운 일들 가운데 가장 놀라운 일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일입니다.
모사(Counselor)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나아갈 바, 행할 바를 가르쳐주시며,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Mighty God)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영존하시는 하나님(Everlasting Father)이라고 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 되시며, 세상 전에도 계셨고 세상 이후에도 계신 분이십니다.
성부, 성자와 성령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한결같으신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평강의 왕(Prince of Peace)이라고 했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은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불화의 강에 다리가 되시기 위하여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Prince of Peace)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와는 구원”이란 뜻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영적인 이스라엘을 영적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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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이름은 놀라운 이름이요, 기이한 이름이요, 전능하시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이요, 우리에게 위로와 화평을 주시는 이름이요, 구원을 베푸시는 자의 이름입니다.
다같이 이 땅에 평강의 왕,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탄생하신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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