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예수님” (마태 1:18-25)
1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다니지 않는 사람이나 매 한 가지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한국전쟁 직후의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했듯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는 선물 같은 것은 도저히 기대도 할 수 없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유난히 기다렸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다른 날은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도 크리스마스날만은 교회에 꼭 가고 싶었던 것은, 크리스마스날에는 교회에서 모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에게도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것은 캐롤송이 거리에 울려퍼지고 산타 할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맘 때 쯤이면 연말 보너스를 받고 또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한 잔 하고 밤도 새는 재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어떤 연유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왔고 어떻게 지난 크리스마스를 보내왔든,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성장해나갈 때 우리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이유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신앙의 결심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12월 25일을 축제일로 지키는 행사는 원래 이집트(Egypt)의 산출의 여신인 이시스(Isis)를 숭배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이후 언제부터인가 이시스 여신을 기념하는 날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탄생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전례대로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키는 반면에, 아르메니안(Armenian) 크리스천들은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로 지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12월 25일이냐 1월 6일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육신의 몸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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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땅 갈릴리 나사렛이라고 하는 마을에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요셉이라고 하는 목수 청년과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왔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예수’는 ‘여호와는 구원’(히, 여호수아, 예수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에게 구원을 주실 것임을 미리 알려주심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백성 유대인들에게 하신 약속(미가 5:2; 이사야 7:14)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여 오셨습니다. 구약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같이하신 역사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우리는 이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땅으로부터 인도하여낼 때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그들이 40년동안 광야에서 행진할 때 그들의 의복과 신발이 닳지 않게 하셨습니다.
구약을 통하여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많은 환난을 당했음을 압니다. 이는 그들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자신들의 탐욕과 부정함 가운데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앗수르에게, 바벨론에게, 페르시야에게, 그리-스에게, 또한 로마제국에게 핍박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여주신 메시야가 그들에게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가 그들에게 오실 때 그가 그들을 로마제국의 억눌림에서 해방시켜주시리라는 기대가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이 그와 더불어 왕같은 삶을 살리라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은 그들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습니다. 로마황제 아구스도의 명에 따라, 요셉도 그의 정혼자인 마리아와 같이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올라갔습니다. 유대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로마황제의 명으로 고향으로 가고 있으므로 길들과 여관들은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고향인 베들레헴에 다다랐을 때에는 여관은 이미 먼저온 다른 사람들로 만원(滿員)이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고향을 떠나 나사렛으로 이사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으므로 베들레헴에 그들이 아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했찌만 아무 곳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날을 쉬기 위하여 마굿간에 머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바로 이날 밤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분만하였습니다. 마굿간에 예수님을 누일 곳이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그들은 말구유에 짚을 깔고 그곳에 예수님을 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이야말로 그분이 우리의 가까이에 계신 분이 되시게 하고 우리의 주님이 되시게 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로마제국의 왕자로 태어나셨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낮고 천한 데로의 탄생은 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황색인이나 가리지 않고 우리 모두를 수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그를 주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삶을 통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이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여 주고 계십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2장 5-8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한 것같이, 우리가 이와같은 낮아지는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성탄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임마누엘이라고 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초대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셨기에 그들은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 마음 속에 예수님이 역사하셨기에 그는 두려움으로 세 번씩이나 부인(否認)한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을 수 있었고, 스데반에게 주님이 함께 하실 때 그는 주님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었으며, 바울의 마음에 임마누엘의 주님이 함께 하셨기에 그는 옥에 갇히고 매를 맞으면서도 그에게 그러한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 부함과 가난함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유대인 소설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그의 자서전적(自敍傳的) 작품인 「밤(Night)」에서 자신의 독일 수용소 생활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 노인과 여자를 포함한 많은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죽어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화장터의 연기로 사라지고, 어떤 사람들은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져갑니다. 어린 그가 그렇게 열심히 신봉하고 의지하던 하나님은 유대인의 비극 가운데 잠잠하기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실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 가운데, 눈물 가운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 받으실 때 함께 고통 받으셨고, 우리가 혼인잔치로 기뻐할 때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죄에서, 사단의 권세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십니다.
3
크리스마스는 우리 모두가 우리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육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며칠의 연휴를 얻을 수 있다는, 선물을 받고 보너스를 받는다는 이유로서만 그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그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서 발견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제 우리의 고통과 슬픔과 좌절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신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같이하심을 발견하기를 축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하는 천군천사의 찬송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임마누엘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찬양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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