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브리어로는 '레햄'이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아르토스'라고 하는 떡 혹은 빵은 인간 기본 생존권의 문제입니다. 해서, '먹기 위해서 사냐?' '살기 위해서 먹냐?'하는 말이 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지만, 인간의 모든 욕망 가운데 가장 큰 욕망은 물욕이나 명예욕이 아니라 식욕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빵의 문제'가 인간의 가장 기본 문제일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경제'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나온 것인데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구제하는 이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경제'라는 말--오이코노미아--가 구원이란 뜻으로 사용됩니다.
곧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을 경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인간구원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육적인 구원이요 또다른 하나는 영혼의 구원입니다. 사람들이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사안은 육적인 구원이요, 하나님께서 더 관심을 두고 계신 사안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구원하심에 영혼구원이 궁극적이기는 하지만 육적인 구원을 무시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육신 구원의 문제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문제에 더 관심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 앞서서 40일 금식을 하셨을 때 마귀가 먹는 문제--돌덩어리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대답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마태 4:4)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신 것은 육적인 떡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떡이 무엇입니까?
육적인 구원의 문제입니다. 배고픔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영혼의 구원의 문제입니다.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사람이 사는 것은 육신의 구원의 문제-곧 육적 배고픔의 해결-뿐 아니라 영혼 구원의 문제-영적 배고픔의 해결과 영생의 문제--를 위한 삶이란 뜻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해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2
22-25절: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섰는 무리가 배 한 척밖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의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무리가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26-2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군중들도 구원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은 '배고픔으로부터의 구원'이었습니다. "썩는 양식"은 오직 배고픔의 문제만 해결하여줍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곧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죽음의 문제에 해답을 줍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세상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28절: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님께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시니까, 군중 속의 사람들이 질문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라고 질문합니다.
2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일을 하기가 쉽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즉 인자를 믿을 때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자를 믿는 것입니다.
30-31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그들은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인자가 양식-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준다고 했는데 그 양식은 무엇입니까?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는데, 우리는 무슨 양식을 먹을 것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32-3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배고픔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 만나가 예표하는 '하늘로부터의 참 떡'-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떡-'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한 '생명의 떡'입니다.
34절: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청합니다.
'이 떡이 항상 우리에게 있기 위하여'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항상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항상 먹는 것입니다. 즉, 듣는 것입니다.
3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떡이 항상 우리에게 있기 위하여' 우리는 항상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께 나아와야 할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6절: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군중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말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37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은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비춰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를 내어쫓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38-39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예수님께 주시고자 함'이심이요 또한 '예수님께 주신 바 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잃어버린 자가 아니라 살리심을 입는 자가 되게 하심'입니다.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아버지의 뜻은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온 자,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심을 입는 것--생명에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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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신앙생활입니까?
썩는 양식입니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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