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9, 2014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 (로마서 15:14-21)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 (로마서 1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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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있는 오늘의 세계는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윤리가 참으로 결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가정과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다 마땅히 지키면서 살아나가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알 것인데,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다른 사람보다 잘 되기 위하여 이 모든 도리를 저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더욱 개탄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이를 전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나야할 기독교 윤리가 무시된채 행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는 사실입니다. 남의 교회 교인들을 가만히 빼앗아 가고, 자기 교회의 이익을 위하여는 다른 교회를 무시하고 비방하는 일을 서슴없이 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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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는가, 선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무엇인가 말씀합니다. 1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믿음 안에서 격려의 말씀을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마땅히 이러한 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곧 주님의 성품을 본받아 선함이 가득한 자가 될 것이며, 세상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넘쳐서 서로 돌아보아 권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 직분을 감당하고있는 것은 주님의 은혜가운데 이런 일들이 유대인들뿐아니라 이방인들사이에서도 넘쳐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16절에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취하여서 피는 단 사면에 뿌리고 짐승의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간에 덮인 꺼풀을 불살라서 화제(火祭)로 드렸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간에 화목을 이루게 하는 화목제물이었습니다.(레위기 3장)
                                                   
바울은 자신의 이방인의 사도의 직무를 이에 비교하여 “이방인과 하나님 간의 화목을 이루게 하는 제사장”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화목제물이 소나 양이나 염소였는데 신약시대에는 바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제물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바울은 이미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림”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했습니다. 곧, 우리의 전 인격을, 삶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드릴 때 이것이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인데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며 하나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 후반에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하심이라”고 말씀한 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받으시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거룩하고 하나님의 기뻐받으시는 삶이란 뜻입니다.

17-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자랑꺼리를 말씀하는데, “그러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말”은 사도바울의 복음에 대한 설교와 가르침이요 “일”이란 그가 이 복음증거를 위해 드린 고난과 수고의 행적입니다.

바울은 그의 나이 36-7세쯤 다메색으로 가는 길에서 빛가운데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래 70세쯤에 콜로새움에서 처형되기까지 30여년동안 그의 발을 아끼지 않고 소아시아와 그리-스와 로마로 다니면서 복음증거의 수고를 잘 감당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서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말씀한 대로 그는 자신을 비롯하여 복음을 증거하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30여년 고되지만 즐거운 행보로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나타났는데 바울은 이를 자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서 자신의 능력많음을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이방 가운데 퍼짐을 기뻐하고 그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 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자신의 능력과 지식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랑은 주님을 자랑하는 것이며,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바울에게 남들이 따라오지 못 할 철학이 있고 세상의 지식과 지혜가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 바울이 알고 자랑하기를 원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만”(고전 2:2) 이었습니다.

19절에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고 말씀합니다.
“이 일”이란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가운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이방의 세계에 퍼져나갑니다.
일루리곤은 그리-스 반도 북서쪽의 지명인데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으로서는 땅 끝에 해당되리마치 예루살렘에서 먼 곳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바울에게 임하시고 그를 도우실 때, 그는 이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20절에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기존 교회들 가운데, 특히 한인교회들에서 잘못된 모습은 “교인 빼앗아 가기-빼앗아 오기”입니다.
이를 위하여서 서로 교회를 비방합니다.
‘그 교회는 무엇이 나쁘고 목사님 설교가 형편없으니 우리 교회로 나오시라’고.
그러다가 더 심하면,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습니다”고 말하는 사람까지 생겨납니다.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전도와 선교를 감당하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해야 할 것인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렇게 함이 남이 닦아 놓은 터위에 집을 건축하려는 세상적인 약삭바름을 피하는 자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범하기 쉬운 오류(誤謬)는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백성의 윤리(倫理)가 따로 있는데 세상을 살면서 이 윤리를 망각하고는 세상에서 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꾀를 내어 남을 속이고 비방도 가리지 않고 하면서도 이를 당연시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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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하나님의 교회들에 주신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작다고 해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평안한 가운데 안주(安住)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만듭니다.
사도행전 8장에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을 체험한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들 안에서만 평안한 생활을 하고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그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교회로서 우리 자신을 주님께 기뻐하시는 제물로 드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쁘시게 하는 영적예배를 드리는 삶의 종국인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직도 죽어가는 심령들에게 증거하는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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