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14, 2014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 (고전 2:10-16)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 (고전 2:10-16)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通達)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니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
            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1
어느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 여자 분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담임목사님을 열심히 도와 교회가 뜨거워지는데 일조(一助)를 담당하였습니다. 그가 집사가 되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위해 봉사합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야간 신학교에도 다닙니다. 담임목사님은 그를 심방전도사로 삼고 약간의 보수를 지급합니다. 그런데, 미혹(迷惑)의 영이 그의 교만해진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담임목사님을 열심히 돕던 그는 언제부터인가 담임목사님이 틀렸다고, 무능하다고 교회 안에서 떠들기 시작합니다. 그의 뜨거운 기도를 들은 사람들이나 그에게 병 고침의 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따라 그들의 담임목사님을 같이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지자 담임목사님은 이 여전도사님을 불러 주의(注意)를 주고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열심과 잘못된 예언(豫言)의 영을 받은 이 여전도사님은 그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교회가 시끄러워짐을 볼 수 없어 담임목사님은 그 여전도사님을 내어보내는데 그는 자기의 파 20-30명을 끌고 교회를 욕하며 나갑니다.

여전도사님이 자기의 추종세력을 끌고 다른 교회로 들어갈 때, 그 교회 목사님은 이 전도사님의 말만 듣고 먼저 교회의 목사님이 잘못되었구나 생각합니다. 그 전도사님은 기도가 뜨겁고 또 한동안은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겸손하고 온유한 믿음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 여전도사님과 그의 추종세력은 열심이 특심하기에 그 교회는 20-30명의 새로운 교인들과 또 그들이 전도하여 늘어난 교인들로 금방 부흥을 이룬 듯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고 이 전도사님은 교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담임목사님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담임목사님보다 자신의 영적 능력이 더 뛰어나고 담임목사님이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성도들 간에 분열을 조성하고, 또 교인들 간에 편이 갈라지고, 자신도 그 교회에서 견딜 수 없어 또 다른 교회를 찾아 나서는데, 열성적인 그의 추종세력은 또다시 그와 함께 뜻을 같이 합니다.
인터넷(internet) 종교란의 한 기사인데, 한국 교회에서 흔히 보는 문제입니다.

예언과 병 고침과 능력 행함이 모두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떤 거짓 선지자나 목회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병고치고 직통계시를 선포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능력이 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고 이러한 사람을 따라 가다가는 낭패(狼狽)를 당하기 쉽습니다.

2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聖靈)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란 앞에 나오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비밀한 가운데 있던 하나님의 지혜인데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되어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지혜의 비밀은 오직 지혜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자 하나님은 말씀(Word, Logos)으로 표현되고, 성령 하나님은 주로 지혜(Wisdom, Sophia)로 표현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밀을 우리에게 밝히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각으로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계셔야 할 것은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자가 됩니다.

11절에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과부의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와 비슷한 처지가 되어보지 않고는 그 사람의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자신이 다쳐서 불편한 몸이 되어보기 전에는 불편한 몸을 가진 사람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되어보기 전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몇 년을 혼자 있어보기 전에는 혼자 사는 사람의 숨 막히는 고독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인이 되어보기 전에는 노인의 외로움과 바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인데,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과 원치 않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12절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했습니다. 여기 세상의 영이란 ‘마귀(=사단)의 영’입니다. 사단의 영이 사람을 사로잡을 때 그 사람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이는 사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아니하는 세상사람 중에 하나--곧, 불순종의 자녀이었을 때 우리는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을 따랐으며 그의 영이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면서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사단의 구속에서 놓임 받았으며,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사단의 영이 다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이 내 마음에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은혜이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은혜이요,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들을 소망 가운데 바라봄이 은혜이요, 또한 장차 하나님의 영광나라에 들어감이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5-8절에서 바울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살고 죽는 것,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풍성함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을 그 가운데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며 세상의 것들을 좇는 사람은 여전히 사단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란 바울이 앞에서 말씀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구원으로서, 전에는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차매, 모든 사람들에게 밝히 드러내어 알게 하기를 원하시는 바입니다.
그 하나님의 지혜의 비밀을 알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인간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계실 때, 우리는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뿐아니라 하나님의 다른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을 다 밝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은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 하나님의 원하심을 행하게 하심입니다.
바울이 이같이 말함은 인간의 지혜로 아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먼저 그에게 가르치신 것들을 고린도 교인들과 우리에게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성령에 관한 일들은 신령한 일로써 오직 신령하신 성령과 그의 지혜가 아니면 분별하여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병을 고치시는 “여호와 라파”(여호와는 치료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병 고침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은 아닙니다.
잡신의 부림을 받는 무당(巫堂)도 병을 고칠 수 있고 또한 사단도 병고침을 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안에 예언과 계시를 행하는 사람으로 시끄러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종들을 통하여 예언과 계시를 행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예언과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 능력 행함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행하시지만, 모든 능력 행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할 때, 애굽의 술사(術士)들도 그들의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많은 거짓 목회자들이 단지 병 고침과 능력 행함으로 사람들을 오도(誤導)하되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행하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 행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사단이나 잡신으로부터 온 것인가를 분별하는 방법은 그것이 누구의 영광을 위해서 행해진 것인가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2-23절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고치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이 비록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거짓 선지자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진 것이라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행하여진 것이라도 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자신을 높히고자 하는 이 사람에게는 단지 주문(呪文)에 불과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도둑놈입니다.
요한은 요한1서 4장 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영(靈)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2장 14절에서 3장 3절까지에서 바울은 세 종류의 사람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2:14)과 영에 속한 사람(=신령한 자, 2:15)과 육신에 속한 사람(3:1, 3)입니다.
사람의 영(靈)·혼(魂)·육(肉)과 관련하여서 육에 속한 사람은 혼(魂, soul, psyche)과, 영에 속한 사람은 영(靈, spirit)과, 육신에 속한 사람은 육(肉, flesh)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는 육에 속한 자는 길가에 떨어진 씨이며, 육신에 속한 자는 돌밭이나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진 씨이며, 영에 속한 자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입니다. 육에 속한 자의 믿음의 씨는 아예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 길가에 떨어지자마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까닭입니다.

육신에 속한 자의 씨는 믿음의 형태가 보이는 것 같으나 이내 뿌리가 없어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면 곧 말라 버리거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財利)의 유혹으로 결실치 못합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자의 씨는 좋은 밭에 뿌리워졌으므로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잘 자라서 삼십 배, 육십 배, 혹은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14절에서 바울은 “육(肉)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을 영어성경은 “the natural man"(자연인, KJV) 혹은 ”the unspiritual man"(신령하지 않은 사람, RSV)이라고 번역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수키코스(ψυχικός)는 ‘혼(프쉬케, psyche)--겉사람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 혼(프쉬케, psyche)은 이 ‘세상의 영’(=사단)의 미혹을 받기 쉽고, 우리 인간의 육적 생활(physical life)의 원동력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쉬케(Psyche)는 어느 나라 임금의 세 딸 중에 막내 딸로서 그의 아름다움이 출중하여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로마신화: 비너스)의 시샘꺼리가 되어 아프로디케는 그의 아들 에로스(로마신화, 큐피드)에게 그를 저주하는 명령을 내리지만. 잘못 몸에 닿은 화살촉으로 프쉬케와 에로스는 모두 상대방에게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프쉬케(Psyche)는 혼(魂)이란 뜻말고도 나비란 뜻을 갖고 있는데, 에로스(=큐피드)를 따라간 프쉬케 공주와 같이 이 나비는 달콤한 세상 행복인 꽃들을 찾아 날아다닙니다.

육에 속한 사람(ψυχικός)은 세상적인 것만을 생각하기에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에로스적인 사랑만을 생각하기에 아가페적인 사랑을 요구하는 영적인 것을 받기를 거부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영적인 것은 미련하게 보일뿐입니다.

15절에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신령한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코스(πνευματικός)는 ‘속사람을 다스리는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 안에 계신 성령은 잠잠치 않으시며, 주님의 일을 생각나게 하시며 그 일을 할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판단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나크리노(ἀνακρίνω)는 ‘분변하다, 판단하다, 심판하다’는 뜻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의 행위가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가 분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람에게는 믿지않는 세상 사람과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할 권한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믿지않는 사람의 판단을 받지는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 믿는 사람들끼리의 세상 법정에서의 송사를 금하는 바울은 2-3절에서,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영에 속한 사람의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의로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왈가왈부(曰可曰否)하는 것은 여기에서 바울이 말하는 판단(判斷)이 아닙니다.
15절에서 바울이 “신령한 자는 ...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함은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이 없는 행동을 하기에 아무에게도 하나님의 법에 근거하여 정죄되거나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부정한 짓을 해? 남을 속이고, 도적질을 해?’ 하는 비난을 받지 않습니다.

16절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갖지 않고는’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또한 주님에 관해서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갖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ἡμείς νούν Χριστού ἔχομεν)”고 함은 ‘우리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지배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품고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이 사람은 영에 속한 자이며, 하나님의 사정--그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정을 통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합니다.
이 사람은, 따라서, 또한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mark, 갈 6:17)을 갖고 삽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다스리실 때, 우리의 마음과 몸은 따로따로 놀지 않습니다.
마음에 품은 예수님 사랑의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3
성령을 마음에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속사정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과 근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일을 생각함으로 육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영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영에 속한 자가 될 때 이 사람은 풍성한 열매를 맺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맺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 사람의 일을 판단할 능력이 있으되, 다른 세상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기준에 따른 판단과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그가 사신 삶의 모습과 흔적을 그 몸에 지니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마음에 받은 사람들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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