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6, 2013

“예수님의 전도훈련” (누가 10:1-20)

                                                 “예수님의 전도훈련” (누가 10:1-20)

                                                                          1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요, 교회를 벗어나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전도라고 할 것입니다.
전도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는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메색 도상에서 빛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이 강조한 것은 무엇입니까?
전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이 이렇게 큰데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의 유언적인 말인 디모데후서 4장 2절에서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전도함은 크리스천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인 것을 강조하는데,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바울에게만 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입술을 닫아두고 있는 사람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때는 과묵한 것이 미덕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는 입술을 벌려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도를 잘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전략이나 책자를 사용합니다.
대학생 선교회(CCC=Campus Crusade for Christ)는 4영리라고 하는 소책자를 사용하여 일대일(man to man) 전도를 합니다. 사영리란 네 가지 영적(靈的) 원리로서 제 1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이고, 제 2는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이고, 제 3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은 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이고, 제 4는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입니다. 이 사영리 책자를 전도대상자에게 읽어주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할 의사를 밝히면 그와 함께 영접기도를 해줌으로 끝마치는데 상당히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해서, 실망하거나 위축되기 쉬운데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맡은 자로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할 것이며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안 들이거나 그들의 선택의 몫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듣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복음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사람이 나중에 그가 들은 복음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경우가 허다히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커네티컷 주에 살 때에는 몰몬교에 속한 사람들과 통일교에 속한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짝을 지어 저의 집 문을 두드리고는 하였습니다. 통일교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한국 분들이거나 고등학생 정도의 청년들인데 제가 목사임을 밝힘에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또 문을 두드립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그렇게 문을 두드리다가 그들을 안으로 맞아들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눌라치면 목사라도 통일교도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대화하기를 거절당하여도 기죽지 않고 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나곤 합니다. 우리 기성교회--특히 이민교회 교인들에게 몰몬(Mormon) 교도들이나 통일교에 속한 사람들의 전도의 열정이나 믿음의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1절: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이곳 저곳을 다니시며 기사와 이적을 베푸시기도 하시며 전도의 예를 친히 보이신 후에, 70인 혹은 72인을 택하시고 그들을 각동 각처로 둘씩 파송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전도훈련이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이들 칠십 인에 의하여  전 세계 각처에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기틀이 마련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람씩 파송하신 것은 혼자 전도할 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기가 죽기도 하여 잘 할 수 없는 것을 두 사람이 할 때에는 왠지 용기도 생기고 실패해도 기죽지 않고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서, 다시 힘을 얻어 담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2절: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때에도 그랬고 또한 지금도 추수할 일군들이 많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는 교회가 작기에 일군이 적다고 하는데, 큰 교회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일을 자기 일 같이 감당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간구하되 ‘일군들--전도자들--을 보내어 주소서’라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하나님의 일군 되기를 자청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추수할 때 누구나 다 일군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나이나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할 마음’이 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할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우리를 주장하시며 우리로 하나님의 일을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어보실 때,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대답한 것 같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절: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예수님께서 70인을 파송하시는데 아직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처음 내어보내시는 까닭에 그들이 전도의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지,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할 것인지, 전도를 하다가 해를 당하지는 않을 것인지 염려되시기도 합니다.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라”고 하신 것은 사람의 준비를 갖추지 말고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의존하라는 뜻입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전도의 중차대한 일”을 제쳐놓고 다른 일--문안하는 일이라도--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다른 사람과 노닥거리다가 전도의 일 그 자체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5절: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전도할 집에 들어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전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18절에서 바울은 “그(=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에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                                                   

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6절: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평안할지어다”라고 했을 때 그 집 사람이 평안을 받아들이면 그는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지만, 그가 평안을 거절할 때 그 평안은 전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됩니다.

7절: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전도할 집에 머물며 전도자로서 그 집이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그 주인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8-9절: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영접하는 자와는 교제의 떡을 나누며 병자도 고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준비와 소망을 갖게 합니다.

10-11절: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영접하지 않는 자와는 상종하지 말되 발에 묻은 먼지도 떨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상관이 없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은 전할 것이며, 이리할 때 그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들 것이며 후일에라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12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저 날”이라고 하심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움이 믿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징계의 날이 될 것입니다. 소돔은 그들의 죄악으로 멸망당한 도시이지만 그들의 죄가 그리스도를 영접지 아니하는 동네보다 가볍다는 뜻입니다. 곧 그리스도를 영접지 아니하는 죄가 얼마나 큰지 말씀하심입니다

13-14절: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고라신과 벳새다는 이스라엘의 고을들인데 이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아니할 때 이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가 클 것을 말씀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은 이방인의 지방인데 이들 이방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의 권능이 선포되었다면 이들은 오히려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두로와 시돈은 징계를 면할 수가 있습니다.

15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종종 다니시며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복음을 전한 곳인데, 그곳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때 그들의 결국은 멸망이라는 뜻입니다.

16절: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는 그들을 파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들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이요, 또 이는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7절: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 파송하신 70인이 돌아와 전도보고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일에 놀라고 기뻐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에게 명령하였더니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신나서 보고합니다.

18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미 사단의 권세가 추락한 것을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곳에서 사단이 성도를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는 곳에서 사단이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19절: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그들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모든 사단의 권세를 제어할 권능을 아울러 주셨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의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 우리에게 이러한 권능이 주어집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왜 주어집니까? 우리가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때 우리의 대적을 물리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20절: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러나 우리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은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큰지 하늘에 기록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해서, 우리는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인데, 이것이 하늘나라에서의 우리의 자랑이요 면류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전도는 우리가 해도 그만, 하지도 않아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반드시 행하여야 할 필수사항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녀나, 가까운 친구가 우리와 함께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발견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안타깝겠습니까? 우리의 가까운 사람으로 시작하여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과 영생의 진리를 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랑이요 면류관이요 상급입니다. 전도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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