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8, 2016

“바울의 이방인 사역” (에베소서 3:7-13)


“바울의 이방인 사역” (에베소서 3:7-13)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1 
그리스도의 신앙공동체 안에서 사는 우리들은 새들의 생태(生態)에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조류학자의 관찰입니다. 철새 기러기들이 이동하기 위하여 하늘을 날 때 역(逆) V자를 그리며 납니다. 이 대열 속에서 각각의 새가 날개를 저으면 그것은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새를 위해 상승기류를 만들어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체 기러기 무리는 혼자 날 때보다 최소한 70% 이상의 더 먼 거리를 더 빠르게 날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마리의 기러기가 V자 대열에서 이탈하는 순간 그는 더 큰 대기의 저항을 느끼게 되며 해서 재빨리 대열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대열의 맨 앞에서 날아가는 기러기가 지치면 뒤쪽으로 물러가고 이내 다른 기러기가 앞장을 섭니다.
뒤쪽의 기러기들은 앞서가는 기러기들이 속도를 유지하고 그들의 힘을 북돋우기 위해 계속해서 울음소리를 냅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의 울음은 곧 격려의 메시지라는 뜻입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병에 걸리거나 사냥꾼의 총에 부상을 입어 대열에서 낙오되면 두 마리의 다른 기러기들이 그 기러기가 지상에 내려갈 때까지 함께 동행하여 도와주고 보호해줍니다.
두 마리의 기러기는 낙오된 기러기가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함께 머뭅니다. 그런 다음에야 두 마리(혹은 세 마리)의 기러기는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기러기들의 대열을 따라잡아 합류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인생의 여정을 살아감을 자전거타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의 패달 밟는 일을 중단할 때 자전거가 쓰러지는 것같이 인생에서 삶의 동작을 중단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인생을 살고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나는 혼자 일인승 자전거의 패달을 밟으며 나의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평탄한 길이나 내리막길을 갈 때는 별 어려움 없이 잘 달립니다. 그러나 오르막길을 오르기는 참으로 힘에 벅찹니다. 장시간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는 평지길도 힘에 버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교회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이제 일인승 자전거가 아니라 이인승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그리스도로 뒤에서 패달을 밟게하고 나는 앞에서 핸들을 조정하며 패달을 밟고 달립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바라는 것은 단지 나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 나를 도와달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내가 알아서 내 길을 갈테니까 주님은 단지 나를 도와 패달을 열심히 밟아주시고 해서 내가 나를 위해서 정한 목적을 이루게 해주세요’ 하고 명령에 가까운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나를 도와 묵묵히 패달을 밟아주시던 그분이 나보다 더 강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갈 바를 잘 아심을 깨달은 사람은-우리는 이 사람을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기꺼이 그리스도께 앞자리를 양보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뒷자리에서 패달을 밟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 앞자리로 옮겨 앉으신 그리스도께 목적지까지 잘 인도하여 달라고 요청(要請)합니다.
내가 핸들을 잡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알고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주님께서 핸들을 잡으신 다음에는 나는 때로 그분이 왜 이길로 자전거를 몰고가시나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님은 짓궂으셔서 때로는 가파른 산길과 돌투성이의 자갈길로 자전거를 몰고가십니다. 그리고 무서워서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뒤돌아보며 한눈을 찡끗 하십니다. 주님은 자전거 타기의 명수이십니다. 처음에는 주님의 자전거 타는 솜씨가 어떤지 몰라 불안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이제 주님이 핸들을 몰고 가시는 그 길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나 혼자라면 엄두도 못낼 험한 산길을 주님과 함께 힘차게 패달을 밟으며 그 산길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가 내게 생깁니다.
뒷 자리에서 패달을 밟는 내가 이 길은 불가능하다고 느낄 때도, 이제는 지쳐서 도저히 더 나갈 수 없다고 판단할 때도 주님은 미소를 지으시며 ‘힘들면 패달 밟는 일을 조금 쉬어도 좋아. 내가 네 몫까지 할테니까’ 하시며 힘차게 패달을 밟으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강하고 믿음직스런 분이십니다.

2
7절: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이 복음을 위하여”에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인간 가운데 육신의 몸으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모든 이방인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일군이 된 것이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심이요 은혜의 선물을 따라 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파케 함이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신다는 증거란 뜻입니다.
또한 나같이 모자라는 사람을 그래도 사랑하셔서 사용하심이 주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기에 감사하게 됩니다.

여기에 일군이라 번역된 헬라어는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로서 여기에서 집사(deacon)란 말이 나오고, 목사(minister)란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집사나 목사나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과 평신도들은 주님의 일군인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까닭에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고 하게 하신 것이므로 우리는 교회봉사를 함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8-9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을 맡은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말합니다.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강당케 하십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히어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자를 사용치 않으시고 나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자를 사용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큰 일을 이루십니다.
이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고백하는 바울을 들어 이방의 사도로 삼으시고 그를 사용하셔서   그리스도를 통한 풍성한 은혜를 이방인들에게 전파케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복된 풍성한 은혜를 이방 가운데 주시는지 그 은혜와 비밀의 경륜을 이방인들에게도 알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할수만 있으면 모든 인간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곧 인간 구원계획입니다.

10-11절: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政事)와 권세(權勢)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각종 지혜-은 전에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에게 알려졌던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은 아마도 천사들과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의 세력까지 포함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것인데, 교회에 먼저 알려진 다음에 교회를 통하여 그들에게까지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을 사랑하실 때 우리는 천사들보다도 더 하나님가까이에 있고 하나님의 비밀을 천사들보다도 먼저 듣는 존재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인간구원계획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인간으로 낙원에서 영원히 살게 하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옛뱀의 유혹으로 타락할 때 지체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계획을 마련하여 놓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고 그가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1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구원계획 가운데 우리는 오직 우리의 길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에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은 오직 두려운 존재요 심판의 하나님이셨는데, 그리스도를 믿을 때 나에게는 담대함이 생기며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5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때를 따라 들어갈 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지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담대함을 얻어 당당하게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간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히브리서기자는 10장 19-2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로 담대함과 당당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고 우리의 빌 바를 하나님께 아뢰게 합니다.

13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이 비록 갇힌 몸의 상태이지만 바울은 기쁨이 넘칩니다. 그가 당한 모든 수고와 환난과 매맞음과 옥에 갇힘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계획을 전파함으로 이방인들도 하나님과의 화목에 이르고 구원받게 함일진데 이 어찌 감사꺼리가 아니요 찬양이 아니겠습니까?
에베소 성도들이 낙심할 일이 전혀 아니란 말씀입니다.

오히려 이러하므로 에베소 성도들에게 영광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옥에 갇히기까지의 전도와 수고로 인하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됩니다.

3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일군됨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보잘 것 없는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므로 그리스도를 전파함에 이를 무한한 감사와 감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여러분을 일군삼으심에 감격이 있습니까?
바라기는 바울의 감격과 감사와 찬양이 여러분 삶 가운데도 풍성히 넘치고 해서 주님 뜻대로 사용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