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eptember 8, 2013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로마서 3:21-31)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로마서 3:21-31)       

                                                                          1
"Boys, be ambitious!"란 말이 있습니다. ‘소년들이여, 큰 뜻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큰 뜻, 큰 목표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매어달리게 되고 전력(全力)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2장 31절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권면합니다. 더욱 큰 은사와 주님의 사업을 사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이제까지 우리는, 본서의 대전제인 하나님의 의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으로 나타났다는 것(1:1-17), 이러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님을 알되 인정치 않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고(1:18-32), 그 결과 모든 사람이 주님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 하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2:1-3:20).

1장 17절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증거한 바 있는 바울은 3장 21절 이하에서 다시 이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1:2).
21절에 이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1장 2절에 이미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의가 장차 나타날 것을 선지자들이 증거하였다고 했습니다. 율법책도 다름아니라 이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2절에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데, 해서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25절에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나타나는데, “길이 참으시는 중에 사람의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나타난다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덮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해서, 26절에 하나님의 의는 “자기도 의로우시고 예수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다름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평’입니다.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모든 인간들이 자고하고 우준하게되어 죄를 범하고(1:18-32), 해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곁에 거함)에 이르지 못하였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가 불의와 공존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것,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믿지않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죄(罪)는 '하타아트'인데, 그 동사형 '하타아'의 뜻은 ‘길 혹은 목표에서 벗어나다, 표적을 빗마추다’ 입니다. 신약성경 헬라어의 ‘죄짓다’란 단어, 하말타노(ἁμαρτάνω) 역시 ‘표적을 빗마추다, 바른 길 혹은 목표에서 벗어나다, 방황하다’라는 본래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표녁을 빗맞추고 있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죄는 우리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표적판을 맞추는 삶을 맞추려고 하는데도 못미치는 경우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표적에서 빗나가게 화살을 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믿지 않는 삶,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독생자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셔서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시는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합니다. 그의 행위로는 의롭지 않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를 의롭다 하셨습니다(3:24).

예수님의 죽으심은 화목제물이십니다.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벽이 건너지 못할 강이 놓여 있었는데, 예수님의 육체로 드리신 화목제물로 벽이 무너지고, 건너지 못할 강에 다리가 놓아진 것입니다. 해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를 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간과(看過)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용납하심입니다.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로와졌습니다(3:25-26). 해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리를 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14-16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유대인과 이방인)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으사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진 우리는 따라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인 까닭입니다. 바울은 28절에서 다시 한 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짐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의 은혜는 유대인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까지 미칩니다. 율법을 받았던 할례자, 유대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고, 율법을 받지 못한 무할례자, 이방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3:30).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졌다고 하여 우리에게 율법이 필요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감사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진심으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31).

                                                                               3
“행복”에 해당하는 영어단어 happiness는 그 어원이 “어떤 일이 일어나다, 발생하다”는 뜻인 happen과 같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세상의 행복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에 외적으로 어떤 긍정적인 일이 발생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내적인 변화나 깨달음에서 옵니다. “행복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슈레이(אשׁרי)나 헬라어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는 ‘인간의 지속적인 내면적인 기쁨과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님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와지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남을 마음 속에서 깨달아 그 삶이 변하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삶을 살므로 내적인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고, 뿐만 아니라 각 가정과 개인에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므로 외적인 행복과 기쁨의 조건들도 풍성한 매일 매일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