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8, 2016

“주 안에서 남편과 아내” (에베소서 5:22-33)

  “주 안에서 남편과 아내” (에베소서 5:22-33)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펴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保養)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1
셰익스피어(Shakespeare, 1564-1616)의 희곡 햄릿(Hamlet)을 보면, “Frailty, thy name is woman! (약한 자여, 너의 이름은 여자로다!)”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그의 부왕이 죽은지 한 달도 채 못되어 모친 게투르드(Getrude)가 부왕을 독살한 그의 숙부 클라우디우스(Claudius) 품에 안기는 것을 보고 절망하여 외친 말입니다. 여기서 ‘약한 자’로 번역된 frailty는 신체적 약함이라기 보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고, 도덕관이나 절개가 허약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단의 대리자인 옛뱀이 먼저 이브에게 접근한 까닭도 여자가 남자보다 더 유혹에 빠지기 쉬웠던 까닭이었습니다. 남자는 먼저 흙을 취해서 만들어 모양에서는 덜 곱고 투박하지만 유혹에는 잘 넘어가지 않는데, 여자는 남자의 귀한 부분이요, 뼈 중에 뼈인 갈비뼈로 만들어서 그 모양은 더 아름답고 섬세하지만 대신에 미혹에 넘어가기 쉬운 단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시되 더 아름답고 좋은 작품으로 만드셨는데 여자는 선악과 한 개로 인하여 그 우위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우위성을 상실할 뿐아니라 일생을 남자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도록 운명지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러한 여자의 실수로 인한 지위의 격하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에서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현대를 사는 여성들이 이 글을 대하면 적지 아니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브와 아담의 타락 후에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내리신 징벌을 보면, 창세기 3장 16절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시고, 3장 17절에서 “아담(=남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절을 비교해보면, 여자에게 내려진 징벌이 남자에게 내려진 것보다 더 큼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함 없이 여전히 에덴동산에 있었더라면 해산의 고통 없이 다른 방법으로 아마도 하나님께 청하여서 원하는 만큼의 자식을 얻을 수 있었을 터인데, 해산의 고통과 함께 자식을 낳게 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처지로 낮추십니다. 해서, 아담과 이브가 낙원으로부터 쫓겨난 후 남자와 여자는 때로는 서로 미워하며 대립하는 관계가 되며, 또 때로는 그러면서도 서로 그리워하며 결합하기를 원하는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그들을 향하신 뜻은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서로 도울 배필이요,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2장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고 말씀하는데 이는 육체적 정신적인 결합을 통하여 그들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 이상의 커다란 창조의 섭리-주님과 하나되는 비밀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2
바울은 5장 22절-6장9절에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유지하는 세 가지 예를 통하여 주님과 성도, 그리스도와 교회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 둘째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 셋째는 상전과 종의 관계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첫 번째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먼저 아내된 자들에게 권면하고, 그 다음에 남편된 자들에게, 그리고 이 남편과 아내의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설명합니다.

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복종하다”(ὑποτάσσω)란 말은 ‘...의 권위(authority) 혹은 명령(command)아래 자신을 두다’는 의미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뜻은 남편의 권위아래 들어가 남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함은 철저히 복종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복종은 노예가 그 주인에게 사랑이 없는 상태에서 두려움의 대상이므로 하는 복종은 아니며, 사랑하기에 남편의 말에 청종하고 행하는 자발적이고 기쁜 복종입니다.

23-24절: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설명할 때 머리와 몸으로 비유합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을 몸된 성도의 연합인 교회가 준행하듯이, 몸된 아내도 범사에서--모든 일에서--가정의 머리된 남편의 뜻과 명령을 잘 받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남편은 머리요 아내는 그 몸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있는 골로새서 3:18-19에서 바울은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함이 주님 안에서 마땅한--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함이 사랑으로 하듯이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함 역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주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26-27절: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 교회를 물로 씻어 회개케 하시고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심으로 영광스런 교회로 세우시며 흠과 티가 없게 하심과 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함으로 이와같이 아내들도 남편들 앞에서 흠과 티가 없고 아름답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발견되어지게 하고자 함입니다.

28절: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되 교회가 흠과 티가 없이 영광스럽고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신 것같이 남편도 아내 사랑할 때 이와 같이 할 것인데 이렇게 하여 아내가 아름답고 거룩하게 되게 하는 것은 남편이 그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아내를 사랑함의 결과이므로 결국은 자기 몸--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29-30절: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육체의 머리와 몸을 구성하여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를 보양하고 양육하는 원리를 우리가 알진대, 한 육체, 한 가정의 머리와 몸의 역할을 감당할 남편과 아내도 서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보완하고 위하여주는 일을 감당할 것은 그 둘이 한 육체로 연합한 까닭입니다. 우리 말에 ‘부부일심동체(夫婦一心同體)’란 말이 있는데 매우 성경적입니다. 부부는 한 마음--같은 생각을 품고 한 육체를 이룹니다.

31-32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나님이 한 남자에게 아내를 허락하시고 한 여자에게 남편을 허락하시어 그 둘이 연합하여 한 육체를 이루게 하심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됨의 비밀을 가르쳐주시고자 함이며, 주님과의 연합한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삶인가를 가르쳐주시고자 함입니다.
바울은 이 연합의 중요성을 고린도전서 6장 6-17절에서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아름답고 거룩한 연합에서 우리는 주님과 연합하는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음란으로 정욕을 따라 연합할 수도 있습니다. 곧, 세상과 짝하여 사는 사람의 삶은 연합은 연합이로되 음란과 정욕으로 인한 연합을 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연합은 주님과의 연합을 알기 위해 우리에게 이 세상 살 동안에 허락되어진 아름다운 연합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같은 고린도전서 7장 1-4절에서 “너희가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연합을 허락하신 것은 그들이 혼자 있음으로 외로와하며 음행에 빠지지 않고, 거룩한 연합의 비밀을 가르치심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심입니다.

미국사회에 독신으로 지내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어떤 사람들은 더욱 정결하고 주님을 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독신으로 지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자유분방하고 다양하게 파트너를 만나고 얽매이지 않는 관계를 갖기 위하여 독신자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결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가 하면, 결혼하는 것도 좋으나 주님의 재림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가까운 때에 혼자 지내는 것이 더욱 좋다고 합니다. 같은 고린도전서 7장 8-10절에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節制)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3세기를 산 위대한 교부신학자 오리겐(Origen, 185-254)은 마태복음 19장 12절에서 예수님께서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하신 말씀에 큰 감동을 받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거세하고 고자가 되어 일생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리스도를 위하는 삶이 꼭 그가 행한 것처럼 고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같은 마태복음 19장 4-6절에서 예수님은 남자와 여자의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창세기 2:24)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정상적인 경우를 말한다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인데, 크리스챤 부부의 가장 중요한 연합의 의미는 이러한 연합을 통하여 주님과 연합함의 크고 놀라운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부의 육체적 연합도 쾌락이 일차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됨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33절: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결혼하여 부부의 예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남편은 아내를 희생적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며 아내는 남편을 복종과 경외의 사랑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남자나 여자 모두 우리의 영원한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의 비밀을 깨달아 알고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하되 우리를 위하여 희생적(犧牲的) 사랑으로 죽으신 주님께 복종(服從)과 경외(敬畏)의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3
성경에 나타난 이 세상을 사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관계를 보면, 복종과 사랑으로 서로 대하라고 하고 아내도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도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자가 좀 손해이요 열등한 입장에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온 우주와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섭리는 남자와 여자에게 차등을 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하게 하신 것은 여자의 범죄함이 남자보다 컸기 때문이며,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게 하심은 남자 또한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징벌에서 자유할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징벌을 내리시되,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신 연고로 그들을 서로 의지하게 하시며 서로 연합하여 위로하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 위에 그리스도의 희생적이고 대속적인 사랑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룩하게 되는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

동일한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는 것도 가하고 하지 않는 것도 가한데, 이왕에 결혼하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과 복종함으로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나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이나 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 살동안에 믿는 사람의 집단인 교회로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비밀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제도입니다.
그 이후에 천국에는 결혼하는 것도 없고,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없고,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분도 없고, 종이나 자주자의 구분도 없이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과 연합한 거룩한 성도만 있을 따름입니다.

현재 결혼관계에 있습니까?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복종하심으로 주님과 연합하는 비밀을 깨달아 아시기 바랍니다. 혼자 지내시는 분이나 아직 미혼이신 교우님들도 이러한 결합을 놓고 기도하심으로서 궁극적으로 주님과 연합함의 크고 놀라운 비밀을 깨달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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