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5, 2013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 (빌레몬 1:4-7)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 (빌레몬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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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은 두 발 자전거 타기
성도의 신앙생활은 ‘두 발 자전거(Two-Wheel Bike)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두 발 자전거를 탈 때 페달(pedal) 밟는 일을 멈추면 자전거가 쓰러지듯이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들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교제하는 일’을 멈추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정지하여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 맙니다. 그런데, 두 발 자전거 타는 사람은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서 페달을 밟으면 다시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기도와 믿음과 사랑의 교제’라고 하는 페달 밟는 일을 중단하여서 쓰러진 사람은 다시 일어나서 그의 신앙의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매우 어렵게 생각됩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한 주일, 두 주일 거르다가 혹은 아예 몇 달, 일 년 이상을 쉬었던 사람이 다시 교회를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본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교회를 매주일 다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것을 처음 시작하는 일도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이를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함이 처음 시작하는 것 이상으로 힘든 것은 본인에게 왠지 쑥스럽고 가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의 두발 자전거의 페달 밟는 것을 노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함이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의 믿음의 정진은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자세에서 가능합니다.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는 목회자나 성도에게는 신앙에 발전이 없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에서나 짐승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해서, 예수님은 뱀의 (간교함은 빼고)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을 배우라(마태 10:16)고 말씀하시고, 불의한 청지기의 (불의함이 아닌) 지혜롭게 셈하는 방법을 배우라(누가 16:8)고 말씀하십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에게 신앙의 삶에 전진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정기적으로 설교를 듣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며 보다 성숙한 목회자나 성도가 되기 위하여 내게 필요한 것을 더하기 위함입니다.

칭찬하는 크리스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참으로 인색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는 일’입니다. 저도 옆 사람이 ‘아부성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괜히 부아가 나고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인데, 이러한 것이 때로는 필요함을 속으로 느낍니다. 그런 ‘아부성 발언’으로 부정부패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분수에 넘치는 칭찬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80점을 맞았으면, 흔히 부모의 입장에서 ‘야 이걸 성적이라고 받아 온 거냐?’ 하고 윽박지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문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80점이나 맞았어. 참 잘했구나. 그런데,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텐데...’라고 하면 아이로 더욱 분발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줄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교사나 부모나 주위사람들의 평범한 것 같은 칭찬이 그들로 하여금 큰 일을 해내게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도 성도들을 칭찬하는데 특별한 은사가 있던 목회자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의 모습이 별 것 없고 문제 투성이였는데도 그들 가운데 조그만 칭찬거리를 찾아서 칭찬을 합니다(고전 1:5-7). 바울의 각 서신에서 바울은 성도들을 칭찬하고자 하는데 이렇게 함은 그가 정작 말하고자 함이 그들의 열린 마음 가운데 전달되기를 원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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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을 칭찬함은 그로 말미암아 그가 열린 마음으로 바울이 의도하는 말을 듣게 하고자 함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빌레몬이 그의 재물을 훔쳐서 도망쳤던 오네시모를 (바울이 칭찬하는) 그 믿음과 사랑의 교제로 받아들여달라는 것입니다.

    4절: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바울의 감사와 기도
바울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는데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성도들의 삶에 항상 넘치게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 ‘감사할 것이 있어야지 감사하지요’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것이지만, 바울의 감사는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가운데서 나오는 감사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감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이 감사하고,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심이 감사하고, 우리가 세상에서 고통 당하고 상심할 때에도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시니 감사하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니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을 주시니 감사하고...

바울은 흩어져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많은 기도를 합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함께 교회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잘 들어주십니다. 다른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 성도의 결점보다는 장점을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미운 감정이 줄어들고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을 위한 기도를 많이 하는데, 그러나 이는 목회자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5절: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
바울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감사한 것은 빌레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들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은 까닭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 1장 15-16절에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고 했고, 또한 골로새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도 1장 3-5절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라고 했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도 데살로니가전서 1장 2-3절 (또한 살후 1:3)에서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적고 있습니다. 에베소 성도들과 골로새 성도들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그들을 말한다고 했는데, 빌레몬서에서도 동일한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쁨, 기도와 감사가 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의 신앙의 표현방법이라고 한다면, 성도의 사랑과 믿음(또는 믿음 과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나지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할 덕목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데 성도들을 사랑함이 내게 없다면 나의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자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랑은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성도들에게도 표현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즉, 믿음은 성도의 내적 상태요 사랑은 외적 표현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인데, 그 믿음은 그저 아무 의미나 열매 없이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열매를 나타내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관계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또한 그 믿음의 표현인 하나님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바울이 들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기도 중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6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의 교제
“네 믿음의 교제”(ἡ κοινωνία τής πίστεώς: the sharing or communication of your faith)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의 교제’란, 첫 번째는 빌레몬이 하나님과 믿음으로 교통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의 믿음을 다른 성도들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게 함입니다. 세 번째는 빌레몬이 그가 갖고 있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으로 향한 믿음으로 성도들과 교제함입니다. 빌레몬이 믿음으로 그의 집을 골로새 성도들을 위한 예배의 장소로 제공한 것이 믿음의 교제이며, 또한 모인 성도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고, 그의 '집 교회(house church)'를 찾아온 방문자에게 숙박의 장소를 제공함이 믿음의 교제 또는 나눔입니다. 그렇게 믿음의 교제를 할 때,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것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하심을 따라 인자와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받아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빌레몬이 하나님과 믿음으로 교통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믿음을 성도들에게 증거하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으로 성도들에게 교회장소를 제공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누고, 방문객을 친절하게 대접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그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집니다. 그리할 때, 빌레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광을 얻고 높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처럼 예수 믿을 바에야 차라리 나는 안 믿어’ ‘저런 사람도 예수 믿고 천당 간다면 나는 차라리 그곳에 안 갈꺼야’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온갖 나쁜 짓을 도맡아 하네’ 하는 소리를 듣는다면 이 사람을 통하여서는 아무런 선한 것이 그리스도께 미쳐질 수 없으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이 비난거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교제가 있는 삶이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그로 인하여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고 찬송을 받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성도들의 마음이 평안함을 얻음
“Make yourself at hom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집을 방문하면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긴장되어 마음이 편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주인이 손님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마음이 집에 있는 것처럼 평안할 수 있습니다. 빌레몬은 그의 집을 방문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환영하였습니다. 빌레몬이 ‘믿음의 교제’를 따라 사랑을 성도들에게 나누어줄 때 그의 집 교회를 찾는 성도들이 평안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기쁨과 위로를 얻음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의 교제에 관하여 로마의 옥으로 그를 방문한 에바브라를 통하여 들었을 것입니다(골 1:7-8). 빌레몬은 바울이 에베소 전도를 하고 있었을 때 그에게서 복음을 들음으로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온갖 고생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어떤 물질적 보상을 바라기보다는 그 자녀의 잘됨이 부모에게 커다란 기쁨과 위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이 바울에게 믿음의 자녀인데, 그가 이제 믿음이 성장하여 그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누어주고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광을 얻고 있음을 듣는 목회자 바울의 마음은 커다란 기쁨과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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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결단
사랑과 믿음은 항상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형제와 자매를 사랑함이 나타나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 된 성도들을 사랑함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우리의 삶의 증거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여러분을 통하여 교회 안에서 나타나지기를 바랍니다. 그러하므로, 우리 교회를 처음 찾는 사람이 여러분의 따뜻한 환영과 사랑을 동반하는 믿음의 교제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고, 해서 우리 교회가 인근 주위에 주님 안에서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라고 소문나기를 소망합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분은 목회자를 신명나게 하고 위로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에게 영광돌리는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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