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6, 2013

“백부장의 믿음” (누가 7:1-10)

                                                 “백부장의 믿음” (누가 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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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리스트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을 줄 압니다. 쉰들러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나치의 포로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살려내기 위해 한가지 생각을 해냈습니다. 그는 수용소의 독일군 장교에게 뇌물을 주어 유대인들을 자기 공장에서 일을 시키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쉰들러는 유대인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들을 나치의 수용소에서 자기의 공장으로 빼내어 살려냈다는 실화입니다. 전쟁 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유대인들이 쉰들러를 의로운 이방인으로 인정해주고 그의 기념비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쉰들러도 배타적인 유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영접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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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안에도 이렇게 예수님의 마음에 감동을 일으켜 칭찬을 받은 자가 제법 많습니다. 그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고 있는 백부장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주님이 병자를 고쳤다는 소문이 가버나움의 백부장에게 들려 왔습니다. 그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으로부터 이만한 믿음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이 시간에 마음 문을 열고 오늘 본문 말씀 앞에서 스스로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인생 길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 로마 군대 백부장에게도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자기 집의 하인 종이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에서 가버나움으로 파견된 군대의 장교로 “백 명의 지휘관”을 말합니다.
신약에 소개된 대부분의 백부장들은 좋은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책임자도 백부장이었는데 누가복음 23장 47절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을 비롯해 백부장에 대한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이송당할 때 동행하던 백부장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어떤 신앙의 사람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백부장은 사랑이 앞서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2절에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당시의 종들은 짐승 취급도 받지 못하였지만 백부장은 그 하인이 병들어 눕자 안타깝게 여깁니다. 자기 하인의 질병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 왔습니다. 참으로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좋은 인격의 그릇입니다.
그 당시 하인만 무시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유대인이기에 무시를 당할 수 있는데 그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인의 치료를 부탁한 것은 하인을 뜨겁게 사랑을 하였다는 증거입니다.

5절에 보면 백부장이 유대인을 사랑했는데 이는 아가페의 즉 하나님과 같은 이타적인 사랑을 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위해서도 회당을 세우고 이방인이면서 유대인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풀었으며 그들에게 존경받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인종적, 종교적인 편견을 뛰어 넘은 자입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유대인 장로들이 간절히 구하기를 이 백부장에게는 이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즉 은혜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배타적인 유대인들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은 이방인과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신앙의 친구, 동역자가 있는지요? 여기서 백부장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요청에 수긍하여 백부장의 집을 찾아갑니다.

오늘 본문에서 종을 헬라어로는 둘로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7절에서는 이 종을 헬라어 파이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파이스는 어린아이 소년이란 뜻입니다. 백부장은 자기 종을 아들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마음이 곧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입니다. 어떤 연유로 이 집에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종의 신분인 이 하인을 상당히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이 백부장의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는 하늘을 향한 열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가진 것을 인해 사람을 차별하는 교만이 없습니다. 노예로서 가치가 없는 상태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어떤 병인가에 대해서 마태는 중풍병(마8:6)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죽게 되었다고 기록함으로 그의 병이 심각한 상태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끼리끼리 주파수가 맞는 사람만 사귀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탈무드에 장사할 때 물건을 먼저 팔려고 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지금도 그 사랑을 주고 받는 복을 누리시는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백부장은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 간구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사랑이 앞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종을 위해 겸손히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있습니다. 백부장이 장로들을 대신 보냈던 것은 아마도 로마 군인의 신분으로 예수께 다가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신중한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 “주여 내 하인이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자기의 부모나 자신의 문제, 자기 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집의 종, 노예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는 큰 믿음이 아니고서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실로 백부장은 겸손함이 앞서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하루는 많은 분들로부터 존경받는 성 어거스틴에게 제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어찌해야 선생님처럼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 때 어거스틴은 겸손이라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제자들이 둘째는 무엇이냐 물었을 때에 어거스틴은 둘째도 겸손이라 답했답니다. 그럼 세번째는 무엇입니까? 결국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면 겸손해 집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됩니다. 모세의 겸손도 그렇습니다. 나는 부족하다라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이 바울 즉 작은 자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하는 바울이 되었습니다. 마태 11장29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직접 가셔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실려고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주님을 만나기에 부족하다고 표합니다. 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내가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누가18장에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중 누구의 기도를 들었다고 주님은 말하시고 계십니까?

6절에 유대인 장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함께 가실새 백부장은 이 집에 거의 도착을 했을 때쯤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7절에 있는 말씀처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입니다. 자신은 이방인 군인이고 예수께서는 메시야인데 감히 자신이 예수님께 다가 나설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셋째, 백부장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소문을 듣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은 "다만 말씀으로만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말에 대한 권세와 복종을 압니다.

백부장의 이 고백은 예수님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즉 주님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고 믿은 것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나을 줄 믿습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히브리서11:1의 말씀대로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합니다. 말씀만 하시면 공간을 초월하여 나을 줄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영혼까지 깨끗해집니다. 7절 말씀만 (에이페 로고)은 [말씀으로 명령하소서]입니다. 예수께서는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실 때도 모두 명령으로 고치셨습니다. 자신의 하인의 병도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이런 믿음으로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9절에 예수께서 이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겼다고 합니다. 즉, 기대 밖의 놀라움을 표시하십니다. 예수님이 감동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도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께서 과연 네 믿음이 크다고 말씀하실 만한 분이 이 자리에도 계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할 정도로 감동시킨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는 이 부분에 "네 믿은 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는 이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명령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이는 "뒤돌리다, 원래대로"란 뜻입니다. 여기서는 "이미 병이 낳았다"는 말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으로 인해 병들고 죽어가는 종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오늘의 이 사건에도 편견없는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이나 칭찬받는 믿음이 있다면 그 결과 이런 기적을 체험하며 기도 응답을 받습니다. 구약에도 믿음으로 요단강에 법궤를 메고 들어갔더니 강물이 멈추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여리성을 돌았더니 성벽이 무너지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러 가니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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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라고 선포하신 즉시 하인의 병이 깨끗하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런 백부장의 편견없는 사랑과 믿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주님을 감동시켜 칭찬받은 백부장의 믿음이 오늘 우리 모두의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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