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2, 2013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행전 2:1-4)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행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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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성경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주로 하나님의 신이라고 되어 있는데, 신약에서는 성령, 하나님의 영, 하나님 아버지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 아들의 영, 진리의 영, 은혜의 영, 지혜의 영 등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잠언서 8장(22-31절)은 성령을 지혜로 표현하고 있는데, 지혜이신 성령께서 “그가(=여호와께서)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거기 있었고”(27절)라고 표현함으로써 미리부터 계신 지혜의 영--성령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지혜라고 함은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은 깨닫게 하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2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6장 7절에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지 아니하면 보혜사(=성령)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시면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오고, 성령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그들도 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더 큰 일”이란 무엇입니까? 마태 15장 21절이하(또한 마가 7:24이하)에서 가나안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는데 고쳐달라’고 간청할 때, 예수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냉정하게 대답하심으로 냉정하게 그 여인을 물리치십니다. 그 여인이 믿음으로 계속 청원하매, 그 믿음을 보시고 딸을 치료하여 주시지만,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이스라엘 중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몸으로 오셨기에 공간적(지리적)으로 제한을 받으실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제한을 받으셔서, 예수님이 사시던 2,000년 전 팔레스틴 지역에서만 사역하실 수 있었지, 현재를 사는 우리들 각 사람 가운데는 역사하시지 못하십니다.
공간적으로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또 다른 보혜사’(Another Helper) 성령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케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은 시간적으로도 제약을 받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초대교회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영으로 믿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가운데 거하시매 육의 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크고 많은 일들을 우리를 통하여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누구이십니까?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아들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성령은 보혜사(Helper)로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하나님께 간구하시고, 하나님의 심중의 계획과 뜻을 우리로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구약의 기간을 성부하나님의 시대라고 한다면, 구약과 신약의 중간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성자하나님의 시대이며, 그리스도 다음의 신약의 기간은 성령하나님의 시대입니다.
즉, 현재는 하나님께서 영으로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감찰하시는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사십일을 지상에 더 머무르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전 1:4)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려야 할 이유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대로, 첫째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권능을 받기 위함이며, 둘째는 그리함으로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을 살기 위함입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 권능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뒤나미스’(δύναμις)인데, 영어의 다이나마이트(dynamite)가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폭발하는 힘”이 있음을 뜻합니다.
또한 다이나믹(dynamic)--역동적인--항상 개혁하고 변화하는 삶을 추구하게 합니다.
우리의 불신하던 마음이 변하여 믿음의 마음이 되고, 옛 사람의 모습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그 기사와 이적과 치유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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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감람산(Mt. Olive)에서 승천하실 때 500명가량이 이를 지켜 보았는데, 그중에 많은 사람들은 흩어지고, 120명의 제자들이 요한이라고도 하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 오순절날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그들 가운데 임하십니다.

    1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120명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니까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또한 2장 47절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처럼 예배를 드리되 순전함과 열심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왜 고넬료와 그 가정에 강권적으로 역사하시고자 했습니까?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고넬료)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이와 같이 찬송과 기도로 마음이 열리고 준비되어 있는 심령들에게 임하십니다.

성령께서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오순절에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심은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입니다. 오순절(칠칠절)은 레위기 23장 15-16절에 있는 대로, 유월절을 기산점으로 계산합니다. 유월절(踰越節: Passover)은 '초태생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절기로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나 인방에 발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장자의 죽음을 면한 날로서 아빕월(유대인 월력으로 정월) 십사일(금요일) 저녁입니다. 이 유월절에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으로부터 해방됨”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유월절로부터 일주일간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 다음날(아빕월 십육일), 즉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 다음 날로부터 칠 안식일을 채운 다음 날(=주일)입니다. 신약성도의 달력으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로부터 일곱 번째 주일이 오순절--곧,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오순절(五旬節)에 그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께 소제의 새로운 것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 오순절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전통은 1,400여년이 흐른 뒤에서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절기를 맞이하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아 모이고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렸음을 봅니다.
오순절을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 칠칠절은 ‘7’이 7번 있으니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다는 의미인데, 바로 이날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의 강림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에 약속하신 것인데, 그 이전 850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요엘서 2장 28-32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 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과 유다의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둔하여서 말씀을 보기는 보아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을 맞아 각처로부터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를 알게 합니다(행전 2:16-21).

    2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령을 표현함에 “비둘기”라고도 하며, “바람”이라고도 하며, “불”이라고도 합니다. “비둘기”는 성령의 온유하심,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느낄 수 있음, 그리고 “불”은 죄를 태우고 마음을 뜨겁게 하는 성령의 특성입니다. 또한 바람과 불은, 지진과 구름과 함께, 구약에서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알게 하는 표징입니다(왕상 19:11-12).

이 바람같은 소리가 있되, “급하고 강했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의 급박하고 강권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주위를 의식함으로 머뭇거리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추호도 지체함이 없이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고넬료 가정을 방문한 베드로가 동행한 유대인 형제들의 눈을 의식하여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의 식구들과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물세례 줌을 망설이자 성령이 강권적으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 임하시는 성령세례가 있었습니다. 그런 후에야, 베드로는 그들에게 물세례를 주었습니다.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는 한 사람에게만 임하지 아니하고 “온 집에 가득하게” 채워졌습니다. 성령의 큰 바람이 일어날 때 그 바람은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 느끼게 합니다.

    3절: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세례 요한은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말했는데, 이는 불과 같이 뜨거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불은 (불의) 심판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성령의 속성으로서 우리 마음에서 뜨겁게 일어나는 주님께로 향한 열심인데, 이 불은 성령이 강림하신 오순절 날에 비로소 믿는 사람의 마음에 붙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뜨거움으로 나가서 그리스도를 증거함에 열정을 쏟습니다. 불과 같은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더러운 것을 태워버리실 뿐 아니라,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이시고, 우리의 영에 불을 붙여서 주님께로 향한 열심이 타오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불 가운데서 이사야에게,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불은 바람과 함께 하나님의 강림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16-18절에, “제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의 혀”에서 “혀”란 말함을 뜻합니다. 방언을 영어로 “speaks in tongues"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갈라졌다”고 함은 여러 혀들-방언들-로 말함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에서 하나님을 교만한 지식의 마음으로 알고자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언어를 가르시고 혼잡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그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함이셨는데, 오늘 오순절 날 여러 방언으로 말하게 하심은 모든 나라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역전(逆轉)의 섭리”(God's will of the reverse order)이십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되, 인간의 지식과 논리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능력으로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4절: “저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충만”은 믿는 사람들이 추구하여야 할 상태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도 마음에 평화가 없고 기쁨이 없고 이전의 삶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이, 아니 하나님이란 빽을 등에 업고 더욱 탐욕스럽게 땅에 것을 추구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성령께 자신의 삶을 맡기고자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은 우리의 교만한 자아는 죽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온전히 우리를 주장하는 삶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매일 매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매, 오순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천하 각국으로부터 모여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방의 말로 제자들의 증거하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행전 2:5-11). 성령이 모여서 기도하던 무리에게 강림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아는 선배 목사님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선교를 위한 집회가 열리는데, 참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 표까지 사주시며 오라고 하시기에, ‘덕분에 영국 구경을 할 기회가 생겼구나’ 속으로 기뻐하며 들뜬 마음으로 영국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쯤인가 남겨놓고 선배 목사님이 말씀하길, ‘이번에 최목사가 와서 동시통역을 맡아주어야 되겠어’라고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미국에서 오랜동안 공부하고 살아왔으니까 영어에 관한 한 도사가 되어 있는 줄 아셨던 모양입니다. 이제까지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한 적은 몇 번 있지만,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한 경험은 없었기에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출발 일정이 잡히어 있고 비행기 표도 마련되어 있고 마음도 들떠 있었는데, 못 맡는다고 할 수도 없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비행기 안에서, 또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번 선교집회에서 동시통역을 맡게 되었는데, 제발 통역의 은사를 허락하시어 은혜로운 집회가 되게하여 주십시오. 저 때문에 집회가 망쳐지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선교집회에는 영국 목사님들, 한국 목사님들과 직분자들을 포함하여 40여명쯤 참석하고, 새벽부터 밤중까지 하루에 4번의 모임으로 5일간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는 하였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웠습니다. 첫 번째 집회시간에 긴장된 마음으로 통역에 임했는데, 놀랍게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는)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보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일이 더 쉽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집회를 위하여 제게 ‘통역의 은사’(gift of interpretation)를 허락하신 것으로 믿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하게” 허락하심은 복음의 말씀이 증거되어지게 하시는 주님의 뜻임을 절실히 깨달은 집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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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바람과 불 가운데 우리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성령이 바람같이 불어치심으로 온 교회에 속한 성도들로 그분을 경험케 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이 불길을 일으키심으로서 우리의 죄와 허물의 더러운 것을 태우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증인 삼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즉시 베드로와 제자들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속사정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아니고는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은 또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경륜과 비밀을 알게 하심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간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온전히 주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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