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11, 2026

양식

양식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

사람들은 왜 돈을 버는가? 먹을 것을 사고, 옷을 입으며, 살아갈 집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번다. 사람은 누구도 먹을 것 없이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양식은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시작부터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생물에게도 먹을 것을 주셨다.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과 모든 생물에게 주신 먹을 것은 고기가 아니라 푸른 식물이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9–30절에서 인간과 모든 생명체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분으로서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창조의 처음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먹을 것으로 주셨으며, 다른 생물에게도 푸른 풀을 먹을 것으로 주셨다.

그러나 대홍수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심으로써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를 넓혀 주셨다. 창세기 9장 3–4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생명 되는 피와 함께 고기를 먹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기를 피째 먹지 말라는 명령은 인간이 생명의 주인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그 주인이심을 인정하도록 하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광야를 행진할 때 먹을 것이 떨어지자,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불평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6장 12절에서 모세에게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도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셨다.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어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 그들을 배부르게 하셨다.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은 레위기 11장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음식에 관한 규례를 주시고, 무엇을 먹을 수 있으며 무엇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은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을 구별하시고, 자신의 백성이 정결한 것으로 구별된 음식만을 먹도록 하셨다. 이러한 음식 규례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의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위생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스콧 멍거(Scott Munger)는 양식(糧食)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 주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고 지적한다.[1] 신명기 8장 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이신 목적을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주리게 하신 후 만나를 먹이신 것은 그들에게 육신의 양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은 먹을 것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육신의 양식만으로 살아가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의 생명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신을 위한 양식을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우리의 영을 위한 영적인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도 공급하신다. 육신이 살아가기 위해 매일 양식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삶도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한다.

생명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이사야 55장 1–2절에서 모든 목마른 사람을 생명의 근원이 되는 물로 초청하시며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오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과 마실 것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며,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기꺼이 공급해 주시는 분이다. 이사야의 말씀은 단순히 육신을 위한 음식과 음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없고 인간의 수고만으로 얻을 수 없는 참된 만족과 생명을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얻기 위해 돈과 수고를 사용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에게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참된 양식과 생명을 값없이 베풀어 주신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하나님께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도록 하셨다(마 6:11; 참조 눅 11:3). 우리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매일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양식보다 더 중요한 영원한 생명을 위한 양식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라고 선포하신다. 요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어 35절에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밝히시며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48–51절에서도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임을 선포하시며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주어 그들의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셨다면, 이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심으로써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위한 참된 양식도 주시는 분이다.

마태복음 14장 13–21절, 마가복음 6장 30–44절, 누가복음 9장 10–17절과 요한복음 6장 1–13절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들과 어린이들 외에 오천 명을 먹이셨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은 후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마태복음 15장 32-39절과 마가복음 8장 1-10절에 기록된 것 같이, 또 다른 때에는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마가복음 8장 1-10절에는 떡 일곱 개만으로) 여자들과 어린이들 외에 사천 명을 먹이셨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은 후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었더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온 사람들을 먹이셨다. 이 세상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희소하지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충분히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오병이어(五餠二魚)와 칠병이어(七餅二魚)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을 풍성하게 먹이시는 ‘하나님의 경제’를 잘 보여 준다.

양식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31절에서 다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계에 속한 백성이 될 때, 하나님은 그 가계의 주인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신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미 알고 계신다(마 6:32).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고 먹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가계를 다스리시는 매우 중요한 통치 활동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경제’를 이루는 중요한 활동이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하셨으며,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온 사람들을 먹이셨다. 이처럼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일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계속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경제’의 중요한 모습이다.

음식 규례에 관한 논쟁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이방인들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유대인의 음식 규례(레 11장)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지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다른 생활 방식과 음식 규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하나의 신앙 공동체를 이루는 데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유대인의 음식 규례를 지키지 않았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결정이 필요하였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예수님의 형제이며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권고할 것을 제안하였다(행 15:20). 예루살렘 회의는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방인 신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고 결정하였다(행 15:29). 이 결정에 따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의 모든 음식 규례를 그대로 지킬 의무를 지지는 않았지만,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도록 요구받았다. 이러한 결정은 서로 다른 음식 전통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가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침이 되었다.

부정(不淨)한 음식과 이방인들

베드로는 사도행전 10장에서 기도하던 중 비몽사몽간에 세 번에 걸쳐 같은 환상을 보았다.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이 들어 있었다. 그때 한 음성이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라고 말씀하였다(행 10:13).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행 10:14). 그때 다시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려왔다(행 10:15).

이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보자기는 곧 하늘로 올려졌다(행 10:16). 베드로가 환상에서 본 보자기 속의 부정(不淨)한 음식은 단순히 음식에 관한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10장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이 환상은 이방인들, 특히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사실을 베드로에게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베드로 자신도 그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라고 말한다. 이 사건은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그들을 기독교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사람을 더 이상 부정하다고 여겨서는 안 되었다. 이로써 복음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더욱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祭物)

예루살렘 회의에서 내린 결정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말도록 요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시장에서 판매되는 고기 가운데 어떤 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일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이 혹시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죄책감을 가지고 먹기도 하였다(롬 14:23; 고전 8:7). 특히 우상 숭배의 배경을 가지고 있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여전히 양심의 거리낌을 느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7절에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 말한다(개역개정). 따라서 음식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믿음과 양심도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음식 문제로 양심의 어려움을 겪는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이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17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을 먹고 마시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시장에서 구입한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먹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음식을 먹는 것이 믿음이 약한 다른 그리스도인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그 사람을 배려하여 자신의 자유를 절제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4장 21절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하여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 음식 문제에 관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에게 어떤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유의 행사가 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를 실족하게 한다면 사랑으로 그 자유를 기꺼이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받아 주신 형제자매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다.

성찬(聖餐)의 음식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에서 떡을 가지사 감사 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다(눅 22:19; 고전 11:24). 또한 식사 후에 잔을 가지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 22:20; 고전 11:25).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고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흘리신 피를 가리키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기억하게 한다. 따라서 성찬은 단순히 함께 음식을 먹고 마시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를 통하여 주어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신앙의 행위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양식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양식은 단순히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먹을 것을 주셨고, 광야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고기를 공급하셨으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가르치셨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의 양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보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감사하며,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되 물질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탐욕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양식은 육체를 위한 음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육체적 필요뿐 아니라 영적인 필요도 있으며,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인간의 삶이 온전해질 수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음식에 관한 자신의 자유를 행사할 때에도 다른 사람의 믿음과 양심을 배려해야 한다.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양식의 경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양식에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고, 물질적인 양식을 넘어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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