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어”
언젠가 20명 가까이 목사님과 사모님이 참석한 가운데 목사·사모 수련회를 가진 적이 있다. 순서 중에 목회하는 동안 겪은 어려움과 고통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목회자가 목회 현장에서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실망하는 것은 사람을 ‘너무’ 믿은 까닭”이라고 한 목사님이 말했다. ‘너무’ 믿은 까닭에 그 성도가 기대에 어긋난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그럴 줄 몰랐어!” 하고 실망한다는 것이다. 다른 목사님이 반문한다. “목사가 성도를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목회를 하나?” 맞는 말이다. 목회자가 성도를 믿을 수 없다면 목회 현장은 지옥이리라. 지혜로운 목사님은, “믿었던 성도가 기대에 어긋난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럴 줄 알았어!’ 할 때 목사의 실망과 고통이 작을 것”이라고 답변한다. 수련회에 참석한 모든 목사님과 사모님이 ‘아, 그것이 바른 지혜라’고 동의한다. 그래서 “그럴 줄 알았어!”가 수련회 이틀 간 유행어가 되었다. 그 목사님이 “그럴 줄 알았어” 말하는 뜻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믿되, 그가 실수가 많은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 혹 나의 상식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더라도 그를 이해하려고 하고, 혹 실수나 허물을 범하더라도 용납할 수 있는 여유와 아량을 가지라는 것이다.
목회자만 교인에게 실망하고 고통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도 목회자에게 실망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많은 경우에 교인이 목사에게서 받는 실망이 더 클 것이다. 이는 목사가 교인에게 갖는 기대감보다 교인이 목사에게 갖는 기대감이 더 큰 때문이리라. 그러나, 교인에게도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부르시되, 흠없고 티없는 완벽한 인생 중에서 부르신 것이 아닌 까닭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서 지적하듯이, 주님의 온전하시고 지혜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오히려 약하고 미련한 인생 중에 택하신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실망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람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교회 밖에는 “그럴 줄 몰랐어!” 할 일들이 더 많다. 부모를 난사해서 죽인 ‘메넨데스(Menendez) 형제'의 사건을 듣고 재판을 지켜보며, 미식축구(Pro-football)의 영웅 심슨(O.J. Simpson)의 재판의 결과를 접하며,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두 사람의 뇌물성 비자금 조성 액수가 각각 수천억원을 헤아린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망언을 들으며, “아니, 이럴 수가?” “정말, 그럴 줄 몰랐어” 분노하며 실망한다.
예수님도 인생들을 ‘지나치게’ 믿지 않으셨다. 그를 따라 다니던 수천 명의 무리가 그를 떠난 것에 대해서 실망치 아니하셨고, 그의 12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그를 팔 자임을 알게 되셨을 때에도, “아니, 네가 이럴 수가?” “그럴 줄 몰랐어!” 하지 않으셨다. 그의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가 그를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견하실 때, 그의 연약함까지도 아셨기에, “그럴 줄 알았어!” 하는 마음으로 그를 용납하셨다.
“그럴 줄 알았어!” 함은 신앙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성도들과 목회자를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 세상을 불신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조언이 아니다. 상호 신뢰와 신실함의 바탕 위에서 교회와 사회에 속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되,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도 허물과 실수를 범할 수 있는 나와 같은 연약한 인간임을 깨닫는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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