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8, 2016

“주 안에서 부모와 자녀들” (에베소서 6:1-4)

“주 안에서 부모와 자녀들” (에베소서 6:1-4)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1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 출전...회남자 인간훈편)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옹지마는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란 뜻입니다.
국경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노인이 기르던 말이 이웃 나라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그 노인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노인은 별로 낙담한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일이 어찌 복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리요?”
몇 달이 지나자 노인의 말이 이웃 나라의 준마들을 이끌고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노인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렇게 크게 기쁜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이 일이 어찌 재앙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리요?” 노인의 집에는 좋은 말들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어느 날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절름발이가 된 아들을 불쌍히 여긴 이웃사람들이 노인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노인은 별로 좌절한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 일이 어찌 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으리요?”
일년쯤 지나자 이웃나라가 국경을 침입해 들어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나라에서는 건장한 청년들을 병사로 징병하고 이들은 전장터에서 죽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불구라서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로 크게 좋아할 것도 없고 또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나에게 주어진 여건들은 다만 환경일 따름입니다. 나의 앞에 주어진 환경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보기를 원하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환경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요 믿음입니다. 우리의 기쁨과 감사함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로 말미암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6장 9절에 주 안에서 세 관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세 관계 모두 하나님과 성도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상전과 종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교할 때 이미 밝혔지만, 남편과 아내의 관계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 주인과 종의 관계도 그것이 궁극적인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한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알려주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되시는지 알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아내로서, 자녀로서, 혹은 종으로서의 자신의 조건에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해서, 그러나, 현재 나의 처한 상황에서 태만하거나 불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입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불성실하거나 불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우리들은 아내요, 자녀요, 종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남편과 아내에게, 부모님께, 상전을 대함에 순종과 공경과 사랑함으로 하지 못한 사람이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공경하고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부모-자녀의 관계를 보면, 모세의 십계명 중 제 5계명에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의무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도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 어떻게 하시는가 짐작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절: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 안에서”란 “주님의 뜻 안에서”란 말로 혹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도적질하라’ ‘우상숭배하라’ 명할 때 이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러한 것은 부모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배치되므로 “주 밖에” 있는 것입니다.
곧 “주 안에서”는 세상을 살 때 우리에게 주어진 부모-자식 사이의 순종의 한계를 설정하여 놓은 것입니다.
“순종하다”란 말은 헬라어로 후파쿠오(ὺπακούω)입니다. 훞(ὺπ)은 “아래”란 뜻이고, 아쿠오(ἀκούω)는 “듣다”란 뜻이므로, 후파쿠오(ὺπακούω)-“순종하다”는 “아래에서 듣다,” “경청하여 듣고 실천하다”란 말입니다.
2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순종(順從)이 실천적(實踐的)인 면을 강조한 것이라면, “공경하다”(τιμάω)는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하다”란 의미로 우리의 “마음 자세”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즉, 자녀로서 부모를 대하되, 마음 속으로부터 “존경하고 경외할 뿐 아니라” 부모의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대할 때 마음 속으로부터 “존경하고 경외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 했는데, 모세의 십계명 중 제 2계명에 보면,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제 2계명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약속이라고 한다면,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는 제 2계명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질 ‘하나님 은혜(恩惠)’의 실제적인 예로서, 구체적인 약속-“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된 십계명이 모세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광야를 행진하다가 시내 산에 1년 머물 때에 받은 계명이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가나안 땅은 아직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해서, 사실은 “여호와가 네게 줄 땅”이라고 미래적인 표현을 사용해야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변개함이 없는 확실한 보증(保證)이므로 “내가 네게 준 땅”-곧, 600여 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이미 준 바 된 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어기고 부모를 말이나 행동으로 치거나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과 기업을 받지 못할 것을 분명히 하셨는데, 출애굽기 21장 15절에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고, 21장 17절에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咀呪)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경고하십니다.

3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네가 잘 되고”라 함은 하나님의 질적인 축복을 말함이며, “땅에서 장수하리라” 함은 양적인 축복입니다. 땅이라고 함은 “약속의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는 사람이 장차 거할 곳-“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킬 뿐아니라, 현재 우리가 사는 이 땅-“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땅”도 포함합니다.
우리의 이 땅에서의 장수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4절: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4절에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의무가 두 가지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했는데, 골로새서는 그 이유를 말할 때 3장 21절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들이 종종 자녀들을 소유물 취급한다든가 가볍게 대하며, 자기 화풀이 대상으로 삼을 때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며 그들에게 낙심(落心)을 줄 수 있으며 마음에 응어리를 남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형제간에 비교하는 것도 금물(禁物)인 것은 이로써 마음에 상처(傷處)를 받을 자녀도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오직 주의 교양(敎養)과 훈계(訓戒)로 양육하라”고 권고합니다.
자녀를 격노(激怒)케 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회초리와 훈계로 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모의 성냄입니다.
‘주 안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는 필요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훈계함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녀를 한 인격으로 대하고, 그들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일입니다.

3
자녀로서 우리는 주 안에서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고 그 징계를 잘 받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을 사신 예수님의 예에서 육신의 부모와 영의 부모에 대한 순종(順從)과 공경(恭敬)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모친 마리아의 말씀을 들으심과 십자가상에서 고통을 받는 가운데도 모친 마리아를 한 제자에게 부탁하는 것과, 영의 아버지인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시되 죽기까지 순종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은 반항과 반역으로 혼탁되어 있는 현대 사회를 가정에서부터 정화(淨化)하려는 우리의 노력이며 이를 위한 출발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의 올바른 질서확립이 사회 전체를 밝게 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사랑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사랑할 때 자녀는 부모의 은혜와 수고와 사랑을 감사하며 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함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땅의 유업을 얻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이해하여야 할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러나, 우리의 영의 부모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깨달아 알고자 함입니다. 육신의 부모에 대한 순종과 공경에서 영의 부모인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공경의 예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일이나 신앙의 일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참을 올라간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는 참으로 쉽고 순식간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넘어지거나 추락함 없이 쉬임 없고 성실하게 한 단계 한 단계 믿음의 계단을 올라감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을 받기에 합당한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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