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10, 2026

토지

토지

 

자원(資源)에는 토지(土地), 노동(勞動)과 자본(資本)이 포함된다. 토지는 자연자원이라고도 하며, 노동은 인적자원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토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토지에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수확한다. 토지에 공장을 세워 여러 가지 재화를 생산하기도 하고, 집을 지어 생활하기도 한다. 또한 토지를 사고팔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토지는 생산과 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일 뿐만 아니라 투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에덴동산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신 첫 번째 땅이었다. 창세기 2장 8절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마련하시고 아담을 그곳에 두신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고 말씀한다. 또한 창세기 2장 15절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 땅을 관리할 책임을 맡기신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말씀한다.

최초의 낙원이었던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었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동물과 식물이 있었으며,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들도 풍성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설하시고 복을 주셔서 최초의 인간을 그곳에 살게 하셨을 때, 에덴동산에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이 풍성하게 주어져 있었다. 따라서 처음 에덴동산에서는 자연자원의 부족으로 인한 희소성(稀少性)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하와를 창조하시기 전에 창세기 2장 16–17절에서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께 속한 땅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주셨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한 가지 제한을 제외하고는 동산의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땅에서 살아가는 최초의 인간에게는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땅을 인간에게 맡겨 경작하고 지키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땅에서 나오는 풍성한 열매를 누리도록 허락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는 자리를 잃게 되었다. 창세기 3장 24절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으신 것을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불 칼을 두어 그들이 생명 나무로 다시 나아가는 길을 막으셨다는 점에서,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쫓겨난 후 동쪽 지역에서 살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에덴동산을 떠난 후 정확히 어느 지역에서 살았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과 그들 및 그 자녀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은 자신들이 얻은 소산을 여호와께 제물로 드렸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창 4:3–4).

그러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는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였다. 창세기 4장 16절은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의 동쪽에 정착한 것을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라고 기술하고 있다. 놋 땅이 에덴의 동쪽에 있었다는 사실은 가인이 에덴동산에서 더욱 동쪽으로 멀어져 갔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에덴의 땅을 잃었고, 가인의 경우에는 다시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 앞을 떠나 다른 땅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갈대아인의 우르 땅

대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은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 나갔다. 그들은 여러 민족을 이루어 각자의 땅에 흩어져 살게 되었다(창 10장). 바벨탑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 지면에 더욱 흩으셨다. 창세기 11장 9절은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고 말한다.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는 갈대아인의 우르 땅에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그를 부르셨다. 이 부르심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땅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창 11–12장).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갈대아인의 우르 땅, 곧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있을 때 그를 부르셨다. 창세기 11장 31절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아들 아브람과 며느리 사래, 그리고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하여 갈대아인의 우르 땅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 하란, 곧 오늘날의 튀르키예 지역에 이르러 그곳에 정착하였다(창 11:31).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이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은 하란에서 한동안 멈추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서 이백오 세를 살고 죽었다(창 11:32). 그 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을 떠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났다.

가나안 땅

그 후 하나님은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라함을 다시 부르시며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흔다섯 세에 하란을 떠났다(창 12:4). 그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다(창 12:5–6).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고 해서 그 땅이 곧바로 그의 소유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2:7).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장차 그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다. 하나님은 그 후에도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이 땅에 대한 약속을 거듭 확인해 주셨다(창 12:7; 13:15; 15:7, 18; 17:8; 24:7).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인해 주셨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실제로 소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땅은 그의 아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하여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값을 주고 산 땅이었다. 창세기 23장에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할 매장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막벨라 밭과 그 안에 있는 굴을 구입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창세기 23장 19–20절은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이와 같이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이 헷 족속으로부터 아브라함이 매장할 소유지로 확정되었더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 전체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 자신이 생전에 실제로 소유한 땅은 사라를 장사하기 위하여 구입한 막벨라 밭과 굴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 땅의 대부분을 자신의 소유로 갖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막벨라 밭과 굴은 장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일종의 보증(保證) 또는 계약금(契約金)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아브라함이 소유하게 된 이 작은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더 큰 땅의 성취를 미리 보여 주는 첫 소유지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 곧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것을 포함한 모든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고후 1:22; 엡 1:14).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증이며, 계약금 또는 첫 번째 지불금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4절에서 성령을 “우리 기업의 보증”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집이나 토지를 구입할 때 구매자는 그 부동산을 실제로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기 위하여 계약금이나 보증금을 지불한다. 계약금은 전체 금액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나머지 금액을 지불하여 거래를 완성하겠다는 의사를 보여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업을 장차 온전히 주실 것이라는 보증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자신들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직 그 약속의 땅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 채 그곳에 거주하였다. 이후 야곱과 그의 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먼저 가 있었으며, 그는 이미 애굽에서 바로 다음가는 높은 지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애굽 땅

토지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였다.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야곱은 자신의 아들 요셉이 애굽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야곱에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창세기 46장 2–4절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섬기며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괴롭힌 나라를 심판하시고, 그 후에는 그들이 많은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15:13–14).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이었다. 따라서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포기하신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약속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가더라도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셨으며, 때가 되면 그들의 후손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었다.

요셉을 포함하여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의 가족은 모두 칠십 명이었다(창 46:27). 사도행전 7장 14절에서 스데반은 이들의 수를 칠십오 명이라고 말한다. 요셉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에서 존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 그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애굽을 다스리게 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이스라엘 백성, 곧 히브리인들은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힘든 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들은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고된 일을 해야 했다. 출애굽기 1장 14절은 애굽 사람들이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고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 애굽에서 살아가면서 자유와 약속의 땅을 잃은 채 고된 종살이를 하였다. 출애굽기 12장 40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기간을 사백삼십 년이라고 기록한다. 긴 세월이 흐르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에 대한 기억도 그들 가운데 희미해졌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셨으며,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창 12:7).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과 그들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

다시 가나안 땅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면서 애굽에서 고통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17절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고난에서 구원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떠돌아야 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은 그들 앞에 있었지만,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야 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모세가 죽은 후에는 여호수아가 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으며, 그곳의 여러 성읍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제로 주어지기 시작하였다.

토지의 분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민수기 26장 53–56절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에 따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배하도록 명하시며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토지 분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 나타난다. 먼저 각 지파의 인구 규모를 고려하여 사람이 많은 지파에는 더 많은 기업을 주고, 사람이 적은 지파에는 더 적은 기업을 주도록 하셨다. 따라서 모든 지파에게 똑같은 크기의 토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지파의 인구에 따라 토지의 크기를 다르게 분배하도록 하셨다. 동시에 각 지파가 어느 지역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인지는 제비를 뽑아 결정하도록 하셨다. 따라서 가나안 땅의 분배는 각 지파의 필요, 곧 인구의 규모를 고려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땅을 받을 것인지는 제비뽑기를 통하여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비뽑기는 단순한 우연에 맡기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각 지파에 토지를 공정하게 분배하고, 토지 분배를 둘러싼 지파들 사이의 불평과 분쟁을 줄일 수 있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정복한 후,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원칙에 따라 그 땅을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하였다(수 13:8–19:51). 각 지파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는 일이 끝난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에게도 그들 가운데서 기업을 주었다. 여호수아기 19장 49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니”라고 말씀한다.

한편, 토지를 기업으로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에게도 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읍과 목초지가 주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받은 기업 가운데서 레위인들이 거주할 성읍과 그들의 가축을 위한 목초지를 주도록 명령하셨다(민 35:1–8). 이에 따라 레위의 후손인 고핫 자손과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에게 모두 마흔여덟 개의 성읍과 그 주변의 목초지가 주어졌다(수 21장). 이 가운데 여섯 성읍은 사람을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죽인 사람이 피할 수 있는 도피성으로 정해졌다. 따라서 가나안 땅의 분배에서 레위 지파가 다른 지파들처럼 일정한 지역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토지가 전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도 거주할 성읍과 가축을 기를 목초지를 마련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셨다.

토지의 경작(耕作)

하나님은 레위기 25장 2절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 땅도 안식하게 하도록 명하시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육 년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수 있었지만, 일곱째 해에는 그 땅도 안식하게 해야 했다. 하나님은 또한 레위기 25장 3–4절에서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일곱째 해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밭에 씨를 뿌리거나 포도원을 가꾸어 평상시처럼 농사를 지어서는 안 되었다. 사람에게 안식일이 필요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도 안식이 필요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토지를 계속해서 생산물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되었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일곱째 해마다 그 땅을 쉬게 해야 했다.

하나님은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 해야 하므로,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거두거나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열린 포도를 수확하지 말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셨다(레 25:5). 그러나 안식년 동안 땅에서 자연적으로 난 소출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종과 품꾼과 함께 거류하는 사람들의 먹을 것이 되었다. 또한 그 땅의 가축과 들짐승도 그 소출을 먹을 수 있었다(레 25:6–7). 따라서 안식년은 단순히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을 쉬게 하는 제도만은 아니었다. 땅이 안식하는 동안 자연적으로 생산된 소출은 토지 소유자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계에 속한 사람들과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가축과 들짐승까지 함께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땅에 안식을 주시는 동시에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에게 필요한 양식도 공급하셨다.

토지의 소유권

구약성경에서 모든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권은 하나님께 속한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땅을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땅의 궁극적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출애굽기 9장 29절에서 바로에게 땅의 궁극적인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밝히며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신명기 10장 14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성경의 관점에서 인간의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땅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맡아서 사용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지 소유의 원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안식년과 희년의 토지 제도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토지에 대한 이차적인 소유권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모든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이 받은 토지를 영구적으로 팔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가난해져서 자신의 토지를 팔게 되었을 경우에는 형편이 나아지면 그 땅을 다시 살 수 있었다. 만일 자신이 그 땅을 다시 살 능력이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를 대신하여 그 땅을 되사 주어야 했다. 그러나 본인이나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되살 수 없으면 그 토지는 희년까지 구매자의 소유로 남아 있었다. 희년이 되면 그 땅은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아가고, 그는 다시 자신의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레 25:23–28).

하나님은 레위기 25장 23–2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의 궁극적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시며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토지 소유권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토지를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하고 사용하며 그 소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소유권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하나님이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땅에서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가난 때문에 토지를 잃게 되더라도 그것이 영구적인 토지 상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토지를 되살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마저 불가능할 경우 희년에는 토지가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도록 하셨다. 이러한 제도는 토지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영구적으로 집중되는 것을 제한하고, 하나님께서 각 가문에 주신 기업이 세대를 이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토지의 무르기

하나님은 레위기 25장 24–25절에서 가난으로 인해 기업의 일부를 팔게 된 이스라엘 백성이 그 땅을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원칙을 정하시며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토지를 팔았을 경우,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다시 사서 되찾아 주어야 했다. 이처럼 가난한 친족을 대신하여 팔린 토지를 무르는 가장 가까운 친족을 히브리어로 고엘(גֹּאֵל, gōʾēl), 곧 “무르는 자” 또는 “기업 무를 자”라고 하였다. 고엘은 단순히 토지를 구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가문의 기업을 잃게 된 친족을 대신하여 그 토지를 되사 줌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가문에 주신 기업이 다른 사람에게 영구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토지의 무르기 제도는 가난으로 인해 토지를 잃은 사람과 그의 가계를 보호하고, 하나님께서 각 가문에 주신 기업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였다.

룻기에 등장하는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두 아들과 함께 베들레헴에 살고 있었으나, 그 땅에 기근이 들자 모압 지방으로 가서 거류하였다. 모압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도 모압 여인들과 결혼한 후 모두 죽었다. 그 후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나오미에게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가까운 친족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기업을 무르기를 거절하자, 그다음으로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기로 하였다(룻 4장). 보아스는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속했던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고, 말론의 아내였던 룻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 죽은 사람의 이름이 그의 기업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이로써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의 기업을 무르는 자, 곧 고엘(גֹּאֵל, gōʾēl)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아스의 고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보아스가 가까운 친족으로서 나오미와 룻에게 다가가 잃어버린 기업을 무르고 그 가문을 회복시켜 주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구속자(救贖者)가 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아스가 잃어버린 기업을 무른 사건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이 잃어버린 기업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회복하시는 구속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이해할 수 있다. 보아스가 값을 지불하여 기업을 무르고 룻을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였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써 죄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사람들로 받아 주셨다.

예수님은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신다(요 12:31; 16:11). 이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이 세상에서 사탄이 일정한 권세를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바울도 사탄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부른다(엡 2:2). 그러나 사탄의 권세는 절대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제한된 권세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서 그리스도인의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강조하며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다. 또한 디도서 2장 14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속량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음을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고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불법에서 속량하셨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며, 그 값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자신의 생명이었다.

앞에서 살펴본 토지의 무르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은 고엘(גֹּאֵל, gōʾēl)의 역할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생명과 에덴의 기업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과 기업을 회복시키시는 우리의 구속자, 곧 참된 고엘이 되신다.

이상에서 논의한 토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의 부동산 소유와 투자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성경은 개인의 토지 소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레 25:23)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자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소유권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위탁된 소유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주택이나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투자하는 것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그 소유와 투자가 절대적인 권리라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부동산 투자를 통하여 재산을 형성하고 수익을 얻는 것도 정당한 경제활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더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더 높은 수익을 얻는 것만이 투자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다른 사람의 어려운 형편을 이용하여 지나친 이익을 얻거나, 투기적인 거래로 가격 상승만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의 기본적인 주거 필요를 외면하는 것은 이웃 사랑과 청지기적 책임이라는 성경의 원리에 비추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레위기의 안식년과 토지 무르기 제도는 고대 이스라엘에 주어진 제도이므로 오늘날의 부동산 시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토지의 사용과 소유에는 개인의 이익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는 원리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투자할 때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가?”만을 질문해서는 안 된다. 그 재산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정직하고 공정하게 취득하고 관리하며, 자신의 가족을 돌보는 동시에 이웃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성경적 관점에서 부동산 소유와 투자의 핵심은 소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토지와 재산을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관리하고 사용하는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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