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2, 2016

“바울의 관용과 기쁨” (빌립보서 1:12-18)

바울의 관용과 기쁨” (빌립보서 1:12-18)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進步)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信賴)하므로 겂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16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17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純全)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傳播)하느니라.
     18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方道)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1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장 43-44절에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시나무를 심어놓고 거름은커녕 물도 주지 않으면서, 풍성한 포도수확을 거두기를 바란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입니까? 이때는, 아무리주여, 풍성한 포도열매를 거두게 해주십시오!”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잠잠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속으로 미련한 놈아, 바랄 것을 바라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함에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풍성한 포도열매 거두기를 원한다면, 포도나무를 심어놓고 물과 거름을 주면서, “다른 재해(災害) 인해서 나의 바램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해달라 기도해야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기적(奇蹟) 일어납니다. 우리가 수고를 조금 하였는데도 결실을 거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이어야 것입니다.
개인의 사업같으면 사람의 역량에 따라서 결과가 나타날 터인데, 교회는 구성원 사람 사람이 얼마나 협력하여 일치된 마음으로 나가느냐에 따라서 주님의 축복이 달라지고 수확이 달라질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로서, 줄기로서, 때로는 하나님의 농장을 관리하는 농부로서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에 힘쓰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12절: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당한 일이란 다름아니라 로마의 감옥에 갇힌 바된 생활입니다. 사도행전 28 30절에서 보는 바대로 2년동안 가택연금의 상태에 있게 되는데 아마도 로마 시위대 군병들이 집주위를 지켰던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자유함이 그의 복음증거를 막지 못한다고 그는 증거합니다. 오히려 복음의 진보(進步)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중국 문화혁명(文化革命) 이전의 크리스천 인구가 70만이었다고 합니다. 문화혁명기간 중에 종교탄압을 하여 기독교 인구가 말살될 알았는데, 문화혁명 후에 집계된 크리스천의 인구는 오히려 3,000만으로 늘어났습니다.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쭉정이 크리스천들은 박해기간중 없어지고 알곡 크리스천들이 자기 목숨을 내걸고까지 복음을 지키는 삶을 살았기에 복음의 진보(進步) 가운데 있었고 지하교회(地下敎會) 중심으로 더욱 단단한 반석(磐石) 위에 기독교가 구축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목사님, 형편이 좋지 않아서 주님을 증거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제게 시간이 없어서 교회 일을 잘할 없습니다,건강이 허락지 않아서 못합니다,애들 때문에 못합니다,믿지 않는 남편 때문에 못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 허락되지 않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태 13:11-12)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인간의 약삭빠른 지혜와 셈법으로 헤아린다면, 참으로 미련합니다.
그가 모든 학문을 버리고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갇힌 자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삶을 살더라도 궂이 로마에까지 끌려가지 않아도 되었을 사람입니다.
그가 로마시민인고로 무죄 석방을 받을 있었던 터인데, 그가 자청하여 로마로 가기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정에 후회(後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복음이 로마에까지 전파되게 되었다고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당한 불이익(不利益)으로 오히려 주님께 영광이 되었다고 감사하고 기뻐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바울의 미련하고 어리석음을 배워야 것입니다.

13-14절: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안에서 신뢰하므로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몸으로 그를 심문하는 베스도총독과 아그립바왕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도행전 26), 그의 죽음을 확인하러 사람들에게까지 아직 생명이 붙어있을 동안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였다고(신약외경 바울행전)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같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야 것입니다.
이리할 , 우리는 궂이 입을 벌리지 않아도, 어눌(語訥) 말로도 주님을 증거할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유창(流暢)하게 말하고 혀로는 모든 일을 다하는데, 막상 행동으로는 자신만을 위하고 교회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자고 하면 핑계거리를 찾으며 꽁무니를 빼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예수님을 믿어야지!’ 하는 결심(決心) 생기지 않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말과 혀로만 일하는 사람들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교회 영적·숫자적 성장을 원한다면 여러분 사람 사람이 교회의 각종 예배와 모임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매임을 인하여 안에서 신뢰하므로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희생적이고 비겁하지 않은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도 용기를 주어 겁없이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게 만듭니다.
신사참배(神祀參拜) 강요하던 일제의 조선에 대한 기독교 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살아남고 더욱 단단해질 있었던 것은 처세를 잘하던 목사들 때문이 아니요 비굴하게 회색적인 태도를 취하던 교인들 때문도 아니요,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사수하고 증거하던 주기철목사님이라던가 최봉석(권능)목사님 같은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교회와 교인들이 힘을 얻고 그들도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복음과 그들의 믿음을 지킬 있었습니다.

15절이하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데 부류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부류는 좋지못한 동기--, 투기와 분쟁, 다툼, 순전치못함과 외모로 하고, 다른 부류는 좋은 동기--, 착한 뜻과 사랑과 참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15-17절: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傳播)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16절의이들이란 착한 뜻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에 갇힌 자된 바울을 위해서 기도하고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사랑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17절의저들이란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입니다. 본문에서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갇힌 바된 바울을 고소해하고 비난하면서 바울의 사역지에서 영토확장을 노리는 자들의 무리입니다.

그것 봐라. 지가 독불장군 잘난 척하더니 결국은 옥에 갇히지 않았나? 좋은게 좋은 것인데. 크리스천도 세상과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지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이러할 때에도, 주님은 복음이 이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퍼지는 것을 막지 아니하시고 듣는 사람들 가운데서 순전한 자들을 구분하시어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지 못하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비밀입니다.
세상적인 정욕과 이기심으로 구성된 교회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시지만, 가운데 있는 순전한 믿음의 사람까지 일괄적으로 물리치시는 주님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투기와 분쟁과 다툼으로 교회가 갈린다 하더라도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있습니다.
화목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교회가 나뉨을 축복하시진 않지만, 이러한 인간의 미련하고 불의한 갈림을 통해서도 주님의 사업은 확장되며 주님은 영광을 받으실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속에서도 이러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구약의 불의한 왕이나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왕의 행적을 통해서도 주님은 주님의 크신 일을 이루시고 주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셨습니다.
다니엘 이방의 느브갓네살 왕을 통하여, 다리오왕을 통하여 그리하셨고, 파사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도 그리하셨습니다.
그러면, 교회를 가르거나 의롭지 못하게 교인을 쟁탈하는 행위가 주님 안에서 정당화될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회를 가른 것이 인간적인 주장이나 욕심으로 인한 것일 이에 대한 주님의 책망이 있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고자 하시는 뜻은, 하나님은 인간의 미련하고, 불의하고, 불협하는 마음과 행동을 통하여서도 영광을 받으실 있는 권능의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18절: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노라

나를 통하지 않고, 나의 반대자를 통해서 불순한 동기로라도 복음이 전파된다면 이를 놓고도 기뻐하겠다는 바울의 관용입니다. 이것이 현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배워야할 관용의 마음입니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인근의 다른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건전한 성장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고 남의 일일 때에는 배아파합니다.
때로는 급성장하는 교회가 주변에 나타나면, 이단의 요소가 전혀 없는데도 이단 규정을 하려고 들거나 교회의 나와 다름을, 아니 내가 아님을 들어서 비난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전파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면, 교회에 열심이 있어서 복음에 진보가 있는 것이라면, 아니면 갈림과 다툼이 있는 교회를 통해서도 복음이 전파되어나가도록 허락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에 기뻐하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비결과 열심을 배워야 것입니다.

                                                                3
우리의 교회와 가정의 삶을 통해서 복음의 진보가 나타나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심(無心) 가운데 생활할 때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좀더 마음 중심에서 주님과 그의 몸되신 교회를 생각할 때에, 해서 더욱 담대함으로 그를 증거할 기회를 얻고자 때에 주님은 우리를 그의 복음증거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나와 믿음의 색깔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를 통함보다 많은 복음이 증거된다고 하더라도 전파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니 이로 인해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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