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사람을 강건케 하시고” (에베소서 3:14-21)
3: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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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신학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기독교를 소망의 종교 혹은 기쁨의 종교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는 소망이, 기쁨이 넘쳐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 18절에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예를 들면서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했습니다. 이를 “hope against hope"이라고 표현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소망이 전혀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예상을 초월(超越)하시며 모든 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 할레스비(O. Hallesby)는 그의 기도(Prayer)라고 하는 책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절박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해서도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어왔다고 생각하는 교인은 “그러면 교회에 다니는 유익은 무엇이며 주님을 믿는 까닭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이 주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신 예를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3-15절에서 아벨을 죽인 가인이 자신이 죽임당할 것이 두려워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을 만홀(漫忽)히 여기던 가인까지도 보호하시겠다고 응답하십니다.
요나서 1장 14-16절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 선원들이 요나 까닭에 대풍이 그들에게 임한 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시며 그들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며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요나서 3장 4-10절에서 악독이 가득 넘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할 때, 니느웨 백성은 낮은 자에서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굵은 베를 입고 금식을 선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실 뿐아니라 그들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누가복음 23장 39-43절에 기록된 대로, 일생동안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던,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가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아뢸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강도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영원한 행복이 있는 낙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어떤 분들은 아직 교회에 나오기 전, 아직 믿음이 없을 때 절박한 일로 하나님께 간구를 드린 경험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믿지 않는 자의 기도는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와 그의 고유의 권한 가운데 그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혹”(perhaps)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확실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드려지는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2-3절에서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23-24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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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5절이하에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갖게 하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며, 마음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며 장차 그들을 살리실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이 무엇인지 알게 해달라”(1:15-19)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능력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 또 몇 가지로 간구드립니다.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시며, 그리스도께서 그들 마음 가운데 거하시며,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그들 믿음의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며, 무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며,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한없는 사랑이 그들 가운데 더욱더 충만케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14-15절: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성도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하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나 해와 달과 별들, 공중의 새들과, 지상의 사람들, 짐승들과 나무들과 풀들과, 바다속의 물고기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며 해서 이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무릎을 꿇고 비노니”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때로는 서서 기도하며, 때로는 엎드려 기도하며, 때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엎드려 기도함”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자복(自服)하는 자세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함”은 기도를 드림에 간절함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서 6장 10-11절에 보면 다니엘이 그의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그의 조국과 동족을 위해서 기도드릴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간구하고 감사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사랑하여서 그들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 천지만물의 주인되시며 아버지되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이 잘 표현되어있습니다.
16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ἔσω ἄνθρωπος=inner man)을 강건하게 하옵시며
사람에게 영이 다스리시는 속사람과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지배하는 겉사람(ἔξω ἄνθρωπος=outer man)이 있습니다. 이 겉사람에 육신까지 포함시키기도 하고 위치만-니같은 분은 육신을 바깥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속사람에 대해서 바울은 로마서 7장 22-23절에서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을 지배하는 두 가지 법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법이요 또 다른 하나는 죄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아래 놓이기를 원하는데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지배를 받는 지체(肢體)라고 표현된 겉사람은 죄의 법아래 놓여있고 사단의 유혹으로 나를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겉사람의 역사만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마음 중심에서 주님을 나의 삶에 주인으로 온전히 모시기 전까지는 나의 속사람이 거의 대부분 나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의 겉사람에게 지배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는 원하지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나의 속사람을 다스리시는 성령께 나를 내어맡기고 그 성령께서 나의 겉사람까지 주장해달라고 간구할 때 그래서 나의 겉사람을 죽이는 노력을 하기로 결심하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바울이 말씀하는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하는 고백을 날마다 생활 가운데 할 때 비로소 나는 속사람뿐아니라 겉사람까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바울은 이러한 과정을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 표현합니다.
베드로는 바울의 이 속사람을 베드로전서 3장 4절에서 “마음에 숨은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갚진 것이니라”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through the Holy Spirit)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강건하게 해달라고 간구드리는데, 이는 성도의 속사람은 오직 성령의 다스리심에 놓인 까닭입니다.
이 속사람이 성령을 통하여 강건하여 진 사람은 그의 주장과 생각을 성령께 양보함으로써 겉사람--성품--까지 변화되어지는 성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말씀을 사모함과 하나님과 기도로 깊은 교제를 가짐으로써 가능합니다.
17절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17절 전반에 이 속사람을 위한 기도가 이어지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곧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성도들의 마음에 계시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속사람에 살리는 영으로서 들어오신 성령-그리스도의 영-께서는 우리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시며 우리 속사람을 강겅케 하시기를 원하시는데 이의 원동력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드릴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거하시며 우리의 속사람을 강건케 하십니다.
17절후반부터 19절까지의 세 가지 기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관한 간구입니다.
17절하: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우리의 믿음의 뿌리가 박히고 믿음의 바탕위에 세워진 교회의 터가 굳어짐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인간의 주장과 생각과 이익을 위한 믿음이라면 이는 뿌리가 얕을 것이며 또한 터가 굳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성도의 속사람이 강건하여지고 신앙의 뿌리가 깊어지고 이러한 성도의 모임인 교회의 터가 더욱 굳어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知識)은 말씀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경험을 통하여서 얻어집니다.
19절: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간구하노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되,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간구하는바와 같이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의 차원(dimension)이 어떠합니까?
옛계명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요한복음 13장 34절(15장 12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실 때,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옛계명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을 조금 떼어서 나누어주는 사랑인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인 예수님의 사랑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라는 말씀 속에 들어있듯이 나의 것을 조금 떼어주는 사랑이 아니라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아낌없이 다 주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측량할 길 없는 그리스도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사랑의 다함없음을 깨달아, “모든 것을 내어주되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바울은 하나님께 간구하되,
“하나님 사랑의 충만한 것으로 에베소 성도들의 사랑을 더욱 더 충만케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다함없이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설명하실 때,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20-21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20-21절에서 바울은 성도의 간구하는 바 모든 것을 들으시되 풍성하게 들어주시고 넘치도록 이루시는 주님의 능력과 영광을 찬미합니다.
20절에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십니다.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관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합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능력이 많으시며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간구함에 귀기울이시며 우리가 구한 것보다도 더 풍성한 것으로 공급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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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한 것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우리가 사랑해야 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매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을 통하여서 속사람이 강건하여지기를 구하되, 이 속사람을 다스리시는 성령님께서 속사람뿐아니라 우리의 겉사람도 다스리시고 변화시키심으로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해달라고 간구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우리 믿음의 뿌리가 깊어지며 믿음의 반석위에 세워진 우리의 교회의 터가 더욱 굳어지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어떠함을 깨달아 알아서 더욱 더 우리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나타나고 더욱 더 풍성하게 채워지기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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