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6, 2013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누가 19:1-10)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누가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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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내를 한눈에 잘 보기 위하여 엠파이어 스태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에 올라갑니다. 시카고 시내의 전경을 보기 위하여는 시얼스 빌딩(Sears Building)에 올라갑니다. 서울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보기 위하여는 남산 타우어에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어떤 경관이나 경치를 더 잘 보기 위하여 높은 곳에 오르거나 더 가까이 가고자 합니다.
오래전에 저의 가족과 일주일간 아리조나(Arizona), 네바다(Nevada), 유타(Utah)와 캘리포니아(California)의 네 주를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경치와 다른 볼 거리등을 구경하였습니다. 자연의 장관들과 신비 등을 더 잘보기 위하여 때로는 높은 곳에 오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이 가기도 하였습니다.
아리조나에서는 세도나(Sedona)에 있는 자연의 바위 위에 세워진 채플(Chapel of the Holy Cross)이 장관이었고, 플랙스태프(Flagstaff)에서 40번을 타고 동쪽으로 35마일에 떨어져있는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자리인 메티오 크래이터(Meteor Crater)를 보기 위하여 달려갔습니다. 또한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을 감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오묘함을 느꼈습니다.

유타의 브라이스 캐년(Bryce Canyon) 역시 그랜드 캐년(Grand Canyon)에 못지 않게 자연 창조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솔트 레이크 시티(Salt Lake City)의 몰몬교 행정건물(Administration Building) 옥상 위에서 내려다본 몰몬 사원과 그 주변 건물들이 있는 시가지는 참으로 잘 정돈되어있고 아름답다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사원 안과 주변에서 몰몬교 안내원들의 친절과 웃음은 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테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Forest Park) 역시 그 경치가 그랜드 캐년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화씨 70-80도의 초여름의 기온인데도 해발 9500피트(2850미터) 위에 위치한 호수는 여전히 얼음이 얼어있었으며 산들은 눈이 덮여 있었습니다. 요세미테 골짜기(Yosemite Valley)에 있는 두 거대한 폭포는 물보라를 흩날리며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요세미테 폭포(Yosemite Falls)라고 불리는 폭포는 그 폭포의 높이가 700미터에 이른다고 합니다. 샌디에고(San Diego)의 해변에서 넓은 태평양(Pacific Ocean)을 바라다 보면서는 그 건너편 저 멀리에 있을 한국 땅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자연경치의 장관과 신비를 보기 위하여 때로는 더 가까이, 때로는 더 높이 오르고, 때로는 더 멀리 운전하여 가보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도 맑은 날씨가 계속되어서 보고자 하는 것들을 잘 볼 수가 있었는데, 만일 짙은 안개가 끼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높이 오르고, 아무리 가까이 가더라도 우리의 보고자 하는 바를 밝히 볼 수 없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주님의 모습을 더 잘 보기 위하여 때로는 높은 곳으로 오르고 때로는 주님께로 더 가까이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서 의심의 안개가 걷혀져야 할 것이며 근심의 구름이 사라짐으로 우리의 영의 눈이 밝히 떠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가 보기 원하고 경험하기를 원하는 주님을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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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누가는 18장에서 몇 명의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18장 9-14절에 바리새인과 세리가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갔을 때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세리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18장 15-17절에서 예수님은 어린아이가 그에게로 오고자 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18장 18-30절에서는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영생에 관하여 묻습니다. 18장 35-43절에는 거지 소경이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는 18장에 나오는 네 사람--세리, 어린아이, 부자와 거지 소경의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세리장으로서 그 당시 로마인과 유대인들 모두로부터 멸시 당하고, 특별히 유대인들에게는 동족을 팔아먹는 죄인처럼 여겨집니다.
예수님을 더 잘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간 그는 또 많은 재산을 소유한 부자였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영의 눈이 가려져 진리를 볼 수 없고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1절: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예수님께서 그의 때가 이르매 고난 당하시고 죽기 위하여 갈릴리를 출발하시어 사마리아를 지나 여리고 지방으로 내려오십니다. 이 여리고는 1,400여 년 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두 정탐군을 미리 보내어 사정을 알아보았던 곳입니다. 그 당시 이 지방에 살고 있던 라합이라는 창기는 믿음으로 정탐꾼을 숨겨주고 그로 인해 이방인이지만 구원을 얻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2절: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이 여리고에 지금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살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원래 “의로운 자”란 의미인데, 그 의미 대신에 동족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으며 싫어버린 바 된 그입니다.

3-4절: “저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도 여느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하나같이 메시아를 고대하는 기다림이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갈릴리 나사렛의 목수의 아들 예수란 사람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도 하며, 그가 지금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위하여 올라오는 길인데, 이곳 여리고를 지나갈 것이라고 합니다.
소문대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따르는 무리들과 구경나온 사람들의 행렬과 더불어 마을로 점점 가까이 다가오나 삭개오는 키가 작아 제자들과 무리들에 쌓여 걸어오고 계신 예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생각하다 못하여 예수님을 똑똑히 살펴보고 그가 과연 참으로 그가 기다리던 메시아이신가 알아보고자 뽕나무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합니다.
                                                    
“보고자 하되”의 헬라어 동사 “제이테오”(ζητέω)는 “구하여 찾는다, 살핀다, 추구한다”(seek, look for, search)는 뜻입니다.

뽕나무 위에 올라가 보니 예수님의 행렬이 다가오는 것이 보이고 그 행렬은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그 뽕나무 밑에 오자 멈춰 섰습니다.

5절: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우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께서 인자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삭개오는 의아합니다. ‘아니 저 분이 어떻게 처음 보는 나의 으름을 아실까? 저분이야말로 그리스도 이심이 틀림없어.’
예수님이 삭개오를 이름으로 아신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는 나다나엘을 만나기 전에 그가 무화과나무에 앉아 있는 것을 미리 아셨고, 물위를 걸으식 풍랑을 꾸짖어 잠잠케 하시고, 가룟 유다가 그를 팔 것을 미리 아시고, 그가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미리 아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심은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삭개오의 집으로 초대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는 에시아의 권위가 담긴 말씀이며 구원사역의 강권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임하는 구원의 호가실성입니다.

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삭개오는 그를 알아보시는 예수님이 의심할 여지 없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됩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주저함 없이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오고 예수님을 집으로 영접합니다.

7절: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자 수근거립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저 죄인과도 같은 세리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는가? 그가 과연 메시아인가?’
그러나,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심은 당연합니다. 그가 이와 같은 죄인, 멸시받는 자, 낮은 자를 부리기 위하여 오신 까닭입니다.

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눠주겠습니다. 내가 또 다른 사람의 것을 부당하게 취한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삭개오는 메시아를 만나고 구원받은 기쁨을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줌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만난 사람에게 이와 같은 기쁨의 표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인색하고 기쁨이 없는 살아간다면, 이 사람은 아직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은 삭개오와 그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이는 삭개오의 행위가 의로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로마서 4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의로 여기신 바 된 것은 그의 행위로서도 아니요 율법으로서도 아니요 할례로서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하나님 앞에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창 15:6)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와 그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신 것은 삭개오가 아브라함의 자녀, 곧 믿음의 자녀임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믿음이 구원에 이르기에 합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삭개오는 외적으로는 로마인에게 천대 당하고 유대인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불쌍한 죄인이지만, 그의 마음 중심에 메시아를 사모하고 구원받기를 간구할 때, 그로써 메시아를 마음 중심에 영접할 때, 예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그와 그 가정에 구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10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사역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십니다.
우리가 전에는 “잃어버린 자들”(lost ones)이었는데 예수님을 우리 마음 중심에 영접함에 “찾아진 자”(found ones)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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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키가 작음”은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내적 약함입니다.
우리의 평안함이, 세상으로 향하는 지나친 욕심이, 이생에 대한 자랑과 교만이 우리의 내적 장애요인입니다.

“많은 사람”은 주변적 장애요인입니다.
이들로 인하여 우리는 또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현 사회의 물질만능주의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빈곤이,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세상의 많은 유혹이 이러한 주변적 방해물입니다.
이와 같은 내적, 주변적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시며 기쁨의 근원 되시는 그리스도를 영의 눈으로 밝히 바라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체면이나 지위, 그동안의 잘못된 편견일랑 모두 던져 버리고 예수님 앞에 가까이 나가고자 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밝은 영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주저함 없이 우리는 급히 내려와 그를 우리 마음 중심에 영접하고, 삭개오와 같이 변화되고 기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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